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의 월동준비는 정말 대단하게 한다.
장작을 채워 놓고 양식들을 갈무리하고...
우리는 월동준비라고 말하기도 우습지만 그래도 나름의 월동준비를 했다.
일단 마음가짐으로 월동준비를 했다.ㅎㅎ
제일 걱정되는 것이 물이다.
물이 얼어버리면 정말 큰일이기 때문에 항상 신경을 써야 한다.
아직은 11월 달이라 괜찮을 것이라 생각하고 물을 흘려 놓지 않고 왔는데 밤 사이 기온이 많이 떨어지는 산간 지방의 일기 예보를 보면서 불안했다. 이번에 가서 꼭 물을 흘려 놓아야지...
지지난주, 11월 세째주에 내려가서 나름대로의 준비를 했다.
출발하는 토요일 새벽, 서울에서는 비가 내렸고 함양에서는 햇살이 쨍쨍했다.
낮 동안에는 전혀 추위가 느껴지지 않았으나 해가 넘어가기 시작하는 오후가 되자 이내 한기가 스며들었다.
겨울이 코앞까지 왔다는 것을 몸으로 먼저 느꼈다.
용가리가 깁스를 하는 바람에 계속 미루어왔던 나무 옮기기를 하였고, 관정 탱크를 뽁뽁이 비닐로 쌌고, 보일러 기름을 채웠고, 화로를 하나 장만했다. 물론 소주 한 박스와 라면도 채워 놓았다..ㅋ
간청재 가는 길에 보니 마을 집집이 김장하느라 정신이 없다.
나도 간청재에서 김장에 도전하는 날이 오겠지...올까?
인월 마당쇠에서 솥밥 먹고 와서 나무 옮기기에 도전했다.
용가리는 깁스를 풀었지만 여전히 손은 제 구실을 하지 못했다 ㅠㅠ
마당 한 가운데 있는 나무 두 그루를 옮겨야 하는데 파 내는 것이 쉽지 않다.
집을 짓기 전 언제 집을 지을지 몰라 일단 땅 가장자리로 묘목을 백여 그루 심었는데 온갖 풍파에 시달리고 잡초에 시달리고 또 집 짓느라 공사하면서 이러저러하게 다 죽고 30여 그루 정도 남은 것 같다.
나무를 심어 놓고 보살피지 않은 죄책감에 마음이 아팠었다.
그래도 당당히 살아 남은 나무들 중에 간청재 마당 앞에 있는 것이 제일 실하다.
그런데 너무 한 가운데 있어 나무가 크게 되면 시야를 가릴 것 같아 옮기기로 한 것이다.
옮길 자리에 구덩이를 파고 나무를 넓게 파서 옮길 생각이었다.
그러나 생각 뿐이었다.
땅을 파 본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땅 파는 것이 사람 잡는 일이라는 것을....
일단 돌이 문제다. 조금 파다 보면 덜컥 걸린다. 그러면 호미로 주변을 살살 건드리며 돌의 크기를 가늠한다.
파낼 것인지 비켜갈 것인지...
땅을 파다 보면 마음 같지 않게 다른 쪽으로 자꾸 방향이 틀어진다. 돌이 걸려서 피하다 보면 그리 된다.
나무를 캐는 것도 그렇다.
처음에는 뿌리 다치지 않게 잘 캐려고 하지만 돌 사이사이로 뻗은 뿌리들은 어쩔 수가 없다.
게다가 공사하면서 돌에 많이 파 묻혀버려서 더 힘들다.
큰 돌들을 들어 내고 시작했지만 땅에 박힌 돌들은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었다.
뿌리를 많이 잘라내고 옮겨와 심으며 마음으로 빌었다.
'앞으로 잘 할게...꼭 살아줘..'
부목도 단단히 세웠다. 그리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해가 떨어지려고 하는데 물을 줬다가 얼면 어쩌지? 고민하다 옆골짜기 스님께 여쭤보고 물을 조금 주었다.
다행히 그날 밤 비가 와서 걱정을 덜었다.
가는 날이 함양 장날이었다.
