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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풀이

복장 터지는 줄 알았네... 2013/08/13

by jebi1009 2018. 12. 25.




북아프리카의 전통요리인 쿠스쿠스는 '세몰리나'라고 하는 굵은 밀가루를 뚜껑 달린 큰 냄비인 쿠스무시에르에서
조리한 것이다. 이 요리는 다양한 채소와 기호에 따라 생선, 소고기, 닭고기, 양고기 등과 함께 먹는다.
우리로 치자면 밥 위에 여러가지 채소와 고기류를 올려 놓고 소스를 뿌려 먹는 것이다.

프랑스 영화 '생선 쿠스쿠스 (The Secret of the Grain, 2007) ' 를 보면 프랑스에 이주해 온 튀니지 출신 '슬리만'의
가족들이 오랜 만에 먹는 엄마의 쿠스쿠스 요리라며 엄청 떠들면서 엄청 먹어대는 장면이 엄청 길게 나온다.
이 요리는 시간과 정성이 많이 필요한 요리인 듯하다.
영화는 선박 노동자 슬리만이 35년 다니던 직장에서 일이 느리다며 시간을 줄이던지 그만두던지...즉 해고의 위기에
몰리면서 시작된다.
슬리만은 이혼했으며 전처에게 이혼 위자료를 2주 째 밀렸고 지금의 아내? 애인?의 소유인 낡은 호텔 방에서
지내고 있다. 전처에게는 아들 딸이 4, 5명 쯤 되고(정확히 누가 누군지 잘 모르겠다. 사위랑 며느리까지 섞여서..
합치면 8,9명 쯤? 손자 손녀도 있다.) 현재 아내에게는 딸이 한 명 있다. 물론 아내의 딸이다.
슬리만은 퇴직금을 발판으로 폐선박을 사서 선상 식당을 하려고 한다.
전처의 쿠스쿠스 솜씨가 뛰어나기 때문에 쿠스쿠스 식당을 하려고 한다.
자식들의 도움과 전처의 동의로 식당 준비를 하는데 은행 대출, 시청 허가, 위생국 검사 등등이 쉽지 않다.
슬리만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지금 아내의 딸 '림'이다. 모든 행정 절차를 함께 해 주고 의논해 준다.
식당 영업을 위한 계책으로 식당을 열기 위한 여러가지 열쇠를 쥐고 있는 유력 인사들을 초대해서
쿠스쿠스를 대접하기로 한다.
전처와 딸들은 100인분이 넘는 쿠스쿠스를 만들고 선상 식당으로 가져간다.
손님들은 완전 기대감에 부풀어 기다리는데 생선, 채소, 감자, 소스 등등의 솥들은 다 들고 왔지만
쿠스쿠스가 없어졌다.
배달을 담당한 찌질이 큰아들이 자신의 바람핀 상대(부시장 마누라)가 나타나자 솥단지를 다 내려놓지도 않고
도망친 것이다. 도망치면서 동생에게 '친구가 사고나서 급히 간다고 해라...'이 말을 남기며..
쿠스쿠스가 없어져 누나들이 큰아들을 찾느라 난리인데 더 찌질한 둘째 아들은 계속 지 형이 한 이야기만 반복한다.
쿠스쿠스를 다시 익히려면 한 시간이 넘게 걸리고 게다가 전처도 연락이 안 된다.
서빙을 맡은 딸들은 계속 손님들에게 술을 권하며 시간을 끌고 슬리만은 일단 스쿠터를 타고
그 찌질이 아들을 찾아 나선다.
그런데 잠시 세워둔 스쿠터를 동네 양아치들이 빼앗아 타고 나 잡아 봐라~ 하면서 계속 도망간다.
늙은 슬리만은 헉헉대며 쫓아가고 양아치들은 다가오면 또 윙 하고 달아나고 또 헉헉대며 쫓아가고..
내 이 장면 보다 열 받아 죽을 뻔 했네..
아니 식당에서 사람들 기다리는데 그 양아치들 상대해주게 생겼남?
결국 식당에서는 사람들이 술렁거리고 불만이 터져 나오고 그러면서 술이 들어가자 이기적인 본심들이
막 쏟아져 나오고...
이때 '림'이 짜잔~ 하고 밸리댄스를 춘다. 순간 사람들은 집중하고..
림의 춤은 계속되고 슬리만은 계속 헉헉대고 양아치들 쫓아다니고..두 장면이 교차로 나온다.
결국 슬리만은 골목 귀퉁이에서 꼬꾸라지고 땀에 젖은 림의 춤은 아슬아슬하게 계속 된다.
그리고 엔딩 크레딧....

