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순희 말하고 유시민 듣다'
1975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희생자 우홍선의 아내 강순희의 자서전이다.
93세 강순희 할머니의 구술을 유시민 작가가 듣고 정리했다.
이 책은 강순희 할머니의 말속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과 역사적인 사건들, 작은 글이라도 꼼꼼하게 자료를 찾아 설명해 주고 있어 그 시대를 이해하는데 무척 도움이 된다.
나도 이번에 그 시대에 야만적으로 조작되었고 많은 희생자들이 있었던 비극적 사건에 대해 다시 한번 정리하는 기회가 되었다.
책을 다 읽고 정말 야만적인 시대였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 시대를 관통한 할머니의 삶은 씩씩하고 아름다웠다.
일제강점기 평안북도 박천에서 태어나 하얼빈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초등학교 4학년 때 박천으로 돌아와 해방을 맞이하고,
평양1고녀 3학년 재학 중 한국전쟁이 나서 가족들과 남한으로 피난 와서 옷장사, 과일장사, 보육원교사를 거쳐 한국은행에 입사한다.
이때 남편 우홍선을 만나는데 남편과의 사랑 이야기는 정말 놀라웠다.
남편이 졸업한 학교를 중앙정보부에 조사받으러 가서 알았다는 사실.
'학교니 집안이니 하는 것도 안 봤어요. 아예 물어보질 않았어. 그냥 같이 있으면 좋았고, 얘기하면 재미있었지. 그러니까 만났고, 마음에 드니까 결혼한 거야.'
첫 데이트 때의 이야기가 너무 예쁘다.
금정산 범어사에 갔는데, 가면서 노래를 불렀어요. 자기가 먼저 부르면서 가더라고, 성악하는 친구한테 배웠다면서 '노래의 날개 위에 그대를 보내오리, 행복에 가득 찬 그곳 아름다운 나라로~' 그 노래를 너무 잘 부르는 거야. 나도 한 곡하라고 해서 '나 혼자만이 그대를 사랑하여~'불렀어요. 한창 유행하던 노래였는데 은행 다니면서 배웠지. 비가 와서 피했는데 옆은 다 뚫려 있고 지붕만 있는 그런 데였어요. 거기서 비 내리는 거 보면서 불렀어요. 그랬더니 유행가 말고 다른 것도 해 보래요. 나를 테스트하나 싶더라고. 이북에 있는 친구들 생각하면서 '사랑하는 나의 친구 언제나 돌아오려나, 썩은 나뭇가지에서 꽃이 필 때 오려나, 일구월심 나의 맘에 그대 마음 간절하다~'를 불렀어요. 그랬더니 자기가 받아서 '웬 아이가 보았네 들에 핀 장미화, 갓 피어난 어여쁜 그 향기에 탐나서~'를 부르더라고, 알고 보니 그게 그 사람 십팔번이었어.
비 오는 날 서로 노래를 주고받는 그 모습이 정말 순수하고 낭만적이다.
이렇게 시작된 사랑이 평생 할머니의 삶을 지탱해 준다.
그 무섭고 야만적인 시절에 씩씩하게 싸움을 이어갈 수 있는 힘은 바로 사랑이었다.
남편을 사랑했으니까. 그건 뭐, 말할 필요도 없죠. 그 사람 없이는 못 살 것 같았어요. 내 숨이 끊어질 것 같았어요.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몰라. 그 힘으로 그렇게 쫓아다닌 거였겠지. 구명운동 하러 다니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해요. 아침에 일어나서 어디 일하러 가는 것처럼 딱딱 맞춰서 했지. 팔자 한탄하지 않고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어. 갈 데도 많고 할 일도 많았어요. 기독교회관도 가야 했고, 남편한테 가서 옷이든 뭐든 넣어줘야 했으니까. 어디서도 꾀죄죄해 보이지 않으려고 밤에는 의상실 할 때 입던 옷 꺼내서 미리 준비했지, 아침에 나가서 밤늦게 돌아왔지만 집안일 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애들 키우면서 해낼 수 있었어요. 구명운동은, 최선을 다해서, 할 수 있는 만큼 했어요.
중앙정보부 조사받으러 갈 때나 남편 옥바라지 하러 갈 때 일부러 선글라스에 옷을 쫙 빼 입고 갔다고 하는 할머니의 말에서 당당하고 멋진 배포가 드러난다.
피난 와서 산에 나무하러 갈 때 평양1고녀 교복을 입고 갔다고 하니 말이다.
할머니의 당당함과 자신감은 사랑에서 형성되었다.
할머니의 구술에서 가장 많이 했던 말이 '나 진짜 부모님 사랑 많이 받았어요'다.
