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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풍농월

땅콩은 누가 먹었을까?

by jebi1009 2024. 9. 5.

한 달 정도 있으면 땅콩을 수확하게 된다.

봄에 모종을 심어 가을에 수확하니 한 해 동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땅콩을 수확해서 햇볕에 말리고 겉껍질도 까야하는 것이 힘들기도 하지만 생땅콩을 바로 볶아 먹는 것이 정말 맛있어서 땅콩은 거르지 않고 심어왔다.

분홍빛이 도는 생땅콩을 전자레인지에 돌리고(나는 팬에 볶지 않고 전자레인지로 한다)  차게 식혀 먹으면 참 맛있다.

물론 식히지 않으면 껍질이 까지지 않는다.ㅎㅎ

겨우내 술안주로 그만이다.

땅콩은 처음 심었을 때 참 신기했다.

저녁 무렵이면 잎들이 오므라드는 것도 그렇지만 땅콩이 달리는 것도 신기했다.

나는 땅콩이 감자처럼 생기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감자랑 다르다.

땅콩은 꽃이 피고 그 끝에서 빨대 같은 대롱이 나와서 땅 속으로 들어가 그 끝에 땅콩 꼬투리가 생긴다.

엄청 신기하다.^^

그래서 땅콩은 좀 돌봐 주어야 한다.

물론 풀 뽑아 주는 것은 모든 작물의 기본이고 땅콩은 거름도 한 번 해 주어야 하고 흙도 더 부어 주어야 한다.

꽃이 필 무렵 덧거름을 준다. 나는 그냥 주변에 퇴비를 조금씩 올려 준다.

그리고 대롱 끝에 달리는 땅콩 꼬투리가 땅 속에서 잘 자라라고 흙을 주변에 덮어 주어야 한다.

뭐 잘 알아서 그렇게 한 것은 아니고 감자도 그렇고 땅콩도 그렇고 그냥 딱 보면 흙을 좀 덮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ㅎㅎ 

 

보통 땅콩은 두 번 정도 돌봐 주면 되는데 이번에는 여러 번 돌봐 주었다.

땅콩이 잘 자라고 있었는데 문제가 생긴 것이다.

우리 집 주변에서 떠나지 않는 고양이들과 그 꼬물이들 때문이다.

올해 새끼를 낳아서 우리 집으로 데려왔는데 그 꼬물이들이 땅콩밭에 들어가 소담하게 올라온 땅콩 한가운데 올라타는 것이다.

그렇게 땅콩밭에 들어가 똥도 누고 서로 장난질 치면서 땅콩에 올라타니 줄기들이 납작하게 누워버리고 부러진 것들도 생겼다.

내가 야단쳤지만 오히려 장난치는 줄 알고 요리조리 피해 다니며 땅콩에 올라타는 것이다.

낮에는 감시하지만 밤에야 알 수 없으니 매일 살펴보고 땅콩 줄기 부러진 것이나 납작하게 누워버린 땅콩들을 추스르는 것은 내 몫이었다.

 

 

 

그런데 더 이상한 일이 생겼다.

땅콩 줄기 납작하게 눕고 부러진 것은 알겠는데 군데군데 흙이 파여 있고 알맹이가 생긴 땅콩들을 까먹은 흔적들이 있는 것이다.

땅콩 껍질이 널려 있고 땅 속에 있는 땅콩들이 밖으로 나와 있다.

고양이들이 땅콩을 먹나?

땅콩 옆을 파서 땅콩이 드러나는 것은 알겠는데 땅콩을 까먹는 것은 아무래도 고양이들이 아닌 것 같았다.

꼬물이들 때문에 땅콩 흙 부어 주는 것을 두 번째 하는데 처음 흙을 부어줄 때도 여기저기 땅콩 껍질들이 보였었다.

땅 속을 파고 온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두더지는 아닌 것 같고 그럼 들쥐? 다람쥐?

쥐들이 흙 속에 있는 땅콩을 파서 껍질을 까먹나?

아님 새들?

새들이 벌레들 잡아먹느라 텃밭 사이에 있는 것을 볼 때도 있지만 땅을 파서 땅콩을 꺼내서 껍질을 까서 먹나?

며칠 전부터 까투리 한 마리가 와서 꽥꽥거리며 텃밭 끝에서 왔다 갔다 하던데 꿩이 땅콩을 먹나?

나는 꿩이 그렇게 시끄럽게 우는지 정말 몰랐다.

고라니 저리 가라 꽥꽥 거린다.

너무 시끄러워 마루에서 낮잠 자던 용가리가 잠을 깼다. 

어쨌든 까투리가 먹었을까?

 

땅이 한 움큼 파여 있고 땅콩이 여기저기 드러났다.
땅콩 옆에 이렇게 껍질들이 널려 있다.
범죄의 현장. 누가 이렇게 까 먹었을까??
다음달 수확할 때까지 무사하기를!

 

 

오늘 여기저기 파여서 땅콩들이 드러난 것들을 다시 흙을 덮어 주고 줄기도 추스르고 땅콩 돌보는 일을 했다.

이렇게 땅콩을 여러 번 돌본 적이 없는데 올해는 이상하다.

용가리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다가 대충 결론을 냈다.

고양이 꼬물이들이 흙을 팠고 그래서 땅콩이 드러나자 꿩이 와서 먹었다고... 아님 다람쥐, 아님 들쥐..

그래도 이상하다. 

땅콩 옆에 있는 흙을 판 것은 고양이가 그런 것 같지만(똥을 묻어 놓은 것을 보면) 한 가운데 흙을 판 것은 또 고양이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관찰 카메라를 달고 싶은 심정이지만 할 수 없지.

땅콩 예닐곱 포기가 손상이 되었다.

아... 안타깝다!

다음 달 수확할 때까지 더 이상 파헤쳐진 땅콩이 없었으면 좋겠다.

지금껏 여러 꼬물이들이 우리 집을 거쳐갔지만 텃밭을 건드리는 아이들은 없었는데 올해 꼬물이들은 참 유별나다.

호기심 만발, 장난기 가득이다.

어쨌든 나는 내 땅콩을 사수할 것이다. 하지만 방법은 없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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