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해야 할 마지막 일, 감을 깎았다.
김장을 하던 때는 텃밭의 무와 배추를 보면서 빨리 텃밭이 비워지기를 무거운 마음으로 바라보았지만,
두 해 김장을 거르면서 텃밭은 집중 대상이 아니므로 마지막 곶감 만들기가 마음에 남아 있었다.
10월 중순이 넘어가자 마을 집집마다 감이 널리기 시작했다.
감을 사던 농장에 전화하니 지금 감을 따는 중이니 10월 마지막 주말쯤에 오라고 했다.
멀지 않은 농장으로 가서 예쁘게 생긴 고종시 한 상자를 샀다.
이제 감을 깎아 널기만 하면 되는데 그전에 한 가지 할 일이 있었다.
누마루 문 창호지를 갈아 붙여야 했다.
사실 누마루 문은 올봄부터 하려고 준비했었는데 어쩌다 보니 지금까지 미루게 되었다.
누마루 문은 일반 한지로는 거의 매 해마다 갈아 붙여야 해서 아크릴이 들어간 고가의 한지로 바꾸려고 했다.
안방 문을 비싼 한지로 바꾸니 나름 잘 견디는 것 같아서 누마루도 바꾸기로 한 것이다.
비싼 한지를 살 때 누마루는 문이 많아서 가격이 꽤 나갔기 때문에 일단 안방 창문부터 붙이고 좀 두고 보자고 했었다.
봄에 아크릴이 들어간 한지를 주문했는데
바람이 분다, 비가 온다, 장마 지나면 하자, 태풍 지나면 하자... 이렇게 미루다가 곶감 널 때까지 온 것이다.
귀찮은 마음에 '내년 봄에'? 하다가 '이러면 안 되지!' 하고는 아침부터 서둘러 누마루 낡은 한지를 떼어내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문짝을 다 떼어 내고 물청소 겸 한지도 떼고 했었는데 지금은 문을 떼지 않고 그냥 한다. 귀찮아서..ㅠㅠ
감을 걸고는 창호지 떼어내고 붙이고 할 수가 없기 때문에 감을 사고 나서야 밀리고 밀려 하게 된 것이다.^^;;
어쨌든 숙제 하나를 해 치웠다!!
하루는 창호지 붙이고, 다음날은 종일 감을 깎았다.
감을 널고 누마루 문을 여니 꼬물이와 번잡이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주변에 다가온다.
누마루 문을 열고 바라보는 풍경은 또 다르다.
누마루 문을 하나씩 열면 조금씩 그림이 완성되는 느낌이다.
이제 곶감이 다 될 때까지 아침마다 문을 열면서 조금씩 달라지는 그림을 보게 될 것이다.
늦게까지 매달려 있던 토종 오이를 따서 그 씨앗을 받았다.
처음 해 보는 것이다.
딱 하나 하는데도 쉽지 않은 일임을 알았다.
씨앗에 붙어 있는 점액질 같은 막을 다 벗겨내기가 힘들었다.
여러 번 물에 씻어도 안 되고 나중에는 손으로 다 벗겨냈다.ㅠㅠ
어찌나 손에 달라붙던지... 분명히 쉽게 벗기는 방법이 있을 텐데...
작년 호두 청피도 낑낑대며 벗겼었는데 누군가 비닐봉지에 며칠 넣어 두면 된다고 조언해 주어서 요령이 생긴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