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가장 멀다고 생각하는 개념 중 하나가 바로 IT(information technology)라고 할 수 있다.
특히 'T(technology)'!!
그런데 어쩌다 <거의 모든 IT의 역사/정지훈>를 읽게 되었다.
순전히 처음에 나오는 등장인물에 혹해서...ㅠㅠ
애플 왕국, 마이크로소프트 제국, 구글 공화국
이 설정이 너무 흥미롭게 보였다. 왕국, 제국, 공화국... 참 일리 있는 구분이다.
그래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물론 재미가 없지는 않았으나 IT에 거의 무지한 내가 읽기에는 벅찼다.
내가 읽은 책 중에서 이런 종류의 책은 아마도 거의 이 책이 유일한 것 같다.
일단 책을 읽으며 가장 힘들었던 것은 영어 약자가 너무 많이 나온다.
IT 쪽 용어들은 거의 영어고 게다가 약어로 나온다. 난 그런 용어들을 99.999...% 모른다.
가뜩이나 영어도 짧고 그나마 알았던 단어도 가물거리는 시점에서
이런 용어들은 책장을 넘길 때마다 돌부리처럼 등장했고,
대충 넘어가려고 해도 목에 걸린 가시처럼 나를 괴롭혀 의미를 찾아보고 읽어야 했다.
또 익숙하지 않은 단어들이니 앞에서 찾아봤던 것이 뒤에서 또 나오면 그새 까먹어버린다..ㅠㅠ
물론 모르는 것을 다 찾아보지는 않았다. 갈수록 느낌적 느낌으로 넘기며 읽었다.....
마더보드라는 단어를 보며 '아니 키보드는 아는데 마더보드는 뭐임?' 이렇게 생각하는 수준이다.
CPU, GUI, PUI.....특히 세 글자 영어 약자가 많다.. 거기에 더해 회사 이름도 다 영어 약자다.
내가 아는 회사는 손가락에 꼽는데 그 외에는 이것이 회사 이름인지, 기기 이름인지, 프로그램 이름인지, 프로젝트 이름인지...ㅠㅠ
게다가 컴퓨터의 출발이 미국이니 등장인물 이름도 내가 아는 손가락에 꼽는 이름 빼고는 당최 머릿속에 들어오지를 않는다.(5명 정도 빼고는 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다들 유명하고 중요한 사람이란다)
게리 킬달이 컴퓨터 과학에서 이룩한 업적이고 그가 진정한 PC의 혁명가였다는데 나는 당최 뭔 말인지...???
컴퓨터 용어는 까막눈이라 대충 그러려니.. 하며 넘어갔지만 CEO와 캐피탈에 대해서는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사용되는 개념이랑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이 책에 나오는 CEO들은 회사를 옮기며 회사를 살리거나, 주저앉히거나, 크게 키우거나 하기 때문에 내가 아는 CEO와 매치가 잘 되지 않았다. 한 인물이 여러 회사의 CEO로 등장한다.
내가 대충 생각하는 우리나라의 CEO는 회사 주인, 사장님, 회사에서 제일 높은 사람...정도?^^;;
우리나라의 CEO와는 완전 다른 개념이기 때문에, 말 그대로 전문 경영인이기 때문에
어떤 회사에 들어가 그 회사의 매출과 주식 가치를 얼마나 올렸느냐가 그 CEO의 이력이다.
미국의 IT기업들은 창업자와 전문경영인이 확연하게 구분된다.
전문경영인의 역할은 창업자와 투자자 이사회 소비자 등의 각기 다른 이해를 창업자의 철학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절충해 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캐피탈'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다.
