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수 가방 보따리를 들고 산청 플리마켓에 다녀왔다.
오며 가며 눈에 보이는 풍경에 가을이 뚝뚝 묻어난다.
가방 두 개와 레이스 받침 네 개와 뜨개 모자 하나를 팔았으니 꽤 괜찮은 실적이다.
작은 공원에서 열리는 시장인데 백일떡도 얻어먹었다.
백일이 막 지난 아가를 본 것도 참 오랜만이다.
아가의 부모는 이 장터에서 예쁜 백일떡을 돌렸다.
나는 그것이 고맙고, 아가도 엄마 아빠도 모두 예뻐서 작은 레이스 컵받침을 두 개 건네주었다.
두 분이 차 마실 때 쓰세요.... 아가의 엄마가 환하게 웃으며 고마워했다.
젊은 친구들의 공연도 있었는데 기타와 드럼 노래 등등을 마을 문화센터 같은 곳에서 가르치고 있다며 많이들 신청하라고 했다.
그런데 노래를 너무 못해서 내가 다 얼굴이 화끈거리니 어쩌냐..ㅎㅎㅎ
기타와 노래가 음정이 맞지 않고 어쩜 그렇게 제각각인 화음이 있냐...ㅎㅎ
저 노래와 연주를 듣고 누가 신청하겠냐... 내가 다 걱정이 된다.
'많이 힘드시죠 저희들이 힘내시라고 노래 들려드리겠습니다.'라고 하는데 너희들이 더 힘을 내야겠구나.
그래서 밥 벌어먹고살겠냐...ㅠㅠ
그래도 유쾌하고 재미있었다. 노인네들 색소폰 부는 것보다 훨씬 좋았다.
공연 끝나고 '들어 주셔서 고맙다'고 일일이 돌아다니며 인사하는데
나는 속으로 '응 그래 연습 좀 많이 하고.. 파이팅!!이다' 중얼거렸다. ㅋㅋ
가방과 소품 팔아서 번 돈으로 장터에 나온 달걀 한 판을 사 들고 돌아왔다.
찬찬히 가을을 살피지도 못하고 가을은 벌써 저만큼 가버리고 말았다.
황금 들판 출렁이는 물결을 보지도 못했는데 벌써 들판에는 커다란 마시멜로가 굴러다니고 있다.
딸아이 어릴 적, 추수가 끝난 들판에 포장된 볏짚 뭉치를 보고는 '저기 엄청 큰 마시멜로가 있다'고 했었다.ㅎㅎ
기계가 들어가지 못하는 논에 낫질이 한창이고 길 가에는 넓게 펼쳐 말리고 있는 나락과 콩이 가득했다.
가을은 바람도 하늘도 나무도 모두 예쁜 계절이고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것처럼 콧바람 나오는 계절인데
이번 가을은 마음이 조금 시리다....
꼬물이들은 앞마당 뒷마당 할 것 없이 돌아다니며 열심히 먹고 놀고 잔다.
장작 지붕 아래에서 노는 것을 좋아하는데 용가리가 다른 데 가서 놀라며 야단을 친다.
'장작 쌓아 놓은 것 무너질까 봐 그래?' 내가 물었다.
'장작 무너지는 거야 다시 쌓으면 되지만 나무토막 하나라도 잘못 떨어져 다치면 어쩌냐?
내가 지금 고양이들 장작 떨어져 다치는 것도 다 걱정하며 살아야 되냐? 어이가 없네..' 이런다.
나는 속으로 조금 놀랐다.
아니 매번 꼬물이들 이제는 귀찮다고 하더니, 그리고 맨날 야단치는 것 같더니 so sweet~
어떤 때는 밖에서 용가리가 뭐라 뭐라 해서 누가 왔나 하고 내다보면 번잡이와 꼬물이들에게 뭐라 하고 있는 것이다.ㅎㅎ
'고맙습니다. 하고 먹어야지'
'너네도 일 좀 해라. 그렇게 먹고 노냐?'
'밑에 집에 가서 얻어먹어. 거기는 더 맛있는 것도 주는데 왜 맨날 여기 와서 붙어 있냐?'
번잡이가 아랫집에도 가는데 그 집 아주머니는 번잡이에게 '아롱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리고 아롱이가 눈을 보며 응대하고 아주 사교적이고 이쁘다고 하신다.
그런데 우리는 이름도 번잡이고 번잡이가 눈 쳐다보며 야옹거리면 어디 눈을 똑바로 뜨고 말대꾸를 하냐? 이런다.
마음씨 고운 아랫집 아주머니에게 가면 더 맛있는 것 먹을 텐데 요즘 아주 눌러붙어 산다.
우리도 웃기다.
꼬물이들이 툇마루에서 창틀을 긁거나 하면 야단을 치는데 용가리가 먼저 뭐라고 한다.
그러면 내가 '그렇게 막 말하지 말고 알아듣게 타일러야지. 이렇게 손으로 가리키면서 여기는 안 된다 이러면서'
이렇게 말하고 나면 나도 뭐하는 짓인가... 이런 현타가 온다.ㅠㅠ
번잡이와 꼬물이들이 이 가을에 함께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