남존여비, 큰딸은 살림밑천.. 등이 기본이었던 시절,
큰딸을 소모하지 않고 귀하게 여기고 존중했던 부모님의 시대를 앞서간 자식 사랑이
시대를 앞서가는 여성, 주체적이고 자존감 높은 여성으로 만든 것이다.
또한 그 야만의 시대에 외국인 선교사로 한국에 와 있던 신부님들이 정말 고마운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또 생각하게 되었다.
고마운 신부님들, 잊지 못하죠. 죽을 때까지 잊지 않을 거예요. 다들 무서워하고 외면했고, 친척들까지 우리를 멀리하려 했는데 신부님들은 안 그랬어요. 외로운 우리를 보듬어줬어요. 사랑해 줬어요. 나는 친정 부모님이 가톨릭이었고, 이북에서 제일 친했던 친구가 수녀원 갔다가 돌아온 일도 있었어요. 신부님들이 어렵지 않았어요. 그냥 떼쓰듯이 그렇게 했어요. 신부님들이 나를 믿고 받아들여 주신 거겠죠. 나를 왜 믿었겠어요? 그냥 남편 살려 달라고 호소한 게 아니라 근거를 갖고 폭로했으니까 더 믿을 수 있었겠죠. 외국에서도 우리 호소문을 다 믿어줬고요.
함세웅 신부님에게 영세를 받았지만 종교를 믿지 않는다고 나중에 말한다.
종교라는 건 다 사람이 만들어 놓은 것이고 '죽은 다음에 하늘나라에서 만난다는 것이 좀 웃기는 이야기라고 생각해. 세포가 활동을 멈추면 정신도 같이 멈추는 거 아닌가?'라는 말에 나는 감탄했다.
함 신부님도 오래 사셨으니 자신의 종교관을 깨달으셨을 것 같다고 말한다.
할머니의 종교는 사랑이다.
김수환 추기경님, 오글 목사님, 지학순 주교님, 최기식 신부님, 원주하고 인천의 신부님들, 목사님들, 다 우리 편이었어. 공덕귀 여사도 고맙고요. 내가 박정희 때문에 억울한 일 당했지만 사랑도 많이 받았어요. 생각해 보면 난 어렸을 때부터 사랑 참 많이 받았어. 부모 사랑도 많이 받았고, 남편 사랑도 많이 받았고, 직장 상사들한테도 사랑받았어. 내가 참 인덕이 많은 것 같아.
살면서 제일 행복했던 일, 살면서 제일 좋았던 하루, 좋았던 시간을 묻자 남편과의 만남이라고 답한다.
남편과 만나 연애하고 한국은행 다니면서 돈 벌고 결혼하고 그때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고
남편과의 첫 데이트 범어사 가서 노래 부르던 그날이 가장 좋았던 하루였다고.
93세 할머니는 자신을 이렇게 평가한다.
나는 불의를 참지 못하는 사람이에요. 학교 다닐 때도 선생님한테 시시비비를 딱딱 따졌어요. 누가 남한테 피해 주는 거를 그냥 볼 수 없어요. 개인적으로 소소하게 잘못하는 일은 뭐라 안 해요. 세상에는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으니까. 하지만 국가를 망쳐놓는다든지 하는 걸 보면 참지 못해요. 만약 윤석열이를 만난다면 가만있지 않죠. '너 잘못했어!'그렇게 말할 거야.
할머니의 인생이 어떠했냐는 질문에 할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아무 여한이 없어요. 오늘 밤에 죽는다 해도 괜찮아. 남편 일로 좀 힘들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으니까. 신랑도 잘 만났고, 사랑도 잘 했고, 남편 일로 싸울 때도 잘 싸웠어요. 자기한테 주어진 것을 극복하면서 사는 게 인생이잖아요. 나한테 주어진 환경과 조건에서 내 힘껏 노력하고 살았어요. 최선을 다했어요. 남편 죽었을 때는 막 같이 죽고 싶었지. 그런 생각이 든 순간이 여러 번 있었어. 그렇지만 아이들 위해 살아야겠다 싶어서 고비를 넘겼어요. 사랑이 있으니 살아집디다.
사는 동안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해요, 불행하지 않았어요. 행복하게 만났고, 행복하게 살았고, 행복하게 애들 키웠고, 일도 닥치는 대로 행복하게 했고, 남편 때문에 싸울 때도 있는 힘을 다했어요. 행복이란 게 사람마다 달라요. 남들 눈에는 행복해 보여도 그 사람 자신은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래서 '행복했다' '불행했다'그런 것으로 말하지 않은 거예요. 주어진 운명을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며 살았다는 걸로 난 만족해요.
93세에 자신의 인생을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사랑은 정말 위대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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