2,7일은 함양 장날, 3,8일은 인월 장날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면 기분 좋다 ㅎㅎ
함양은 바다가 인근에 없어 수산물이 흔하지는 않은데 이번 장날에는 꽤 싱싱한 수산물들이 나왔다.
우리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낙지나 주꾸미를 사다 데쳐 먹을까..했는데 옆에 문어가 눈에 들어온다.
문어는 평소 너무 비싸고 커서 사 먹어 본 적이 없다. 낙지나 주꾸미로 만족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도전해 볼 만했다. 너도님은 큰 문어를 사주고 싶어했지만 내가 말려서 작은 놈으로 했다.
일단 큰 놈은 부담 만땅이다.
착한 가격에 놀랐다. 아무리 작은 놈이지만 그래도 꽤 괜찮은 문어인데 2만 원.
서울에서는 4만 원 이상은 할 것이다.
게다가 홍합을 쌓아 놓고 팔고 있는데 홍합처럼 해 먹기 쉽고 맛있고 술안주로 좋은 녀석을 그냥 지나칠 리가 없다.
홍합 아주머니가 얼마나 드릴까요 하기에 어떻게 파세요 하니까 한 5천 원어치 드려볼까요 하신다.
그러세요 하니까 바가지로 한 바가지 담으신다.
나는 한 바가지에 5천 원이라 생각했다.
참고로 시골 장터에서는 거의 모든 것의 가격이 5천 원 아니면 만원이다.
그런데 두 바가지를 더 담으시는 것이다. 커다란 비닐 봉지에 가득이다...세상에...
2만 5천 원에 빵빵한 문어 하나와 엄청난 양의 홍합을 샀다. 너도님이 하사하셨다...
나무 옮기는 일을 마치고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마당에서 홍합을 씻고..
문어는 무를 큼직하게 썰어 깔고 물을 전혀 넣지 않고 삶았다.
홍합도 물을 자작하게 붓고 삶았다.
부엌이 코딱지 만큼 작아서 아궁이 옆 뒷마당에서 끓였다.
문어 냄비를 열자 문어는 알맞게 익어 꽃같은 자태를 뽐내고
홍합은 까만 껍질 속에 탐스러운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우리는 들어갈 것도 없이 아궁이 앞에 둘러 앉아 홍합을 까 먹으며 신나했다.
무와 함께 잘 데쳐진 문어와 홍합탕....이 보다 더 훌륭한 안주가 있으랴...
그 날 용가리는 안주 보고 감격하여 달렸다 ㅎㅎㅎ(그러나 우리 모두 숙취는 없었다)
새로 장만한 화로에 숯을 옮기고 안으로 가져와 성능을 시험했다.
의외로 열기가 대단했다. 화로 받침대를 나무로 하나 만들자고 했다.
타들어가는 숯을 보고 유향을 몇 개 얹었다. 유향 냄새가 온 집안에 가득 찼다.
그 연기와 냄새 만으로 램프의 요정이 나올 것 같은 분위기다.
서울 우리집으로 배달되어 온 화로.
다음 날은 인월 장날. 이렇게 함양 장날과 인월 장날이 주말에 있으면 좋다.
유명한 인월 장터 보리밥 집에 가서 정말 맛나게 먹었다.
양푼이 하나에 보리밥과 나물들, 맛있는 국과 반찬을 맘껏 먹을 수 있다. 뷔페식 보리밥집이다..
시레기국과 두부 조림이 환상적이었다.
황매암에 들러 차 마시고 놀다 보니 또 해가 기운다.
해가 기울어 한기가 차면 아무 것도 하기 싫어진다.
그래도 하루 종일 먹고 논 것이 미안해서 관정 모터를 뽁뽁이로 쌌다.
잘 놀다가 일 하려고 들면 손 발이 안 맞는다. 별 것도 아닌 요거 싸면서 서로 안 맞는다며 용가리와 싸웠다.ㅎㅎ
다음 날 아침에 보니 붙인다고 붙인 테잎들이 다 떨어져 있었다. 비가 내리고 있어 다시 작업을 못하고 왔다.
