주는 것도 받는 것도 설레고 기대되지만 막상 받거나 주고 나면 그 마음이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 것이 선물인 것 같다.
받는 사람이 엄청 좋아할 것이라는 기대에 한껏 부풀어 열심히 고르고 고른 선물을 막상 건네면 심드렁한 반응에 풀이 죽기도 한다.
사실 심드렁하게 반응하지는 않고 좋아라 하지만 내 느낌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진짜 좋아하는 것은 팍! 필이 오지 않는가...ㅋㅋㅋ
그래서 선물을 받을 때는 그 마음을 알기 때문에 고맙고 즐겁게 반응해야 하지만 나 자신이 그러하지 못해 반성할 때가 많다.
마음이 딱 맞아서 진짜 좋으면 숨길 수 없는 반응이 나오지만, 음.... 아.... 이런 느낌의 선물은 아무리 고마움을 표한다 해도 어쩔 수 없이 그 느낌이 드러나는 것 같다.
'너는 얼굴에 다 나와...' 내가 여태껏 항상 듣는 말이다. ㅠㅠㅠㅠ
특히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이면 더 숨기기 어렵다.
확 티가 난다.....ㅠㅠ
이번 딸아이의 선물 때문에 마음이 복잡했다.
내 취향에 맞고 안 맞고의 문제와 더불어 돈을 지출하는 것이 걸려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이다.
이것은 '부모 자식'이라는 특수 관계 때문에 수반되는 현상인 것 같다.
부모 자식 관계가 경제적으로 평등한 관계라면??? 음... 좀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엄마가 나에게 어떤 과도한 선물이나 축하금을 주면 그것이 마음에 걸린다.
독거노인이 넉넉하지 않은데 이런데 돈을 쓴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 마냥 좋지만은 않은 것이다.
나는 항상 말하기를, 엄마한테만 돈을 써라... 나는 잘 먹고 잘 산다...
너무 그러다가 한 번은 엄마가 정말 섭섭한 마음으로 화를 내셔서, 지금은 잘 쓸게... 잘 먹을게... 너무 좋다... 이렇게 반응하는 편이다.
딸아이에게도 마찬가지 마음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적정한 선을 넘어 돈을 쓰면 마음이 편치 않다.
이번에 받은 선물이 그렇다.
생일 케이크는 수제 케이크 집을 찾아 진주에서 픽업하게 했고 드립 커피 도구를 보냈다.
뭐 케이크는 한번 정도 특별하게... 이쁘고 좋았다.
그런데 커피 도구는 딱 받았을 때 '뭐 이런 걸...' 이런 느낌이었다.
이거 꽤 비쌀 텐데 뭐하러... 이런 반응을 했으니 눈치 빠른 딸아이가 내 마음을 모를 리 없었다.
아니 좋은데... 좋지... 했지만 이미 늦었다.ㅠㅠ
나중에 용가리가 말하기를, '너 얼굴 보니까 딱 아니던데.. 선물 받고 그게 뭐냐?' 이렇게 나를 타박했다.
나는 내가 갖고 있는 커피 도구들을 바꿀 생각이 전혀 없었다.
오래되었지만 손에 익숙한 드립포트, 빈티지한 온도계, 부담 없는 드리퍼와 서버...
특히 트리퍼와 서버는 좋은 것을 잘 관리하는 것보다 적당한 것을 자주 교체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딸아이는 오래 썼던 커피 도구들을 '간지 나는 것'들로 바꿔 주고 싶었던 것이다.
커피를 잘 모르는 딸아이가 며칠 동안 브랜드 검색해서 공부(?)하고 가격 비교하고 없는 시간 쪼개 고생해서 고른 것들일 것이다. 피 같은 거금을 써가며 말이다....
인터넷 쇼핑이라는 것이 솔직히 '사람 잡는 일'아닌가... 특히 익숙하지 않은 분야는 말이다.
내가 한 번도 사용해 보지 않은 브랜드 제품이다.
사실 나는 거의 20년? 전에 썼던 제품, 그 브랜드를 계속 사용하고 그때 방식으로 커피를 내려 마신다.
그런데 요즘은 제품도 브랜드도 훨씬 다양해졌지만 팔로우하지 않은지 오래다.
게다가 솔직히 말하면 드립포트는 잘 모르는 브랜드고(요즘 커피계의 3 대장이라 한다는데), 드립 세트는 내가 안 좋아하는 브랜드다.
특히 드립 스탠드 같은 것은 별 쓸모도 없는 것이 가격은 비싸다. 이런 거 누가 쓰냐... 했었는데 말이다ㅠㅠ
드립포트는 너무 무겁고 서버는 용량 숫자 표시가 없고 조금만 부주의하면 깨 먹기 딱 좋게 생겼다. 디자인 최우선??
커피 도구를 새롭게 세팅하고 커피를 내렸다.
그리고 반성, 또 반성했다.
이 기회에 새로운 브랜드, 새로운 도구로 커피 마시면 좋잖아?
익숙하지 않아 불편한 것은 차차 편해질 것이고, 써 보지 않은 드립도 써 보고, 분위기도 바꾸고 좋잖아?
매번 익숙한 것만 찾고, 안전한 것만 찾으려 하다니...
내가 싫어하는 노인네 하는 짓을 하고 있네...
돈 아깝게 이런 것을 뭐하러 사... 있는 것 쓰면 되는데..
큰맘 먹고 선물해 줬을 때 듣기 싫은 말 아닌가... 내가 딱 이러고 있다니...ㅠㅠㅠㅠ
요즘 커피 서버 닦느라 귀찮아 죽겠다.
전에 쓰던 것은 물자국이 많이 생겨 닦아도 안 되면 교체했는데 이번에는 물자국 안 생기게 마른 수건으로 닦고 있다.
'뭐라 툴툴대더니 딸이 준 거라고 열심히 닦고 있네...' 용가리가 옆에서 비웃는다.
얼마나 갈지 모르겠지만 이번 서버는 지저분한 물자국 안 생기게 닦아 보려 한다.
'간지 나는'커피 테이블이 지겨우면 다시 빈티지로 돌아가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