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의 담담하고 담백한 문장들이 가슴을 파고든다.
'안중근 의사'라고 학교에서 배웠고 친숙하게 알던 이름이었지만 31살의 청년 안중근을 만나지는 못했었다.
천주교인 도마 안중근.
도주막의 어둠 속에서 잠을 청하는 밤에, 안중근은 이토의 육신에 목숨이 붙어서 작동하고 있는 사태를 견딜 수 없어하는 자신의 마음이 견디기 힘들었다. 이토의 목숨을 죽여서 없앤다기보다는, 이토가 살아서 이 세상을 휘젓고 돌아다니지 않도록 이토의 존재를 소거하는 것이 자신의 마음이 가리키는 바라고 안중근은 생각했다.
이토의 목숨을 제거하지 않고서, 그것이 세상을 헝클어뜨리는 작동만을 멈추게 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그러니, 그렇기 때문에, 이토를 죽여야 한다면 그 죽임의 목적은 살殺에 있지 않고, 이토의 작동을 멈추게 하려는 까닭을 말하려는 것에 있는데, 살하지 않고 말을 한다면 세상은 말에 귀 기울이지 않을 것이고, 세상에 들리게 말을 하려면 살하고 나서 말하는 수밖에 없을 터인데, 말은 혼자서 주절거리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대고 알아들으라고 하는 것일진대, 그렇게 살하고 나서 말했다 해서 말하려는 바가 이토의 세상에 들릴 것인지는 알기가 어려웠다.
나는 안중근의 고뇌가 참으로 아름다웠다.
천주교인으로서 안중근은 빌렘 신부와 마지막으로 만남을 갖는다.
그 당시 천주교 신부들의 내면을 지금에 와서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국가와 성직자를 함께 생각하는 것은 참 어렵다.
나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하게 만든다.
아마도 빌렘이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서 공개적으로 '한탄'했을 수도 있겠다고 안중근은 생각했다. 교회가 영적으로 하느님의 나라에 속한다 하더라도 교회는 이토가 만든 세상의 땅 위에 세워진 것이고, 빌렘도 그 땅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므로 그 땅 위의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고 빌렘도 빌렘 자신의 모순에 부딪혀 있을 것이라고 안중근은 생각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토가 죽이는 무수한 인간의 목숨은 하느님이 주신 것이고, 하느님께서 그 영혼들을 당신의 나라로 인도하고 계시니, 빌렘이 교회를 짊어지고 이토의 땅 위를 걸어간다 하더라도 안중근에게는 하느님의 자식 된 자로서 빌렘과 더불어 할 이야기가 남아 있을 것이었다.
작가는 후기를 통해서 그의 직계가족과 문중의 인물들이 겪어야 했던 박해와 시련, 굴욕, 유랑과 이산, 사별에 관해 쓰고 있다.
지금의 신라호텔 자리에 있었던 사찰 '박문사'는 이토의 명복을 빌고 그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32년에 세워졌다.
그곳에 안중근의 둘째 아들은 1939년에 참배를 하고 이토의 아들을 만나 사죄를 한다.
딸은 1941년 아버지의 기일인 3월 26일 박문사를 찾아 아버지의 죄를 사죄한다고 말한다.
성장하면 신부님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안중근이 유언한 큰아들 분도는 7살에 만주에서 죽는다.
이 모든 것을 다 지켜본 아내 김아려는 상해에서 죽는다.
이런 자료들을 읽으며 안중근의 아내 김아려의 삶과 그 회한은 상상할 수도 없이 아프게 다가온다.
일제는 조선인들의 동요를 경계해서 안중근을 그저 몽매한 잡범으로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시도하고
그 시신도 유족에게 돌려주지 않고 여순 감옥 공동묘지에 묻어버렸다.
안중근은 자신의 시신을 이토를 쏘았던 하얼빈에 묻어 달라고 유언했었다.
그의 유해는 아직도 찾지 못했고 하얼빈에 묻히지도 못했고 고국으로 돌아오지도 못했다.
마지막 작가의 말.
포수, 무직, 담배팔이
안중근은 체포된 후 일본인 검찰관이 진행한 첫 신문에서 자신의 직업이 '포수'라고 말했다. 기소된 후 재판정에서는 '무직'이라고 말했다. 안중근의 동지이며 공범인 우덕순은 직업이 '담배팔이'라고 일관되게 말했다.
이 청년들의 생애에서, 그리고 체포된 후의 수사와 재판의 과정에서, 포수, 무직, 담배팔이라는 세 단어는 다른 많은 말들을 흔들어 깨워서 시대의 악과 맞서는 힘의 대열을 이루었다. 깨어난 말들은 관념과 추상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날것의 힘으로 일어서서 말들끼리 끌고 당기며 흘러가는 장관을 보여주었는데, 저 남루한 세 단어가 그 선두를 이끌고 있었다.
나는 안중근의 '대의'보다도, 실탄 일곱 발과 여비 백 루블을 지니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얼빈으로 향하는 그의 가난과 청춘과 그의 살아 있는 몸에 관하여 말하려 했다. 그의 몸은 대의와 가난을 합쳐서 적의 정면으로 향했던 것인데 그의 대의는 후세의 필생筆生이 힘주어 말하지 않더라도 그가 몸과 총과 입으로 이미 다 말했고, 지금도 말하고 있다.
나는 작가의 말에 동의, 또 동의한다.
그가 몸과 총과 입으로 이미 다 말했고, 지금도 말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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