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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풀이

구경 2013/08/01

by jebi1009 2018. 12. 25.


       

딸아이와 오랜만에 시내구경 나갔다.
안국역에서 내려 경복궁 쪽으로 걸어 갤러리 현대에 가서 김환기전을 보고
인사동으로 걸어오면서 여기저기 기웃기웃 그림 구경 하고 왔다.



이번 전시는 김환기 화백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일기처럼 작업한 뉴욕시절 종이 작품을 한 자리에 모은 'Works on Paper:김환기 탄생 100주년 기념'전이다.
그의 만년작 점화가 탄생하기까지 밑거름이 된 종이작품(oil on paper) 60여점이 전시되었다.
1967년부터 1973년까지 뉴욕시절에 작업한 이 작품들은 신문지, 한지 등 다양한 종이의 특성들이 고스란히 들여다 보이면서 체력 단련하듯 끊임 없이 그리고 그리고 그렸던 작가의 모습이 보이는 듯 했다.
비도 부슬부슬 내리며 경복궁 근처를 걷는 맛이 괜찮았다.
현대 갤러리를 나와 그 길가에 있는 갤러리에 들어가 딸아이와 조잘대며 그림 구경을 했다.
옆 갤러리에 들어갔는데 입구에서 입장료 4천원씩을 내라 하였다.
갑자기 돈 내라니까 그냥 가면 좀 찌질해 보이고 돈 내고 보는 것이 당연하기도 하여 어쩔까..하고 딸에게 물었더니
그냥 가잔다.
쫌 쪽팔리지만 그냥 나왔다..

왜?

아니..나도 당연히 돈을 내고 봐야 하는 것에는 맞다고 생각해..
그런데 적어도 작품 한 점 정도는 사진으로라도 보여줘야 하지 않나?
작가 이름만 죽 나열해 놓으면 어떤 그림인지 잘 모르잖아..
간이라도 보게 해 줘야 들어가 볼 것인지 아닌지 결정하지...
우리가 세상의 모든 화가들을 다 아는 것도 아니고...

우리는 딸아이가 고른 까페에 들어가 커피와 녹차라떼와 아이스크림 와플을 먹었다.

너를 좀 더 일찍 낳을 것을...오늘 같은 날에는 너랑 막걸리에 빈대떡 먹으면 좋을텐데...쩝..
엄마 쫌만 기다려..

무슨 커피집에서 나온 계산이 2만8천5백원이냐..허걱!!

다시 그림 구경.
이건 정말 멋지다..이건 정말 시간 많이 걸렸겠다..이건 정말 작가가 고생했겠다..
오..이런거 맘에 드는걸...이건 다시 보니 정말 괜찮네...이 그림 내가 본 웹툰 표지 그림이랑 정말 비슷해..

인사동 길에서 옛날 강정 5천원어치 사서 다시 지하철을 타고 돌아왔다.
'나는 니가 좀 더 진중하고 생각이 깊었으면 좋겠다'
'엄마 나도 가끔은 아주 심오한 생각을 해..근데 금방 잊어버려..'
정말 우리 딸의 모든 면을 말해주는 한 마디였다.

얼마 전에 딸아이의 정서 행동특성 검사 결과 안내문이 왔다.
이것이 무엇인가....
훑어 보니 스트레스 불안 우울 정도를 알아 보고 정서나 행동 상의 어려움이 있는지 알아보는 것 같았다.
근데 우리 딸은 뭐가 4점 1점이다. 이게 뭥미?
찬찬히 보니 정서 행동특성 검사 결과 고딩여학생은 38점 기준으로 그 이상이면 관심군, 즉 정서나 행동상의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근데 우리 딸은 4점.
그리고 우울척도 기준 점수는 21점 그 이상이면 관심군, 근데 우리 딸은 1점이다.
한마디로 지나치게 해맑다는 것이다..
용가리와 나는 이 검사결과를 보고 정말 좋아했다.
나중에 사위 될 놈이 오면 우리 딸은 이런 사람일세..하고 보여줘야겠단다 ㅎㅎ
'참..엄마 아빠는 내가 수학시험 100점 받았을 때 보다 더 좋아하네..'
딸이 어이가 없단다.
그 다음부터는 딸아이가 덜렁대고 속 뒤집어지는 행동을 해도 '우울감 1점인 아이라서 그래..'

