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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풍농월

하고 싶은 일? 2014/11/11

by jebi1009 2018. 12. 26.

용가리 깁스가 아직 진행 중이라 금요일 오후 지리산 고속에 몸을 실었다.
(우와~ 오랜만에 보는 엄청 상투적인 표현..버스에 몸을 실었다~ ㅋㅋ 왜 웃기지?)
사실 내가 운전해서 가도 되지만 용가리가 엄청 반대하고(너 운전하는 동안 옆에 앉아 있느니 차라리 뛰겠다)
둘이 가는 것은 버스이용이 비용 면에서도 절감된다.

나는 운전은 잘 한다(?) 그런데 길을 잘 모른다.
나는 백 번 쯤 다닌 길도 항상 새롭다.
길에 대한 자신감이 없으니 운전에도 항상 자신이 없다.
물론 가깝게 뻔질나게 다니는 길은 상관 없다.
그래도 20년 간 내 밥벌이 하는 곳은 잘 찾아 다녔으니까 말이다.(사실 고백하자면 개학 날 조금 헤맨다)
아무리 뻔질나게 다닌 길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가면 지나치기 일쑤이다.
백 번 쯤 다닌 양수리도 맨날 어그적대다 너도님에게 혼이 난다.
'와~ 너도 끝내준다. 이렇게 다니고도 아직도 헤매냐?'
그렇게 많이 간 간청재 가는 길도 막상 운전대를 잡으면 어떻게 될 지 모른다 ㅠㅠ
'니가 운전했으면 요기서 기냥 직진으로 갔겠지? 한 백 번 가도 그냥 직진했겠지?'
이러면서 용가리는 놀린다.
어쩌랴....난 항상 모든 길이 새로운 길이다.
네비게이션이 나오자마자 거의 일착으로 샀다. 엄청 비싸게 주고...

어릴 때..한 초등 1,2쯤?
집 마당에서 놀다가 문 밖에 뿡짝거리는 음악소리가 들려서 나갔다.
동네 교회에서 여름성경학교 한다고 애들 불러 모으러 나왔는데
나를 보더니 재미있고 맛있는 것도 많다며 같이 가자고 하기에 얼떨결에 따라갔다.
뭘 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대충 뭐 얻어 먹고 하다가 집에 갈 시간이 되었다.
모든 아이들이 다들 자기 집으로 가는데 나는 갈 수가 없었다.
집에 가는 길을 모르기 때문이었다. 우왕~ 눈물이 터졌다.
난감해진 교회 선생님들은 이 아이 어디서 데려왔냐고 물어물어 나를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근데 우리집은 그 교회에서 엄청 가가운 곳이었다. 돌아서면 보이는 곳....쩝....

나는 버스정류장에서도 항상 방향을 못 잡아 거꾸로 걸어가거나 거꾸로 가는 버스를 집어타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차 멀미도 엄청나게 심했다.
감히 혼자 걸어 어디를 간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고 차를 타는 것도 멀미 때문에 고역이었다.
그래도 어찌어찌 자라나서 큰 불편 없이 이동하고 있다.
길치에 방향감각 꽝인 나는 여행가서도 항상 길을 잃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있다.
30여일 간의 배낭여행 동안 여행은 그리 자유롭지 못했다.
머리 한 쪽에서는 항상 체크하고 살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뒤로는 혼자 가는 여행은 가지 않는다.
안전장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가장 편안한 안전장치는 용가리다.
뭐 지금이야 어디 돌아다니고 싶은 마음도 없지만 말이다...
지리산 창원마을에서 길 잃지 않고 간청재까지 잘 찾아 오는 것이 내가 완수해야 할 임무.
난 아직도 마을 입구에 혼자 내려 놓으면 간청재까지 못 갈지도 모른다 ㅠㅠ
용가리는 못 올 것이라 확신한다.

나 찌질이다~ 를 너무 길게 했다.
뭐 어쨌든 버스 타고 갔기 때문에 콕 박혀서 일만 하다가 왔다.
용가리는 자기 입에 밥 집어 넣기도 힘든 상황이라 나 혼자 다 했다.
지난번 다 못 칠한 창고 벽면 마저 칠하기, 고추 토마토 가지 뽑고 정리하기, 주변에 올라온 풀들 정리하기...
게다가 라면이던 무엇이던 먹을 것 마련하기, 게다가 설거지까지..
무심코 장화를 신으며 설거지 좀 해 놔라..했더니 얄밉게 깁스한 손을 보여준다.
하지만 어제 병원 가서 깁스를 풀었으니 이제 두고 봐라..
깁스는 풀었지만 손은 아직 움직일 수 없다며 여전히 몸을 사린다.
깁스 푼 손을 씻으며 '와~ 손에서 이렇게 때가 많이 나오다니..밀어도 밀어도 계속 나와~'
이러면서 한바가지의 때를 벗겨냈다.
다음에 가서는 나무를 옮겨 심어야 하니 손을 잘 훈련시켜 삽질을 할 수 있기 바란다.

  고춧대와 토마토 가짓대를 뽑으며
  '아..얘네들 무덤이라도 만들어 주고 싶다.우리에게 이렇게 아낌 없이 주었는데 말이야' 



깔끔하게(?) 정리한 텃밭.
  포슬포슬한 흙을 고르다 보니 꼭 방금 지은 고슬고슬한 쌀밥을 주걱으로 살살 젓는 것 같다.

밭을 정리하다 어떨결에 뽑힌 무. 정말 무다. 작지만 무 모양을 갖춘 것이 신기하다. ㅎㅎ

 

  뾰족하던 시금치 잎이 펴졌다. 

무럭무럭 자라는 봄동. 기대 만땅!

지난번에 발견하지 못했던 갓을 드디어 발견했다.