생각해 보니 이 날 쿠스쿠스를 먹은 사람은 길거리 노숙자밖에 없네...
전처가 액댐한다고 일부러 찾아가 나눠 주었다.
그래서 슬리만이 그렇게 찾아도 만나지 못했다.

여기에는 프랑스로 이주해 온 아랍계 이민자들의 모습과 그들의 문화가 있으며, 가족들 간에 일어나는 갈등과 화합,
가족의 해체, 분열, 그리고 새로운 가족의 결합...또 신구 세대의 문제, 계층과 계급의 문제 등등이 들어 있다.
뭐...다 좋다. 누구는 끈끈한 가족애(?) 라고 해도 좋고 누구는 우리 시대의 아버지의 모습(?)이라고 해도 좋다.
근데 너무 사실적이어서 그런가? 짜증나고 복장 터져 죽을 뻔 했다.

쿠스쿠스를 먹는 전처 가족들 간의 대화, 악사들인 슬리만 친구들의 뒷담화, 기저귀를 떼지 못한 아이가 변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며 계속 야단치는 슬리만 딸의 끊임 없는 잔소리, 쿠스쿠스가없어져 찾으러 온 시어버지에게
남편이 바람 피고 시댁 식구들이 자기를 무시한다며 징징대며 퍼 붓는 며느리, 슬리만의 현재 아내와 그의 딸 림이
식당에 들어섰을 때 전처 딸들의 험담....
이런 장면들이 길다.....내가 길게 느껴서 그런지는 몰라도 길다...그래서 짜증나는데
마지막 슬리만이 그 노구를 이끌고 식당에는 사람들 기다리는데 동네 양아치들에게 휘둘리며 헉헉대는 모습까지
나오자 진짜 복장 터져 죽을 뻔 했다.


그래서 다시 한 편 더 본 것이
'우연의 연대기에 관한 71개의 단편들(1994, 71 Fragments of a Chronology)'이다.
아무르(Amour ,2012)로 더 잘 알려진 '미카엘 하네케 Michael Haneke '감독의 작품이다.

1993년 크리스마스 전날 뚜렷한 이유도 없이 열아홉살 대학생이 은행에 들어가 총을 난사한다.
영화는 이 대학생과 그 은행에서 죽게 되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그들을 오랜 시간 관찰한다.
흥미롭게도 등장인물들의 일상 사이사이에 유고 내전, 소말리아 내전 등 비극의 현장을 전하는 뉴스릴이
자꾸 끼어든다. 또 마이클잭슨의 어린이성추행사건도 뉴스를 통해 나온다. 마이클잭슨의 인터뷰 장면도..

제목을 보고는 71개의 다른 이야기들이 나오는 줄 알았는데 총을 쏜 대학생, 총에 맞은 세 명의 일상 이야기들이
71개의 장면으로 나오는 것인가보다...71개인지 세어보지 않아서리...
공대를 다니는 19세의 대학생, 은행의 현금 수송원 남자의 가족, 아이를 입양해 키우려는 부부와 난민 소년,
은행 직원인 딸과의 관계가 그리 좋지 못한 독거노인...
이 사람들의 무료한 일상이 짤막짤막하게 계속 바뀌며 나온다.
그러다 '총기 난사'라는 우발적인 결론으로 모두 연관지어 끝맺게 된다.

다들 '아무 이유 없이'라고 이야기 하는데 그런가?
주유소에서 기름 넣고 돈이 모자라 차를 뺄 수 없는 상황
주유소 직원은 수표는 안 받는다고 하고 현금 지급기는 멈췄고 뒤에서 차 빼라고 빵빵대고
길 건너 은행에 들어가니 크리스마스 이브날 길게 줄 서 있고
사정 이야기를 하니 줄 서 있던 남자가 패대기를 쳐 버린다.