그런데 이 결과를 나와는 다르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다.
대학 친구를 만났었다.
그 친구는 남편이 삼성맨이고 주재원으로 외국에 6년 정도 나가 있었으며 그 곳에서 둘째를 낳았고
첫째가 중학교 들어갈 즘에 돌아왔다. 주변 사람들(주로 주재원 부인들)의 충고로 대치동 은마아파트에 들어갔다.
첫째는 우리 딸아이와 동갑이다. 어릴 때 종종 만나 놀았고 뭐 그럭저럭 이야기도 되고..
그런데 이제 점점 이야기의 각도가 벌어진다.
한때는 일도 열심히 했지만 주재원 나가면서 일을 그만두었으니 만나면 자연스레 아이이야기다.
좀 다른 이야기로 틀어보려 하지만 다시 원점...
내가 웃자고 정서 행동특성 검사 이야기를 하면서 자랑했더니
자기 딸은 12점인가 나왔는데 핀잔을 주었단다.
이제 고등학교 가서 더 긴장해야 하는데 이렇게 스트레스도 안 받고 태평해서 어쩌냐고....헉!
아니 그게 그런 것인감? 나는 1점 받았다고 동네방네 자랑했는디?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면서 참 짠하다고 느꼈다.
무슨 몹쓸 주문에 걸렸는지 자신도 정말 피곤하고 지친다면서도 고등하교 딸아이 관리, 초딩 학습관리까지 갈수록 끝이 없다. 어릴 때부터 집을 도서관처럼 꾸며 놓고 끼고 앉아 가르치고 해야 하는데 자기는 그렇게 못했다나..
학원이 성에 차지않아 자기가 하나 차릴 기세다..

친구는 절대 그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친구는 절실했다.
특별한 재산도 없으니 그렇게 해야 아이들이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아.. 이 이야기도 했다.
우리 딸이 예고에 갔다고 하니 시집 잘 가겠다고 한다.
아이들 관리 잘 하고 대학 잘 보내는 엄마는 미대 출신이 많단다.
내가 '미대 나온 엄마들은 일 안해?'
하니까 여태껏 만나본 학부형 중에 단 한 명도 없었단다...
특히 의사 아빠와 미대 나온 엄마. 반드시 자식을 의대에 보낸단다.
내가 '왜? 미대 나온 엄마들이 성실한가? 아닐 것 같은데..'
물었더니 미대 나온 엄마들은 그렇게 공부를 잘 해 본 적이 없어서 똑똑한 의사남편 말에 무조건 복종해서 그렇단다.
내가 요 근래 들었던 이야기 중에서 가장 해괴망칙한 이야기다.
뭐 이렇다 저렇다 할 말도 없다. 그냥 씁쓸하고 그 친구가 짠했다.

이야기가 이상하게 샜다.
딸이랑 시내구경 그림구경한 이야기 한 것인데 이상하게 마무리가 되네..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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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먹방지기 2013/08/01 16:36

    이상하게 새니까 더 재밌네요.
    근데 무슨 커피집 가격이 밥집 가격보다 비싸네요.^^

    • 제비 2013/08/13 17:40

      내 말이요...
      그 돈이면 막걸리 서너병에 빈대떡 파전도 먹을 수 있는데..

  2. huiya 2013/08/01 20:57

    저는 학교에서 일을 하지만,
    어떤게 그 학생에게 좋은 건지,
    항상 헷갈립니다...

    • 제비 2013/08/13 17:41

      그 학생에게 좋은건지 그 부모에게 좋은건지..

  3. chippy 2013/08/01 21:49

    아마 그 친구는 집에 가서 제비님을 떠올리며 짠해할지도 모르겠어요. ㅎ...사람이 참 다르구나...하는 걸 느끼는 순간이 있다면 그런 경우지요. 인생에 정답이 없으니 질문과 요령도 다 다르긴 하지요. 피곤하게 사는구나 싶은데도 그네들은 부지런히,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산다고 생각하는 걸 어쩌겠나 싶어요. 최선이 늘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만 그들도 기억했으면 싶어요. ^^

    • 제비 2013/08/13 17:42

      예전 직장에서도 늘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하는데 그게 꼭 남에게 피해가 되는 사람이 있었지요...

  4. 나무 2013/08/12 14:48

    윤이도 2점인가? 3점인가? 암튼 한자리수여서
    울부부도 무척 좋아했는데... ㅋㅋ

    "작품 한점 정도는 사진으로라도 보여줘야하지 않나?" 역쉬 똑똑한 딸내미 ^^

    • 제비 2013/08/13 17:44

      그런 한자리 점수가 좋다는 이야기를 같이 할 수 있어서 그래서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