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숙제는 해결해야 할 문제는 아니었고 두고 생각만 하고 있었던 일이다.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떨치고 일어나지 못해 미적거리다 결행.
양양으로 귀촌한 선배가 올봄 친구들과 다녀갔었다.
그러면서 곧 선배 집으로 놀러 가겠다고 들떠서 약속을 했는데 이리저리 미루다 보니 12월이 되었다.
여름휴가철 전에 6월쯤 가겠다고 했는데 7,8월이면 백신 2차까지 맞을 수 있을 것 같아 접종 완료하고 가겠다고...
그러다 9월로 백신 접종이 미뤄지고 그러다 추석 연휴...
서로 안부를 물을 때도 언제 오느냐.... 곧 간다... 그러다 올해 안에는 꼭 갈 것이다...ㅎㅎㅎㅎ
그리하여 한 해의 마지막 12월, 머나먼 동해안으로 길을 떠났던 것이다~~~~
이곳 지리산에서 출발하면 거의 6시간...
9시 조금 넘어 집을 나섰는데 4시가 조금 안 된 시간에 도착했다.
집을 나서면서 무엇을 가져갈까 엄청 고민했다.
선배가 우리 집에 올 때에는 비린 것 맛보라며 생선회도 떠 오고 피데기며 명란젓 등등을 살뜰하게 챙겨 왔었다.
나도 살뜰하게 챙겨가고 싶었으나 딱 이거다! 하며 떠오르는 것이 없다.
선배가 있는 양양에는 부족함(?)이 없다.
산과 바다가 같이 있으니 산나물이며 생선이며 게다가 집에는 텃밭도 하고 과실나무도 있으니 말이다.
이곳 특산물 흑돼지? 돼지를 몰고 갈 수도 없고..ㅠㅠ
그래서 고민 끝에 술안주 3종 세트를 준비했다.
의미가 있다면 모두 내 손으로 생산한 것...
호두, 땅콩은 직접 간청재 마당에서 나온 것이고 곶감은 내 손으로 돌본 것이다.
옆에 있는 도라지 정과는 그냥 옵저버..ㅎㅎ 선물 받은 것인데 맛있고 술안주로 좋다.
그리고 이 근처에서 맛이 괜찮은 병곡 막걸리 12병을 준비했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는 아니고, 후배에게는 12병의 막걸리가 있사옵니다...ㅋㅋ
양양 선배 집은 소나무 숲에 둘러 싸여 있다.
그곳을 관리하며 사는 것이... 보기만 해도 일거리가...ㅠㅠ
그래도 우리와는 다르게 엄청 활동적이시다.
끊임없이 재미난 것을 찾고 만들고....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점.
집 옆 소나무 숲에 해먹도 있고 간이 테이블도 있고 귀여운 사다리도 있다.
소나무 숲 해먹에 누워 있으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고... 그런데 해먹이 너무 높은 곳에 있다.
처음에는 사다리를 놨었는데 이제는 클라이밍으로 올라갈 것이라고... 입이 떡 벌어진다!
남해 말고 동해가 보고 싶다! 를 외치다가 정말 동해를 보니 속이 쑥 내려가는 느낌이다.
게다가 완전 추억여행.. 추억팔이??
나이 먹으면 추억팔이하며 추억 먹고 산다더니... 용가리와 내가 딱 그 짝이다.
대학 시절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낙산...
그곳에 학교 교직원 수련관이 있어 동아리 합숙 훈련을 그곳에서 했었다.
졸업 후에도 재학생 합숙할 때 졸업생 후발대로 많이 갔었고 말이다.
여름에는 수련관이 아니라 근처 초등학교를 빌려서 합숙했었는데 그 초등학교도 가 봤다.
초등학교 교실을 빌려서 잠도 자고 합주도 하고 연습도 했다.
연습이 목적인지 축구가 목적인지 학교 운동장에서는 하루 종일 축구를 했다.
오전 전반전, 오후 후반전... 하루 종일 축구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왜 저럴까?? 이해하기 힘들었다.ㅎㅎ
학교 교직원 수련관은 주변이 조금 황량하게 별 것 없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어찌나 숙박업소가 많이 생겼는지 그 건물들에 묻혀서 수련관 찾기가 힘들었다.
그럴 만도 하지... 그것이 벌써 30여 년 전 아닌가....ㅠㅠ
지금은 그때처럼 아침 운동한다고 줄 맞춰 소리 지르며 뛰어다니지 못할 것 같다.
그리고 낙산사!
동계 합숙 때는 낙산사 가서 눈싸움도 많이 했었는데...
낙산사 화재 소식을 듣고 용가리와 나는 서로 조금 슬퍼했다.
화재 후 한 번도 낙산사를 가보지 않았는데 이번에 가게 되었다.
내 머릿속 낙산사도 이제 없어진 듯...
학교 수련관도 초등학교도 낙산사도 내 머릿속에 있던 것이 아니었지만 낙산해변 장쾌한 바다와 그 파도만은 여전했다.
역시 동쪽 바다!! 남쪽 바다와는 그 느낌이 완전 다르다.
첫날밤 파도소리 들리는 동해 바다 횟집에서 거하게 먹고
다음날 수육에 막걸리로 하룻밤 더 자고 가라는 선배의 말도 아쉬움으로 남겨 놓고 다시 길을 떠났다.
중간 정착지에서 머무는 것이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부담이 적을 것 같아서다.
추억팔이 낙산 둘러보기를 마치고 일단 동해를 따라 밑으로... 가능하면 포항까지 내려가기로 했다.
포항까지는 무리였고 영덕에서 하룻밤 쉬고 가기로...
영덕이니 게는 먹어 줘야지~ 했지만,
너무나 피곤해서 게고 나발이고 얼른 숙소 잡고 들어가 자고 싶었다.
그래도 이건 예의가 아니잖아? 정신줄 놓기 전에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대게집으로 가서 게와 기타 등등을 먹었다.
전날 마신 술도 있고 몸도 피곤했지만 또 소주가 술술 들어간다... 어쩌냐...ㅋㅋㅋ
다음날 진한 커피와 반짝이는 바다를 보며 놓았던 정신줄 다시 잡고 남은 길을 달렸다.
다시 간청재.
주머니에 넣어 온 씨앗들.
선배 부부가 챙겨준 씨앗들이다...
내년에는 포트에 씨앗 넣어서 모종을 만들어봐야겠다.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은 일이다.
조선 토종 오이와 단호박. 완전 기대만발이다.
특히 조선 토종 오이는 짧고 똥똥하게 생겨서 맛도 아주 그만이란다.
꽃씨도 심어서 꽃이 피면 오이 호박이랑 같이 자랑하며 사진 보내주면 좋겠는데... 잘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