내가 아는 우리나라 캐피탈은 그저 대부업체? 정도로만 알았는데 기업이 제대로 만들어지고 성장하는데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
좋은 안목을 갖고 있는 제대로 된 캐피탈은 좋은 기업을 만드는데 아주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름 아는 큰 기업 말고도 자잘한(?) 작은 회사들도 많이 나오는데, 회사를 잘 팔고 잘 사는 것도 기술 발전과 회사 성장에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회사를 적절하게 잘 넘겨서 오히려 더 발전하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획기적인 기술을 갖고 있는 작은 회사를 인수해서 더 발전시키면 인수한 회사나 파는 회사나 다 좋은 것인데,
독립성과 기술력을 지키려고 인수 제안을 거절해 오히려 기술도 잃고 회사도 망하는 경우도 있었다.
크게 잘 성장한 회사들은 대부분 좋은 기술을 갖고 있는 작은 회사들을 잘 인수해서 더 발전할 수 있었다.
창업자, 전문경영인, 투자자(캐피탈) 이 세 가지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을 만들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개발한 기술을 가지고 어떻게 이윤을 추구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소비자들의 이익을 함께 논의하고 고민할 때 회사가 성장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특히 IT 쪽은 '개방'이라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아무리 자본력 빵빵하고 거대한 기업이라도 폐쇄성을 극복하지 못하면, 당장의 이익 때문에 공유하기를 거부한다면 그야말로 한 방에 훅 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책의 내용 이해도 얼렁뚱땅이고 읽은 지 몇 달 지나서 벌써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또 생각나는 것이 있다.
구글이라는 이름의 탄생....
레리 페이지는 웹사이트 링크를 역으로 추적한다는 의미에서 백럽이라고 했는데 좀 참신한 이름으로 바꾸고 싶었다.
동료 중 하나가 10의 100 제곱을 뜻하는 구골이라는 이름으로 방대한 데이터를 검색한다는 이미지를 주자고 제안, 하지만 아쉽게도 도메인이 선점된 상태였다. 그래서 대신 이용한 도메인이 구글이다.
구골보다 발음도 쉽고 창조적인 느낌도 풍겨 구글이라는 이름이 탄생했다.
우리가 아는 아이팟의 이름은 카피라이터 비니치에코의 고민에서 나왔다.
(딸내미가 초5, 6 정도에 세뱃돈 모아서 아이팟 샀었는데... 기념으로 그 기기를 아직도 갖고 있다)
스티브 잡스가 디지털 허브를 강조하자 작은 비행선을 의하는 팟으로 했다는 것.
팟을 타고 우주선을 떠날 수는 있지만 결국 모선인 우주선으로 돌아와서 연료도 공급받고 식량도 얻는다는 의미.
즉 맥이 모선이고 음악재생기는 팟.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연상해서 그렇게 했다고...
그런데 제품 이름을 결정하는 회의에서는 후보군에서 탈락하고 나중에 다시 비니치에코가 스티브 잡스를 설득해서 결정되었다.
그런데 또 웃긴 것은 그 이름이 이미 애플 것으로 상표등록이 되어 있었다는 것. 인터넷 키오스크 프로젝트를 위해 등록했던 것인데 몰랐었다고....
이 책은 10년 만에 개정판을 낸 것인데 작가가 말하듯이 거의 새롭게 쓴 것이나 다름없다.
개정판이 아닙니다
최초의 iPhone과 iPhoneXII의 차이만큼,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들을 담았습니다.
2020년 11월에 개정판이 나왔는데 내가 이 책을 읽고 있던 중에(벌써 작년이네) 아이폰 13이 나왔다. ㅎㅎ
기억을 더듬어 보면 이 IT만큼 빠르게 변하는 분야가 있을까?
컴퓨터라는 것이 만들어지기 시작할 때부터 내가 존재했고 그 사실을 어렴풋 인지하고 있었다.
즉 다른 분야의 역사와는 달리 내가 기억하고 경험하는 범위에 컴퓨터의 역사가 함께 했다는 것이다.
물론 초기 컴퓨터는 나와는 거리가 엄~~청나게 멀리 있어 알지도 못했지만 말이다.
내가 알기 시작한 컴퓨터만 보더라도 지난 10여 년 사이 엄청나게 변하지 않았는가...