바람에 뚜껑이 날아가지 않았을까 무지 걱정이다 ㅠㅠ
출발하는 날 아침 비가 내리며 사방 천지가 안개로 뒤덮였다.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옆 골짜기 스님께서 따 주신 고동시...감을 보면서 내가 잠시 어디에 다녀왔나 다시 생각한다..
지리산 동네에서 우연한 기회에 맛 보게 된 사케....맛도 깔끔하고 담고 있는 병도 예뻐서 챙겨 왔다.
너도님은 6시 40분 막차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기존의 동서울 행은 6시 10분이 막차인데 남부터미널행 40분 차가 새로 생겼다.
6시 조금 넘어 마천으로 나가는데 세상이 깜깜하다.
오가는 사람, 불빛 하나, 게다가 소리도 없다.
온 마을이 동면에 들어가 마치 내년 봄에나 깨어 날 것만 같은 어둠과 침묵이다.
마천까지 와서는 더 놀랐다. 모든 가게가 다 문을 닫고 버스 표를 파는 곳도 문을 닫았다.
온 거리가 다 깜깜하고 인적하나 없다. 차도 사람도 고양이도...움직이는 것이 없다. 저녁 6시 30분인데 말이다..
'버스가 올까..' 우리는 중얼거렸다.
버스가 나타나지 않을 것만 같다.
나는 잠깐 토토로의 고양이버스가 나타나지는 않을까 하는 멍청한 생각을 했었다.
그래도 시간이 되니 어둠 속에서 고양이버스처럼 지리산 고속이 나타났다.
그렇게 너도님은 기사 아저씨와 단 둘이 버스를 타고 갔다.
인월에서 두 명이 더 타서 단 둘이 서울까지 가는 것은 면했다는 문자를 받았다. ㅎㅎ
너도님을 보내고 함양장에서 사 온 두부를 구워 간단히 저녁을 때웠다. 소박한 밥상...
오후 6시 이후의 마을의 모습을 보고 앞으로 동절기에는 막차를 이용하지 말자는 결론을 얻었다.
그 분위기에서는 정말 차를 타고 먼 길을 간다는 것은 너무 힘들다.
고양이버스가 오던가, 아님 너도님과 함께 다시 간청재로 가서 재워 보내고 싶었다.
앞으로 겨울에는 해가 있을 때 떠나거나 아님 해 떨어지면 자고 가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겠다.
시골마을의 겨울밤을 실감나게 체험했다.
첩첩 산중에도 없는 마을이 여긴 있습니다. 잎 진 사잇길, 저 모래 둑, 그 너머 강기슭에서도 보이진 않습니다. 허방다리 들어내면 보이는 마을.
갱(坑) 속 같은 마을. 꼴깍, 해가, 노루꼬리 해가 지면 집집마다 봉당에 불을 켜지요. 콩깍지, 콩깍지처럼 후미진 외딴집, 외딴집에도 불빛은 앉아 이슥토록 창문은 모과(木瓜)빛입니다.
기인 밤입니다. 외딴집 노인은 홀로 잠이 깨어 출출한 너머지 무를 깎기도 하고 고무를 깎다, 문득 바람도 없는데 시나브로 풀려 풀려 내리는 짚단, 짚오라기의 설레임을 듣습니다. 귀를 모으고 듣지요. 후루룩 후루룩 처마깃에 나래 묻는 이름 모를 새, 새들의 온기(溫氣)를 생각합니다. 숨을 죽이고 생각하지요.
참 오래오래, 노인의 자리맡에 밭은 기침소리도 없을 양이면 벽 속에서 겨울 귀뚜라미는 울지요. 떼를 지어 웁니다, 벽이 무너지라고 웁니다.
어느덧 밖에는 눈발이라도 치는지, 펄펄 함박눈이라도 흩날리는지, 창호지 문살에 돋는 월훈(月暈).
- 박용래 월훈(月暈) -
장작을 채워 놓고 양식들을 갈무리하고...
우리는 월동준비라고 말하기도 우습지만 그래도 나름의 월동준비를 했다.
일단 마음가짐으로 월동준비를 했다.ㅎㅎ
제일 걱정되는 것이 물이다.
물이 얼어버리면 정말 큰일이기 때문에 항상 신경을 써야 한다.