  뒷산에서 옮겨 심었던 취는 이렇게 되고 말았다...ㅠㅠ

아랫단 바로 밑 논을 포크레인이 올라와서 뒤집는다.
올해 쌀 열두가마니 해서 60만원 버셨단다. 내년에는 고추를 해 보려고 하신단다.
그러면서 포크레인 올라온 김에 아랫단 땅을 좀 갈아 엎으라 하신다.
온갖 잡풀로 거의 밀림을 이루고 있는 땅이라 한 번 해야 하기는 해야 하지만
갈아 엎는다고 우리가 당장 어찌 할 수 없는 상황이고 경작을 하지 못한다면
금방 또 저렇게 될 것이라 생각 중이었다.
그런데 어찌어찌 눈치도 좀 보이고 그래서 하기로 했다.
일은 다음날 하기로 했다.
아침 일찍 포크레인 기사분이 오셨다.
동네분이셨다.
그런데 말씀하시기를
'저 땅에 있는 것이 조릿대라는 풀인데 저것은 포크레인으로 엎는다고 해서 죽는다는 보장이 없다.
차라리 풀을 베고 밭이랑 논 태울 때 불 한 번 내서 경운기로 로타리를 치는 것이 낫다.
나야 돈 받고 해 주면 그만이지만 그리 할 일이 아니다...'
그래서 그 분이 사람 구해서 싹 정리하고 베어내려던 버드나무도 베고
간청재 누마루 옆 나무까지 정리해 주시기로 했다.
그리고 한참 동안 용가리와 긴 대화를 나누었는데...
우리가 사게 된 땅의 내력(?), 동네 이야기, 우리만 모르는 우리 이야기 등등...
이 마을이 정말 인심 좋은 마을이었는데 둘레길 생기고 많이 나빠졌다고 하셨단다.
역시 돈이라는 것이 그렇다...모두 없었을 때는 괜찮지만 누구는 있고 누구는 없으면 심통이 생기는 것이니까..


주말에는 생태마을 마당에 마을 장터가 열려서 실실 걸어가서 도토리묵이랑 감말랭이를 샀다.
느티나무 밑에서 잠시 칠랄레팔랄레 하다가 감말랭이를 먹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감말랭이는 고추 건조기에 넣어 말리셨는지 고추장맛이 났다.ㅎㅎㅎ




3일 간 냉동실을 뒤져 먹었다.
걱정 말아라..우리에겐 아직도 두 장의 어묵과 여섯 알의 만두, 무려 여덟 알의 달걀이 있다...
게다가 라면과 소주가 있으니 무엇이 걱정이랴...음하하하....




  간청재 뒤로 보이는 하늘이 정말 파랗다.

 난 그 파란 하늘 아래서 너무도 귀찮아서 벼르고 벼르던 염색을 했다. ㅎㅎㅎ

간청재 뒤쪽 툇마루에서 보는 하늘은 더 파랗다. 콕 찌르면 흘러 내리겠다.




마천에서 동서울행 버스를 타고 오면서 둘이 그랬다.
밑에 땅 정리하고 로타리 치면 뭐 막 심고 싶겠다. 뭐 심을까...
우선 감나무 호두나무...그리고 먹고 싶은 것 죄다 심어야지
감나무는 가을에 심는 것이 좋다고 했는데 너무 늦었네..
내년 봄에는 이제 완전 놀게 되니 장날에 맞춰서 내려와 묘목이랑 모종이랑 좀 계획적으로 사서 심자..
아...빨리 로타리 치고 싶다...
우리가 로타리 치고 싶다는 말을 하게 될지 누가 알았을까? 그치?
맞아 하고 싶은 일이 로타리 치는 일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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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hippy 2014/11/11 22:18

    제비님 텃밭에 난 것들을 뽑아 겉절이 해 먹으면 딱...ㅎ, 군침이 도네요. 하늘도 파랗고, 산도 물결치고...갑자기 산이 그리워집니다. 이젠 잊고 사는데...^^

    • 제비 2014/11/14 15:26

      chippy님 계신 곳이야 말로 멋진 산과 끝내주는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나라가 아닌가요? ㅎㅎ

  2. 무명씨 2014/11/12 07:34

    간청재밑의 땅이 제비님댁의 소유였군요.
    저번에 갔을적에 울마눌이 그당을 보고 침을 많이 흘렸는데...ㅋㅋㅋ

    • 제비 2014/11/14 15:27

      시골땅은 묶어서 크게 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리 되었답니다...

  3. 너도바람 2014/11/12 17:22

    로타리치다,란 말도 알고, 창원마을 사람 다 됐어요. 제비님.
    냉동실을 어묵은 무사한지, 아무래도 따끈한 정종이 생각나는 날씨구료.

    • 제비 2014/11/14 15:29

      어묵 조금 남겨 놓았으니 다음에는 따끈한 어묵탕에 한 잔 하자구요 ㅋ

    • 저여요 2014/11/18 18:11

      제가 그랬잖아요. 너도님이 "로타리친 무논에 비친 산 그림자를 보고 계절이 바뀜을 안다" 는 말에 뿅갔다는 ......

    • 저여요 2014/11/18 18:11

      제가 그랬잖아요. 너도님이 "로타리친 무논에 비친 산 그림자를 보고 계절이 바뀜을 안다" 는 말에 뿅갔다는 ......

  4. 美의 女神 2014/11/14 15:41

    콩, 들깨, 고구마, 갑자....심을 게 많쵸?
    간청재 나들이 함 해야 하는데...
    콕 찔러 보시죠. 파란 가을 하늘요...

    • 제비 2014/11/19 18:26

      금방 겨울이 되었네요..월동준비도 다 못했는데 ㅠㅠ
      내년 봄부터는 좀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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