물론 총으로 사람을 난사할 만한 이유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전쟁의 이유가 어디에도 없는 것처럼..
그러나 하도 이런 류의 사건들이 많이 생기고 또 거기에 대해 분석하고 어쩌고 하는 일들도 많다보니
오히려 단순하게 '젊은 애가 순간 열 받아서 그랬네..'

난 영화를 보면서 총을 쏜 대학생 보다 그 피해자들의 삶의 모습이 더 이해가 안 간다.
매일 아침 일어나 자식 잘 크고 행복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매일 6시면 칼퇴근하는 현금수송직원.
애가 어려서 밤새 아파 울고 아내는 잠 못 자고..둘이 밥 먹다 갑자기 사랑한다고 하니 아내는 그래서 어쩌라고..
그러다 또 갑자기 아내를 한 대 치고 아내는 벌떡 일어나려다 참고 밥 먹고..이게 더 이상하다
딸과 전화하는 노인의 대화 내용도 정말 이상하고 지루하고..
내가 보기에는 병적으로 아이를 입양하려는 부부도 이상하고...
오히려 총을 밀매한 부분 빼고는 대학생이 더 정상적으로 보인다.

뭐가 정상이고 뭐가 비정상인지..
뭐가 이유가 되고 뭐가 이유가 안 되는 것인지...

먼저 본 영화는 프랑스어와 간간히 러시아어 아랍어가 나오지만
이 영화는 내내 독일어로 주절주절 거리는 부분이 많아서 머리가 다 딱딱거린다.
특히 독거노인이 딸이랑 통화하는 장면 너무 길다...

앞 영화는 복장 터지고 뒤에 본 영화는 지루했다.
그래도 언제나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면 섭섭하다...어떤 영화든 말이다...
감동적이던, 마음이 싸하던, 먹먹하던, 지루하던, 짜증나던, 허무하던, 웃기던, 황당하던, 민망하던
모든 영화는 빛나는 구슬이 숨어 있다.
슬리만이 생선 담긴 상자를 스쿠터 앞에 싣고 작은 항구 마을을 달려가는 장면,
오스트리아로 넘어온 난민 소년이 노숙하고 구걸하면서 만화책 한 권을 훔치는 장면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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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uiya 2013/08/13 23:55

    제가 요새 읽은 책에도 쿠스쿠스가 나와요.
    맛있는 쿠스쿠스를 먹어보고 싶어요.
    저도 영화를 보면서,
    내가 편집하면 이렇게 안하겠다고 그럴 때가 있어요.

    • 제비 2013/08/20 15:24

      저도 한 번 먹어보고 싶어요~

  2. chippy 2013/08/15 07:36

    제가 아는 쿠스쿠스는 중동과 지중해 지역에서 먹는 좁쌀처럼 생긴 파스타로 올리브 오일, 허브와 섞어서 주로 먹지요. 삶아 놓으면 마치 좁쌀같아서 곡류로 알지만 파스타라는, 여기선 아주 흔하고 대중적인 재료예요. 개인적으로는 별로라...식감도 그렇고, 늘 차갑게 서빙되는 것도 그렇고...샐러드로 많이 애용됩니다.
    제비님 설명만 들어도 복장이 터집니다. ㅎ...요즘 같으면 절대 전 끝까지 보지않을 듯요. 결말도 그닥 궁굼하지 않을 정도로 지치는 스토리 같아요. ^^

    • 제비 2013/08/20 15:26

      영화에서는 따끈하게 거대한 요리로 먹는 것 같더니 요리 방법도 여러가지인가 봐요...

  3. 너도바람 2013/08/23 22:46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에서도 균열을 일으키는 것이 쿠스쿠스였지.
    유럽의 엉덩이에 앞정을 대충 덧붙여 놓은 땅, 모로코와 코를 콕 대고 있는스페인
    남부에 가면 쿠스쿠스를 꼭 먹어봐야겠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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