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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풀이

밥 먹다가, 울컥

by jebi1009 2024. 4. 3.

 

셰프이자 작가인 '박찬일'의 산문집.

시사인에 연재했던 것을 단행본으로 엮은 책이다.

자신의 추억과 음식을 적절하게 버무렸다.

사실 추억의 8할은 음식이다.

음식을 보면 누군가 생각이 나고, 그 사람과 함께 했던 분위기 감정이 생각나기 마련이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를 생각하면 그와 먹었던 음식이 생각나고 그때의 분위기가 생각난다.

이번 책에서 그는 자신의 삶을 거쳐간 사람들과의 소설 같은 추억들을 어렵게 꺼내 보인다.
때로는 너무 그리워서 수년간 입에 올리지 못했던 사람을,
서럽고 고달파서 쉬이 삼키기 어려운 주방노동자들의 사연을,
또 때로는 서울 변두리 동네 가난했던 유년 시절의 추억을 끄집어내기도 하면서 연신 사라져 가는 것들을 어루만진다.

 

박찬일은 중앙대 문예창작과를 나와 잡지사 기자 생활을 하던 중 갑자기 이탈리아로 요리 공부를 떠난다.

셰프로 성공했고 사업으로도 성공한 사람.

하지만 그의 추억 속에는 너무도 가난한 시절이 줄줄이 엮여 나온다.

그 가난한 시절도, 어려웠던 유학 시절도 다 음식으로 풀어나간다.

 

조금은 예상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지만 그중 마음에 남는 이야기가 있다. 

작가가 강남 어느 식당에서 함께 일했던 '이모'에 관한 이야기다.

주방 보조원. 설거지를 전담하며 직원들 밥도 하고 바쁠 때는 이런저런 일을 하는 사람.

이모, 찬모, 아줌마, 엄마 등등의 호칭으로 불리는 사람.

'가장 낮은 일인 밥 하는 직종에서도 더 낮은 몫인 보조하는 사람들, 일꾼을 떠받치는 분들'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런데 이 분들은 당연히 정식 직원이 아닌, 파견인지 일당인지 하루살이로 오는 그런 노동자이기 때문에

명절에 돌리는 참치캔도 받지 못하고 산재가 될 리도 없는 그냥 투명인간 같은 분들이다.

 

 아무튼 그렇게 우리 파출 아주머니와는 인연이 되어 오래 같이 일했다. 내가 식당을 옮기면 같이 옮겼다. 우리가 해드린 건 명절날 참치캔 빠뜨리지 않고 직원으로 4대 보험 들어 드리는 것이었다. 거기에다 과장 부장 직급 부르듯 호칭 하나 만들어드린 것뿐이었다. 돈도 안 드는 일인데.
 그리하여 그이는 '총무님'이 됐다. 총무가 어떤 일인지 다들 아실 게다. 집안 숟가락 숫자부터 온갖 허드레 사정을 뚜르르 꿰는. 그이는 처음엔 부끄럽다고 사양했고 난 명함까지 하나 파서 드렸다. 총무 아무개. 그러자 그이는 아주 정색을 하고 얘기했다. 아마도 눈가가 붉어지셨던 거 같다.
 "세푸님. 저는 태어나서 처음 벼슬해 봅니다. 고맙습니다."
 아줌마나 이모 같은 혈연의 호칭은 따스하고 정겹다. 그러나 때로는 직장이란 조직이 지켜야 할 룰과 혜택에서, 예의에서 제외되기 쉽다. 우리가 엄마나 누나에게 그토록 못되게 굴었던 것처럼.      -이모는 노동자가 아니라서 그랬을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약자들의 존재는 사라지지 않는다.

세상이 발전해 가지만 그 안에서 또 신종 약자들이 생겨난다.

약자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마음들도 세상이 발전하는 만큼 커졌으면 좋겠지만 그것은 아닌 듯하다.

 

65년 생인 작가와 어느 정도 겹치는 부분이 있어 내 추억도 소환된다.

짜장면을 숟가락으로 잘게 잘라서 술안주로도 먹어 봤고(짜장면도 그렇지만 라면도 안주라면은 잘게 부숴서 짜게 끓여 떠먹었다), 소금 안주 막소주도 기억난다.

대학 다닐 때 정선 산골짝으로 답사 갔었는데 비가 오는 날은 마을 분들이 일하러 가지 않고 작은 가게에 모여 술을 마셨다.

됫병들이 막소주와 굵은소금.

민요 채집한다고 그곳에 참가했던 과선배는 막소주 받아 마시다가 업혀 나왔었다. ㅎㅎ

그리고 수월암 달빛 아래서 맑은 한산 소곡주(증류주 48도)를 죽염 안주로 먹던 연관스님과의 시간도 생각난다.

 

오늘은 비가 내린다.

어제까지 빡세게 삽질하다가 오늘은 집 안에서 책장을 넘기며 뒹굴거린다.

이런 날은 짬뽕 국물에 차가운 소주가 생각난다.

중국집 뒷방에 박혀서 대낮부터 마셨던 소주. 미지근한 소주에 단무지도 맛있었다.

지금 냉장고에 차가운 소주는 있는데 짬뽕 국물은 요원하다.

오늘, 굵은소금에 소주를 마셔볼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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