아직은 11월 달이라 괜찮을 것이라 생각하고 물을 흘려 놓지 않고 왔는데 밤 사이 기온이 많이 떨어지는 산간 지방의 일기 예보를 보면서 불안했다. 이번에 가서 꼭 물을 흘려 놓아야지...
지지난주, 11월 세째주에 내려가서 나름대로의 준비를 했다.
출발하는 토요일 새벽, 서울에서는 비가 내렸고 함양에서는 햇살이 쨍쨍했다.
낮 동안에는 전혀 추위가 느껴지지 않았으나 해가 넘어가기 시작하는 오후가 되자 이내 한기가 스며들었다.
겨울이 코앞까지 왔다는 것을 몸으로 먼저 느꼈다.
용가리가 깁스를 하는 바람에 계속 미루어왔던 나무 옮기기를 하였고, 관정 탱크를 뽁뽁이 비닐로 쌌고, 보일러 기름을 채웠고, 화로를 하나 장만했다. 물론 소주 한 박스와 라면도 채워 놓았다..ㅋ
간청재 가는 길에 보니 마을 집집이 김장하느라 정신이 없다.
나도 간청재에서 김장에 도전하는 날이 오겠지...올까?
인월 마당쇠에서 솥밥 먹고 와서 나무 옮기기에 도전했다.
용가리는 깁스를 풀었지만 여전히 손은 제 구실을 하지 못했다 ㅠㅠ
마당 한 가운데 있는 나무 두 그루를 옮겨야 하는데 파 내는 것이 쉽지 않다.
집을 짓기 전 언제 집을 지을지 몰라 일단 땅 가장자리로 묘목을 백여 그루 심었는데 온갖 풍파에 시달리고 잡초에 시달리고 또 집 짓느라 공사하면서 이러저러하게 다 죽고 30여 그루 정도 남은 것 같다.
나무를 심어 놓고 보살피지 않은 죄책감에 마음이 아팠었다.
그래도 당당히 살아 남은 나무들 중에 간청재 마당 앞에 있는 것이 제일 실하다.
그런데 너무 한 가운데 있어 나무가 크게 되면 시야를 가릴 것 같아 옮기기로 한 것이다.
옮길 자리에 구덩이를 파고 나무를 넓게 파서 옮길 생각이었다.
그러나 생각 뿐이었다.
땅을 파 본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땅 파는 것이 사람 잡는 일이라는 것을....
일단 돌이 문제다. 조금 파다 보면 덜컥 걸린다. 그러면 호미로 주변을 살살 건드리며 돌의 크기를 가늠한다.
파낼 것인지 비켜갈 것인지...
땅을 파다 보면 마음 같지 않게 다른 쪽으로 자꾸 방향이 틀어진다. 돌이 걸려서 피하다 보면 그리 된다.
나무를 캐는 것도 그렇다.
처음에는 뿌리 다치지 않게 잘 캐려고 하지만 돌 사이사이로 뻗은 뿌리들은 어쩔 수가 없다.
게다가 공사하면서 돌에 많이 파 묻혀버려서 더 힘들다.
큰 돌들을 들어 내고 시작했지만 땅에 박힌 돌들은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었다.
뿌리를 많이 잘라내고 옮겨와 심으며 마음으로 빌었다.
'앞으로 잘 할게...꼭 살아줘..'
부목도 단단히 세웠다. 그리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해가 떨어지려고 하는데 물을 줬다가 얼면 어쩌지? 고민하다 옆골짜기 스님께 여쭤보고 물을 조금 주었다.
다행히 그날 밤 비가 와서 걱정을 덜었다.
가는 날이 함양 장날이었다.
2,7일은 함양 장날, 3,8일은 인월 장날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면 기분 좋다 ㅎㅎ
함양은 바다가 인근에 없어 수산물이 흔하지는 않은데 이번 장날에는 꽤 싱싱한 수산물들이 나왔다.
우리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낙지나 주꾸미를 사다 데쳐 먹을까..했는데 옆에 문어가 눈에 들어온다.
