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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풀이

안목眼目, 근원近園 김용준金瑢俊

by jebi1009 2022. 11. 1.

안목, 격조, 품위... 이런 말들이 절실하게 다가온다.
나이 들어감에 따라 필요한 것들인데 갖추기는 참 힘들다.
유홍준의 [안목眼目]은
여기저기서 읽었던, 들었던 인물들과 그 작품들도 많이 나와서 비교적 친근하게 읽을 수 있었다.
다음에 박물관 가면 꼭 봐야 할 연적과 그림, 도자기도 찍어 놓고
안목의 깊고 높고 넓음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예술을 보는 안목은 높아야 하고, 역사를 보는 안목은 깊어야 하고, 현실정치 경제 사회를 보는 안목은 넓어야 하고, 미래를 보는 안목은 멀어야 한다.


검이불루儉而不陋 화이불치華而不侈도 다시 들여다보며 감동했다.

신영복 선생님의 맑은 성품을 보여주는 글씨와 그림과 그 문장들도 다시 보았고
화가 박수근을 읽으면서 박완서의 [나목]을 다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좋아하는 화가 이중섭이 캔버스에 그린 그림이 딱 하나밖에 없다는 사실은 새삼 가슴이 아팠다.

고려인 화가 변월룡 회고전에 대해 쓴 부분에서는 근원 김용준을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초상화에 대해서는 그다지 감탄하며 본 적이 없었는데 김용준의 초상화는 정말 그 사람을 보는 것 같은 느낌?
김용준은 정말 그렇게 생겼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림을 직접 본 것도 아니고 책에 인쇄된 것을 봤는데도 그러하니 그림을 직접 본다면 그 느낌이 더 할 것 같다.


나는 사실 근원 김용준을 잘 몰랐다.
그의 글이나 그림을 본 적도 없고 그저 평론가, 노시산방, 월북했다는 정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연관스님 때문에 그의 글이나 그림을 알게 되었다.
연관스님은 김용준 전도사였다.
문고판 [근원수필]을 여러 권 구입하셔서는 마구 나눠주시곤 했다.

스님께 받은 근원수필 문고판

다른 이유는 없었다. 오래전부터 근원 김용준을 알고 있지도 않으셨다.
우연히 글을 읽었는데 그 글이 너무 좋아서 그 작가가 누구인가 보니 근원이었단다.
그래서 근원의 글을 다 읽고 그 사람에 대해 알게 되고 알게 되니 더 좋아하게 되고....
나도 그 문고판 근원수필을 받고서야 근원수필을 읽었다.
사실 나는 연관스님 만큼 그렇게 엄청나게 좋지는 않았다.^^;;
그리고 몇 년 뒤 근원 김용준 전집이 총 6권으로 나왔는데 그중 1권이 근원수필이다.
그 전집이 나왔을 때 나는 개정 보완된 양장판 근원수필을 샀다.


3,4년 전 딸아이와 스님을 뵈러 갔을 때 스님은 김용준 전집 6권을 딸아이에게 주셨다.
스님은 그 전집이 나오자마자 모두 사셨고 모두 읽으셨다.
딸아이가 그림을 하니 김용준의 책은 딸아이에게 건네야 한다고 생각하신 것 같았다. ㅎㅎ
일단 딸아이는 1권 근원수필만 가져가고 나머지는 간청재에 두었다.
언젠가 안정된 자리를 잡으면 가져가겠다고 하면서...
1권은 내가 산 것도 있으니 전집 6권이 간청재에 남게 되었다.

스님이 딸에게 건네신 근원 김용준 전집. 딸아이는 내가 산 1권 말고 스님이 주신 1권을 가져갔다.


그리고 그 책에 소개된 그림 하나를 엄청 마음에 들어 하시며 크게 만들어서 걸어 두고 싶다고 하셨다.
딸아이는 그 책을 받아 돌아와서는 사진과 포토샵을 이용해서 파일을 만들고 인쇄 업체에 의뢰해서 다시 봉암사로 보냈다.

스님이 좋아하셨던 김용준의 그림

한참 후에 봉암사로 스님 뵈러 갔을 때 동암에 걸려 있는 그림 사진을 볼 수 있었다.
스님이 참 좋아하셨다.
그리고 이렇게 크게 깨끗하게 어떻게 만들 수 있냐며 사진으로 이렇게 되는 것이냐며 신기해하시기도 했다.
딸아이가 만들어 보낸 그 그림 사진은 지금은 어찌 되었는지 모르겠다.

갑자기 김용준 때문에 연관스님도 생각나고 다시 근원 김용준 전집을 뒤적이다 마음에 다가오는 산문을 발견했다.

겨울달밤 성북동

산보하는 길녘은 좁을수록 좋다. 호젓할수록 좋다. 봄보다는 들국화 뜨음뜨음 피어 있는 가을일수록 좋다. 산보하는 길녘은 끝이 아니 보이는 길이어야 한다. 좁다란 길이 언덕 너머로 사라지는 비밀의 길이어야 한다. 언덕을 넘으면 좁다란 길이 계속되고, 그 언덕을 넘으면 또 좁다란 길이 계속되는 미지의 길이어야 한다.
방향은 곳곳이 있다. 그러나 내 발이 제일 자주 거니는 곳은 역시 내가 사는 성북동 산기슭이다. 나는 동화 속의 사람처럼 가끔 이런 길을 가려 헤매나니, 그러므로 내 산보는 누가 보든지 몽유병자와 같은 허무한 산책이다.
여름의 산보는 진종일 비를 촉촉이 맞으며 거닐어야 한다. 가을의 산보는 주야의 구별이 없어도 좋다.
석양이 내 정원에 비낄 때면 피로한 신경을 이끌고 발길이 문으로 나선다. 석교(石橋)를 건너 서면 들국화 가냘프게 피어 늘어진 조붓한 길이 청룡암(靑龍庵)으로 향한다. 나는 내 산보의 유일한 동반자로 밤마다 도적을 보살피는 쫑 군(犬名)을 앞세운다.
성북동의 산보로(散步路)는 달밤이 더욱 좋다. 그러나 반드시 겨울달밤이어야 한다. 나는 가끔 찬 달밤 별들을 헤아리며 등불이 묵묵히 박힌 산 밑 길을 묵묵히 거닐기도 한다. 나무숲 새로 흐르는 달빛도 좋다. 모래알 사이사이로 소리치는 물소리도 들음직하다. 그보다도 영국풍 신사처럼 걸어가는 내 모양과 거상(巨象)같이 움직이는 내 그림자가 더욱 좋다. 이러한 신비스러운 밤에 나는 적막한 호흡을 내어 뿜으면서 가까이 있는 친구의 서재를 찾는 일이 내 도락(道樂)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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