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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풀이

외규장각 의궤

by jebi1009 2024. 12. 3.

시어머니 뵈러 서울에 다녀왔다.
아프신 어머니와 그 형제 가족들...
만남을 갖는 것이 힘들 때가 더 많다.
그리고 늙고 병들어 죽어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바라보는 심정이 괴로운 것도 어쩔 수 없다.
어머니는 많이 회복하셔서 어느 정도 기력을 찾으셨지만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듯싶다.
그러나 어머니는 어머니가 생각하는 것이 있고 형제들은 또 그들 각자 생각하는 것이 있으니 편안하게 생활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
용가리와 나는 그저 한발 떨어져 지켜보는 수밖에...
우리는 언제나 아웃사이더....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뭔가 마음이 스산해져서 간청재로 돌아오기 전에 다른 것을 조금 채우고 싶다.
박물관에 가 본 지도 오래되었구나..
편안하게 여유 있게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빗살무늬 토기를 보면서 다른 생각을 하고 싶었다.
오전 일찍 나와서 무작정 박물관으로 갔다.
커피를 마시며 몸과 마음을 리셋했다.
그리고 거의 하루 종일 박물관에 있었다.
 

장기판과 바둑판. 소소한 것들을 보는 재미^^

 
'사유의 방'에서 멍 때리고 2층 서화실 중심으로 어슬렁거렸다.
박물관이 조정 중이어서 빗살무늬 토기를 보지 못했다.ㅠㅠ
그 전시실이 공사 중이었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외규장각 의궤를 보게 되었다.
그런 전시실이 만들어진 것도 몰랐다.
외규장각 위궤실을 따로 만들어 11월 15일부터 공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외규장각은 말 그대로 정조대왕이 만든 규장각의 외부 서고書庫다.
강화도가 국방상 요충지이고 방어 거점으로, 국가의 중요한 기록물을 보관하기에 적절한 곳으로 여겨져 외규장각을 만들고 국가 중요 기록물을 보관했다.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가 퇴각하면서 외규장각에 있던 의궤와 중요 서적들과 왕실 자료들을 약탈하고 불을 질렀다.
그때 외규장각이 불타면서 그 안에 남아 있던 5천여 책의 귀중한 자료들도 함께 불타버렸다.
프랑스인들은 훔쳐가서도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처박아 두었다.
100여 년이 지난 후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서 근무하던 한국인 박병선 박사에 의해 실체가 알려졌고 1991년부터 반환 요청이 시작되고 그 후 여러 협상을 거쳐 2011년에야 297 책이 모두 돌아오게 되었다.
145년 만에 돌아왔지만, 반환은 아니고 영구 임대라고 당시 시끄러웠던 것이 기억난다.
이번 전시실에서 보니 책의冊衣를 설명하며 서글픈 의궤의 운명을 써 놓았다.
책을 싸고 있던 푸른 비단이 다 헤어져 썩어 버리고 그곳에는 프랑스가 매겨 놓은 숫자만 있었다고...
원래 형태를 유지하는 의궤는 11 책뿐이라고 한다.
19세기 유럽 사람들이 자행한 것들을 보면 참 야만스럽고 잔인하기 그지없지만 왜 퇴각하면서 자신들에게는 별 소용도 없는 것들을 가져갔으며 또 불은 왜 지르는 것인지..
군사적으로 중요한 시설도 아닌데 말이다.
 
새로 만든 외규장각 의궤실은 이전 박물관 설명문과는 달리 조근조근 친절하게(?) 되어 있어 좋았다.
의궤는 어람용(왕의 열람을 위한 것)과 분상용(나누어 보관하기 위한 것)이 있는데 외규장각 의궤는 어람용 의궤가 291 책, 분상용 의궤가 5 책으로 어람용과 분상용의 차이를 잘 보여 주었다.
 

 
 
 
의궤를 보면 그 행사를 진행하면서 얼마나 치밀하고 꼼꼼하게 기록하고 관리했는지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의례에 쓰려고 가져왔다가 돌려준 물품과 금액까지 기록한다.
 
 

 
 
그리고 이 자세한 기록으로도 모자라 후대 사람들이 예법에 맞게, 시행착오 없이 원활하게 일을 추진할 수 있도록 그림까지 그려 넣었다. 그것도 아주 세밀하게 말이다.
 

 
 
 
숙종은 3번 결혼하여 그 절차가 아주 소상히 기록되어 있다.
 

왕세자 시절 숙종의 첫 번째 결혼 과정을 기록한 의궤
숙종의 두 번째 결혼 과정을 기록한 의궤(인현왕후와의 결혼 과정을 기록)
숙종의 세 번째 결혼 과정을 기록한 의궤

 
 
그리고 또 놀란 것이 국왕의 장례 절차다.
왕실의 장례(흉례凶禮)는 국장國葬이라고 하며, 3년상으로 진행된다.
기간이 길고 절차가 복잡해서 국장 때에는 어려 개의 도감[국장도감, 빈전(혼전)도감, 산릉도감]을 만든다.
국왕이 승하하면 5일 내에 '빈전'을 만들어 시신을 5개월간 모시는데, 살아있을 때와 같이 끼니마다 음식을 올린다.
그러면서 좋은 장소를 정하여 왕릉(산릉)을 만들고 5개월이 지나면 시신을 산릉으로 옮겨 묻고, 국왕의 혼이 깃든 신주를 모셔와 궁궐에 봉안한다. 신주를 모신 전각을 '혼전魂殿'이라고 한다.
그리고 승하로부터 27개월이 지난 때에 종묘에 신주를 옮겨 봉안하면 그것으로 국장의 절차가 끝난다.
그냥 3년상이 아니라 이러한 절차가 있는 것이었다.
 

의궤(儀軌)란 '의식(儀式)의 궤범(軌範)'이라는 뜻으로 의식의 모범이 되는 책을 의미한다. 의궤는 조선시대 국가나 왕실의 중요한 의식과 행사를 개최한 후 그 전 과정을 기록한 일종의 종합 보고서이다. 의궤에는 필요에 따라 그림을 함께 그려 넣어 이해를 돕기도 하였다. 의궤는 의례의 전말(顚末)을 자세히 기록하여 후대 사람들이 예법에 맞게, 그리고 시행착오 없이 원활하게 일을 추진할 수 있는 모범적인 전례(典例)를 세우기 위해 제작되었다. 의궤에는 국가나 왕실의 주요 행사의 준비와 진행 과정, 의례 절차와 내용, 소용 경비, 참가 인원, 포상 내역 등을 상세하게 기록하였는데, 이를 근거로 국정 운영의 모범을 삼고자 했던 것이다.
즉, 의궤는 예치(禮治)와 문치(文治)라는 조선시대 국가의 통치 철학과 운영체계를 보여주는 의미 있는 기록물이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조선왕조의궤는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국립중앙박물관>

 
 
 
존재 자체만으로도 상스럽고 천박하고 허접스러운 대통령실을 보고 있자니 새삼 예치(禮治)와 문치(文治)라는 조선시대 국가의 통치 철학과 운영체계를 보여주는 의궤의 기품이 더 절절하게 다가온다.
언제까지 이 천박한 꼬라지를 보고 있어야 할 것인가... 어디까지 망가질 것인가....ㅠㅠㅠ

* 덧붙임
미친새끼 이렇게 자폭하는구나!
<현재 시간 12월 4일 새벽 1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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