문어는 평소 너무 비싸고 커서 사 먹어 본 적이 없다. 낙지나 주꾸미로 만족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도전해 볼 만했다. 너도님은 큰 문어를 사주고 싶어했지만 내가 말려서 작은 놈으로 했다.
일단 큰 놈은 부담 만땅이다.
착한 가격에 놀랐다. 아무리 작은 놈이지만 그래도 꽤 괜찮은 문어인데 2만 원.
서울에서는 4만 원 이상은 할 것이다.
게다가 홍합을 쌓아 놓고 팔고 있는데 홍합처럼 해 먹기 쉽고 맛있고 술안주로 좋은 녀석을 그냥 지나칠 리가 없다.
홍합 아주머니가 얼마나 드릴까요 하기에 어떻게 파세요 하니까 한 5천 원어치 드려볼까요 하신다.
그러세요 하니까 바가지로 한 바가지 담으신다.
나는 한 바가지에 5천 원이라 생각했다.
참고로 시골 장터에서는 거의 모든 것의 가격이 5천 원 아니면 만원이다.
그런데 두 바가지를 더 담으시는 것이다. 커다란 비닐 봉지에 가득이다...세상에...
2만 5천 원에 빵빵한 문어 하나와 엄청난 양의 홍합을 샀다. 너도님이 하사하셨다...
나무 옮기는 일을 마치고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마당에서 홍합을 씻고..
문어는 무를 큼직하게 썰어 깔고 물을 전혀 넣지 않고 삶았다.
홍합도 물을 자작하게 붓고 삶았다.
부엌이 코딱지 만큼 작아서 아궁이 옆 뒷마당에서 끓였다.
문어 냄비를 열자 문어는 알맞게 익어 꽃같은 자태를 뽐내고
홍합은 까만 껍질 속에 탐스러운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우리는 들어갈 것도 없이 아궁이 앞에 둘러 앉아 홍합을 까 먹으며 신나했다.
무와 함께 잘 데쳐진 문어와 홍합탕....이 보다 더 훌륭한 안주가 있으랴...
그 날 용가리는 안주 보고 감격하여 달렸다 ㅎㅎㅎ(그러나 우리 모두 숙취는 없었다)
새로 장만한 화로에 숯을 옮기고 안으로 가져와 성능을 시험했다.
의외로 열기가 대단했다. 화로 받침대를 나무로 하나 만들자고 했다.
타들어가는 숯을 보고 유향을 몇 개 얹었다. 유향 냄새가 온 집안에 가득 찼다.
그 연기와 냄새 만으로 램프의 요정이 나올 것 같은 분위기다.
서울 우리집으로 배달되어 온 화로.
다음 날은 인월 장날. 이렇게 함양 장날과 인월 장날이 주말에 있으면 좋다.
유명한 인월 장터 보리밥 집에 가서 정말 맛나게 먹었다.
양푼이 하나에 보리밥과 나물들, 맛있는 국과 반찬을 맘껏 먹을 수 있다. 뷔페식 보리밥집이다..
시레기국과 두부 조림이 환상적이었다.
황매암에 들러 차 마시고 놀다 보니 또 해가 기운다.
해가 기울어 한기가 차면 아무 것도 하기 싫어진다.
그래도 하루 종일 먹고 논 것이 미안해서 관정 모터를 뽁뽁이로 쌌다.
잘 놀다가 일 하려고 들면 손 발이 안 맞는다. 별 것도 아닌 요거 싸면서 서로 안 맞는다며 용가리와 싸웠다.ㅎㅎ
다음 날 아침에 보니 붙인다고 붙인 테잎들이 다 떨어져 있었다. 비가 내리고 있어 다시 작업을 못하고 왔다.
바람에 뚜껑이 날아가지 않았을까 무지 걱정이다 ㅠㅠ
출발하는 날 아침 비가 내리며 사방 천지가 안개로 뒤덮였다.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옆 골짜기 스님께서 따 주신 고동시...감을 보면서 내가 잠시 어디에 다녀왔나 다시 생각한다..
지리산 동네에서 우연한 기회에 맛 보게 된 사케....맛도 깔끔하고 담고 있는 병도 예뻐서 챙겨 왔다.
