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지나간 것인지 한낮의 작열하는 태양에 빨래 하나는 잘 마른다.
그동안 찝찝하게 말리던 빨래를 원 없이 매일 뽀송뽀송하게 말리고 있다.
마당에 줄 치고 빨래를 탁탁 털어 말리는 것이 소원이라던 지인이 있었는데 나는 그 소원을 요즘 매일 하고 있다.
요와 베개, 방석과 쿠션도 따글따글한 햇빛 아래 거의 굽고 있다.ㅎㅎ
말 그대로 불볕더위를 우리집이라고 피해 갈 수는 없지만 그래도 사방 문 열어 놓고 마루에 등 대고 누워 있으면 살 만하다.
움직여 무언가를 하면 땀이 나지만 가만히 누워 있으면 매미 소리와 시원한 바람이 함께 들어와 좋다.
움직일 일이 있어 더위를 느끼면 미지근한 물 한 번 끼얹고 다시 마루에 등 대고 눕는다. ㅋㅋ
해가 넘어가는 무렵이면 산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그때는 움직여 무언가를 해도 된다.
시어머니가 편찮으셔서 서울에 자주 가게 되는데 항상 느끼는 것이, 서울에는 없는 바람이 우리집에는 있다.
내가 우리집에서 또 좋아하는 것이 창문에 비치는 불빛이다.
그 빛이 좋아서 한식 덧문을 고집했었다.
엊그제 해가 넘어가 어둑해질 무렵 툇마루에 나갔다가 오랜만에 다시 그 빛을 보고 기분이 좋았다.
첩첩산중에도 없는 마을이 여긴 있습니다. 잎 진 사잇길 저 모랫둑, 그 너머 강기슭에서도 보이진 않습니다. 허방다리 들어내면 보이는 마을.
갱(坑)속 같은 마을. 꼴깍, 해가, 노루꼬리 해가 지면 집집마다 봉당에 불을 켜지요. 콩깍지, 콩깍지처럼 후미진 외딴집, 외딴집에도 불빛은 앉아 이슥토록 창문은 모과 빛입니다.
기인 밤입니다. 외딴집 노인은 홀로 잠이 깨어 출출한 나머지 무를 깎기도 하고 고구마를 깎다. 문득 바람도 없는데 시나브로 풀려 풀려 내리는 짚단, 짚오라기의 설레임을 듣습니다. 귀를 모으고 듣지요. 후루룩 후루룩 처마깃에 나래 묻는 이름 모를 새, 새들의 온기를 생각합니다. 숨을 죽이고 생각하지요.
참 오래오래, 노인의 자리맡에 밭은기침 소리도 없을 양이면 벽 속에서 겨울 귀뚜라미는 울지요. 떼를 지어 웁니다. 벽이 무너지라고 웁니다.
어느덧 밖에는 눈발이라도 치는지, 펄펄 함박눈이라도 흩날리는지, 창호지 문살에 돋는 월훈(月暈)
- 박용래, 「월훈(月暈)」
내가 참 좋아하는 시.
'이슥토록 창문은 모과 빛입니다.'
이런 창문을 갖고 싶었다.
지금은 능소화와 금꿩의다리가 피었다 지고 있다.
우리집 꽃들은 다들 늦게 피고 어느 틈에 사라진다.
골고루 다 보아주어야 하는데 말이다.
간청재看聽齋
看梅聽雨勸人茶 간매청우권인다
窓前明月請與家 창전명월청여가
매화 바라보고 빗소리 들으며 벗 불러 차 마시니,
매화 바라보고 빗소리 들으며 벗 불러 차 마시니,
창 너머 밝은 달이 한 식구 되고 싶어 하네
매화를 보는 집, 빗소리를 들으며 친구를 초대해 차를 마시는 집, 그리고 창밖의 달도 ‘나도 끼워줘’ 하며 함께 자리하는 집.
매화를 보는 집, 빗소리를 들으며 친구를 초대해 차를 마시는 집, 그리고 창밖의 달도 ‘나도 끼워줘’ 하며 함께 자리하는 집.
연관스님이 지어주신 우리집 이름.
우리집은 간청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