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나름 분주했다.
코로나 때문에 제대로 챙기지 못했던 어버이날을 맞아 이번에는 양쪽 어머님 뵙고 오느라 서울 나들이를 했다.
딸아이는 또 우리들 챙기느라 간청재에 잠시 다녀가기도 했다.
맡았던 프로젝트가 끝나고 휴가를 낸 딸아이는 여행을 제안했다.
제주도가 물망에 올랐지만 급하게 일정이 잡히고 또 2박 3일 짧은 기간이라서 어쩔까 고민하다가 텔레비전에서 대게를 먹는 모습을 보고는 '영덕 가서 대게나 먹고 오자'로 결정됐다.
'제주도 비용으로 대게를 실컷 먹자'가 이번 컨셉이었다.
어버이날에 아빠 생일도 겸사겸사 챙기느라 딸아이가 큰 선물을 했다.
바쁘고 어쩌고 하느라 아빠 생일을 제대로 챙기지 못해서 이번에 결심하고 준비했단다.
몇 년 전 나에게만 지갑을 선물하고는 아빠 것도 해 주고 싶은 마음이 컸단다.
그래서 용가리도 명품 지갑이 생겼다.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이다.ㅋㅋㅋ
전에 명품 지갑 어떠냐고 슬쩍 떠보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질색팔색하고는 필요 없다고 하더니 막상 선물을 받으니 입이 찢어진다.
영덕은 정말 대게 대게 대게 대게....
온갖 종류의 대게 조형물을 봤다.
황금대게, 대게 발, 바닥에 붙어 있는 대게, 벽에 붙어 있는 대게, 버스 정류장도 공원도 온통 대게 천지였다.
우리도 그에 부응하느라 이틀 저녁 대게를 먹고 점심으로 대게라면을 먹고 마지막 대게빵도 샀다.
첫날은 식당에서 코스로 나오는 것을 먹었고 둘째 날은 수산시장에서 대게를 사서 쪄 와서 숙소에서 먹었다.
숙소에는 온갖 대게를 먹을 수 있는 용품(?)들이 갖춰져 있었다.ㅎㅎ
대게철이 거의 끝나가는 무렵이지만 영덕 박달대게의 위엄은 당당했다.
가격은 러시아산의 두 배가 넘었다.
수산시장에서 영덕 박달대게와 러시아산 대게 두 종류를 구입했다.
여기까지 대게 때문에 왔으니 박달대게는 꼭 먹어야 했고 러시아산과 비교분석해 보자는 의견이었다.
대게 가격, 찌는 비용, 손질 비용까지 따로 지불했다.
비용이 들더라도 손질해 주니 정말 다행이었다.
손질하지 않은 통 대게를 가져왔다면 대게와 사투를 벌일 뻔했다.^^;;
딸아이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 여행하면서 먹었던 영덕대게 맛을 잊지 못했다.
그때 강원도에서 죽 내려오는 일정으로 여행하면서 영덕에서 게를 먹었었는데 그때 정말 맛있었다고 했다.
그 맛을 잊을 수 없어서 꼭 먹고 싶다고 했으니 실컷 먹도록 이틀 연속 대게..
딸아이가 말했다.
부모님과 같이 있을 때 먹어야 하는 음식이 한우, 장어, 대게라고...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와는 먹을 수 없는 고가의 음식이니 부모님에게 얹혀서 먹어야 한다고..ㅋㅋㅋ
영덕대게 맛을 기억하니 러시아대게와 구별할 수 있다고 자신만만해했다.
그런데 막상 먹어보니 구분이 어려웠다.
박달대게는 집게 다리에 박달대게를 표시해 주는 고리를 달고 있다. 폼나게 발찌를 착용하고 있다.
그래서 구분해서 먹을 수 있었는데도 나는 그냥 대게맛...ㅠㅠ
입이 둔해서 그런가 잘 모르겠다.
용가리도 그렇고... 딸아이는 어쩌고 하면서 다르다고 했지만 딱 구분하는 것은 아닌 듯..
그냥 '영덕 박달대게를 먹었다'에 의미를 두는 것으로.. 앞으로는 미련 갖지 말고 그냥 러시아산 대게 먹어야겠다.
말 그대로 '대게'여행이었지만 메타세쿼이아 숲도 거닐고 동해 바다도 실컷 보고 아기자기한 카페도 들러 노닥거렸다.
풀빌라 숙소에서 풀에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월풀 욕조가 있어서 바다를 보면서 반신욕을 즐겼다.
그렇게 놀고 딸아이는 다시 회사로 복귀해야 하는 현실을 슬퍼하며 대게빵 사 들고 영덕에서 헤어져 서울로 돌아갔다.
헤어지고 얼마 후 딸아이의 전화.
엄마 뒷좌석에 혹시 내 지갑 있어?
뭐?
뒷좌석을 돌아보니 딸아이 지갑이 구석에 처박혀 있다.
내가 미쳐...ㅠㅠㅠ
함양 돌아와 빠른 등기로 보내줬다.
물론 딸아이는 자아비판을 열심히 했고 나는 열린 뚜껑 닫느라 힘들었다.
아... 정말 왜 그럴까.. 왜? 왜? 왜? 왜?
그런데 솔직히 딸아이의 전화를 받을 때 차에 지갑이 없을까 봐 걱정했다.
오히려 차에 있어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래서 뚜껑이 반만 열렸었다.
나도 점점 익숙해지나 보다.
* 대게빵은 팥이 들어 있는 기존의 풀빵들(붕어빵, 국화빵, 호두과자 등)과 비슷한데 빵 반죽에 대게 분말이 들어가 있어
짭짤하고 게맛이 난다.
맛이 이상할 것 같았는데 의외로 나쁘지는 않다. 그런데 다시 사 먹을 것 같지는 않다.
귀여운 모양에 만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