너도님은 6시 40분 막차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기존의 동서울 행은 6시 10분이 막차인데 남부터미널행 40분 차가 새로 생겼다.
6시 조금 넘어 마천으로 나가는데 세상이 깜깜하다.
오가는 사람, 불빛 하나, 게다가 소리도 없다.
온 마을이 동면에 들어가 마치 내년 봄에나 깨어 날 것만 같은 어둠과 침묵이다.
마천까지 와서는 더 놀랐다. 모든 가게가 다 문을 닫고 버스 표를 파는 곳도 문을 닫았다.
온 거리가 다 깜깜하고 인적하나 없다. 차도 사람도 고양이도...움직이는 것이 없다. 저녁 6시 30분인데 말이다..
'버스가 올까..' 우리는 중얼거렸다.
버스가 나타나지 않을 것만 같다.
나는 잠깐 토토로의 고양이버스가 나타나지는 않을까 하는 멍청한 생각을 했었다.
그래도 시간이 되니 어둠 속에서 고양이버스처럼 지리산 고속이 나타났다.
그렇게 너도님은 기사 아저씨와 단 둘이 버스를 타고 갔다.
인월에서 두 명이 더 타서 단 둘이 서울까지 가는 것은 면했다는 문자를 받았다. ㅎㅎ
오후 6시 이후의 마을의 모습을 보고 앞으로 동절기에는 막차를 이용하지 말자는 결론을 얻었다.
그 분위기에서는 정말 차를 타고 먼 길을 간다는 것은 너무 힘들다.
고양이버스가 오던가, 아님 너도님과 함께 다시 간청재로 가서 재워 보내고 싶었다.
앞으로 겨울에는 해가 있을 때 떠나거나 아님 해 떨어지면 자고 가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겠다.
시골마을의 겨울밤을 실감나게 체험했다.
첩첩 산중에도 없는 마을이 여긴 있습니다. 잎 진 사잇길, 저 모래 둑, 그 너머 강기슭에서도 보이진 않습니다. 허방다리 들어내면 보이는 마을.
갱(坑) 속 같은 마을. 꼴깍, 해가, 노루꼬리 해가 지면 집집마다 봉당에 불을 켜지요. 콩깍지, 콩깍지처럼 후미진 외딴집, 외딴집에도 불빛은 앉아 이슥토록 창문은 모과(木瓜)빛입니다.
기인 밤입니다. 외딴집 노인은 홀로 잠이 깨어 출출한 너머지 무를 깎기도 하고 고무를 깎다, 문득 바람도 없는데 시나브로 풀려 풀려 내리는 짚단, 짚오라기의 설레임을 듣습니다. 귀를 모으고 듣지요. 후루룩 후루룩 처마깃에 나래 묻는 이름 모를 새, 새들의 온기(溫氣)를 생각합니다. 숨을 죽이고 생각하지요.
참 오래오래, 노인의 자리맡에 밭은 기침소리도 없을 양이면 벽 속에서 겨울 귀뚜라미는 울지요. 떼를 지어 웁니다, 벽이 무너지라고 웁니다.
어느덧 밖에는 눈발이라도 치는지, 펄펄 함박눈이라도 흩날리는지, 창호지 문살에 돋는 월훈(月暈).
- 박용래 월훈(月暈) -
'음풍농월'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루하루... 2015/01/08 (0) | 2018.12.26 |
---|---|
하나님의 배려 2014/12/09 (0) | 2018.12.26 |
하고 싶은 일? 2014/11/11 (0) | 2018.12.26 |
국화 ㅠㅠ 2014/10/28 (0) | 2018.12.26 |
깝치지 말자 2014/10/16 (0) | 2018.12.26 |
월동준비가 끝났네요. 라면과 소주만 채워놓으면...ㅎ. 소박하게 먹고 사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죠. ^^
단순하게 살기...쉽고도 어려운 길 같아요
어제 일이 있어 하동에 갔었는데 지리산 능선에 하얗게 눈이 내렸더군요.
저도 이제 지리산 주민이 되는 준비를 본격적으로 하고 있답니다.
이제 곧 지리산 주민이 되시겠네요...축하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