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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풀이

괜찮아

by jebi1009 2024. 11. 1.

태어나 두 달이 되었을 때

아이는 저녁마다 울었다

배고파서도 아니고 어디가

아파서도 아니고

아무 이유도 없이

해 질 녘부터 밤까지 꼬박 세 시간  

   

거품 같은 아이가 꺼져버릴까 봐

나는 두 팔로 껴안고

집 안을 수없이 돌며 물었다     

왜 그래.

왜 그래.

왜 그래.     

내 눈물이 떨어져

아이의 눈물에 섞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말해봤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괜찮아.

괜찮아.

이제 괜찮아.     

 

거짓말처럼

아이의 울음이 그치진 않았지만     

누그러진 건 오히려

내 울음이었지만, 다만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며칠 뒤부터 아이는 저녁 울음을 멈췄다

   

서른 넘어야 그렇게 알았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괜찮아     

왜 그래, 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                             

                                                        < 괜찮아 / 한강>

                                                                                  

 

시를 읽으며 내내 울컥했다.

내가 해야 했던 말, 나에게 필요했던 말, 그리고 지금 내가 해야 할 말, 나에게 필요한 말.

왜 그래, 가 아니라 괜찮아.

 

딸아이도 많이 울었었다.

한밤중 이유 없이 몇 시간을 울어대서 병원 응급실로 달려간 적도 많다.

나도 같이 울었다.

왜 그래. 왜 그래.

나는 그때 괜찮아. 괜찮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나는 지금도 그렇다. 

나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아이에게도, 왜 그래...

지금은 알겠다.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아이에게도 필요한 말은, 괜찮아.

누군가 나에게 이제 괜찮아, 라고 말해 주기를.

괜찮아 괜찮아 이제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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