특히 휴대폰의 경우 말해서 무엇하랴! 결국 모든 컴퓨터가 휴대폰으로.....
내가 컴퓨터를 가깝게 알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나 되어서다.
아이폰이 2007년 처음 나왔으니 내가 기억하는 20년 사이 엄청난 변화와 발전이 있는 것이다
난 그런 면에서 이 책에서 다루는 역사가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자동차의 경우를 보면
1769년 최초의 증기 자동차가, 1885년 최초의 가솔린 자동차가 나오면서 지금까지 발전하고 있다.
200년이 넘는 역사를 모두 경험하며 함께 할 수도 없고, 나는 아주 일부분의 역사와 함께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기억하는 자동차의 모습은 조금 바뀌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변함이 없다. (전기차가 좀 다르기는 하다.)
그런데 컴퓨터는 내가 잘 알지는 못해도 그 탄생과 발전을 모두 눈으로 보면서 함께 한 것이다.
80년대 컴퓨터 언어 베이직이나 파스칼 같은 것을 배우는 학원이 넘쳐났다.
나도 대학에 입학하니 캠퍼스 여기저기에 컴퓨터 강좌 안내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내 기억에 나도 그 강좌를 신청했으나 두어 번 듣고는 때려치웠다.
그때 들고 다녔던 책이 베이직 파스칼 이런 제목이었던 듯...
재미도 없고 꼭 알아야 하나? 하는 생각에 그 당시 초기 컴퓨터는 담을 쌓았다.
여기서 두 갈래로 나뉜다.
이 컴퓨터가 미치게 재미있어서 빠져든 사람(세운상가 용산 전자상가에 들락거리면서)과
나랑 상관없다고 쳐다보지도 않고 담쌓은 사람.(바로 나 같은 사람)
내가 이때 담을 쌓으면서 그랬다.
손가락이나 말 한마디로 간단히 컴퓨터를 쓸 수 있게 되는 날이 오면 그때나 컴퓨터를 써야겠다고...
농담처럼 그랬는데 10년 만에 아이콘 클릭으로 컴퓨터를 마음대로 쓸 수 있게 되었고
그 후 10년 만에는 모바일에서 모든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손가락이나 말 한마디로 컴퓨터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
그 대단한 IBM에서도 전 세계에 컴퓨터는 5대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니, PC가 등장한 것도 놀라운데 이렇게 짧은 기간에 생필품이 되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이런 역사가 있을까???
이 책은 이런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게 해 준다.
첫 번째 전환 : 개인용 컴퓨터 혁명(1976-1985)
두 번째 전환 : 소프트웨어 혁명(1989-1995)
세 번째 전환 : 인터넷 혁명(1993-1999)
네 번째 전환 : 검색과 소셜 혁명(1999-2006)
다섯 번째 전환 : 스마트폰 혁명(2007-2010)
여섯 번째 전환 : 클라우드와 소셜 웹 혁명(2010-2016)
나는 두 번째 전환부터(윈도우가 보급되면서) 컴퓨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섯 번째 전환은 글쎄.... 아직도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이런 쪽에 엄청 느리다.
이제는 데이터 중심 인터넷에서 인간 중심의 소셜 인터넷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갔지만 나는 아직 확 옮겨가지 못했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외에 내가 아는 마크 주커버그, 제프 베조스, 일론 머스크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이 세 사람은 내가 그래도 들어본 이름이라서(이 책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머리에 조금 남았다.ㅠㅠ
인터넷과 청정에너지, 우주, 그리고 인공지능까지....
이제 IT는 특정 산업 분야가 아니라 인류사 전반에 변화를 가져오는 핵심 역할을 맡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어디까지 가게 될까.... 나는 맨 뒤꽁무니에서 그 변화를 따라가고 있겠지...
이 책을 읽으며 마지막 장(IT, 마침내 인간을 초월하다)에 가서는 놀랍기도 하고 살짝 무섭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