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어 사람들을 불만 없게 먹이셨다는데
우리에게는 여름엔 풀을, 겨울엔 눈을 내려주어 혹여 심심할지 모르는 시골 생활에 크나큰 임펙트를 주시는구나...
이번에는 눈 치우며 올라갔다가 눈 치우며 내려온 간청재행이다.
눈이 내렸다는 소식에 차를 가져가야 할지 고민했지만 짐도 있고 해서 차를 가져갔다.
내려가는 날은 다행히 날씨가 맑아서 마을 길은 깨끗했다.
재실 앞에 차를 세우고 정찰병을 보내서 사태를 파악했다.
역시 재실에서 간청재까지의 길은 눈이 오롯이 제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재실에서 간청재까지의 길은 좁고 경사지고 굽어있어 해가 들지 않는 곳이 두 곳 있다.
그 구간은 치워주지 않으면 봄이나 되어야 녹을 것이다....
이미 얼음이 잡혔으니 두께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치워줘야 한다.
마천에서 사 온 밀대와 이미 사 놓은 밀대 하나를 창고에서 가져 내려와 눈을 밀고 빗자루로 쓸고..
등에서는 곧 땀이 나기 시작한다.
코에서는 끊임 없이 콧물이 나오고...
참으로 오랜만에 콧물을 원 없이 먹었다 ㅋㅋㅋ
입술로 흘러내리는 콧물을 주체할 수 없으니 어쩌랴...그냥 빨아 먹는 수밖에...어릴 때 맛이 아닌듯 ㅎㅎㅎ
그렇게 재실에서 간청재까지의 별로 길지 않은 길을 한시간 넘게 걸려 올라왔다.
마을 길은 깨끗했지만 우리 길은 눈 위에 짐승들의 발자국 흔적만 있다.
등에는 땀이 송글송글...콧물은 줄줄...입고 있던 파카를 벗어야 했다.
그래도 무사히 왔으니 다행....
첫번째 걱정은 끝났으니 두번째 걱정이 남았다.
간청재 내려오면서 첫번째 걱정은 눈길의 심각성 정도, 두번째 걱정은 물이 얼지 않고 나오는가였다.
두번째도 무사히 통과.
봄동과 시금치는 먹을 수 있을까....
옮겨 심은 나무들은 나름의 사투를 벌이고 있겠지....제발 포기하지 말아줘...
관정 뚜껑이 날아갔을까 걱정했는데 눈이 쌓여 꾹 눌러주고 있다.
땀흘리는 노동 후 커피 한 잔과 빵 한덩어리를 먹고 가벼운 마음으로 둥이네로 놀러갔다.
나는 너무나도 운이 좋다. 마침 둥이네 할머니댁에서 김장을 해서 막 김장김치를 가져오던 참이었다.
김장김치 맛 보라고 담아 주셔서 냉큼 받아왔다.
내가 누구인가....왕년의 '물고 다니는 가시내'아닌가...
김장 날 하도 배추를 물고 다녀서 얻은 별명이다. 김장 날에는 거의 한통의 김치는 먹어 치운다.
나는 생김치를 너무나도 좋아한다.
하지만 요즘에는 어디서 얻어 먹을 곳이 없었는데 올해는 운이 좋게 김장김치를 먹는다...신나라~
김치가 정말 맛있어서 이틀 동안 주신 김치 다 먹어치우고 올라왔다. ㅎㅎ
둥이네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찌나 시간이 빨리 가는지...
둥이네를 보면 내가 다 마음이 뿌듯해진다...언제나 좋은 기운과 따뜻한 마음을 받고 온다.
다음날은 느지막히 일어나 뒹굴대며 한껏 게으름을 피웠다.
눈 앞의 설산을 바라보며 차 마시고 구들방에 들어가 등짝 지지고...
히말라야 부럽지 않은 우리 집 앞 산...
용가리와 나는 사진을 찍으며 서로 궁시렁댔다.
우리는 왜 맨날 같은 곳만 찍을까...
같은 곳이라도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은 적은 없잖아...
저걸 보고 어떻게 안 찍을 수 있겠냐..
그런데 사진 찍으면 너무나 후지게 보인다.
역시 사람 눈 만한 사진은 없지....
내 일생 최초로 도전해 보는 일을 두 개나 했다.
털실에 증기를 쏘이는 것과 재봉질.
옛날 엄마가 하는 것은 많이 봤지만 내가 해 보는 것은 처음이다.
재봉틀에 실 거는 것은 용가리와 내가 거의 연구하는 수준으로 고민하고 토론 한 끝에
인터넷의 도움을 받아 성공하였다. ㅎㅎ
그리고 떨리는 마음으로 페달을 밟자 바느질이 되었다. 우와~ 세상에 이렇게 신기한 기계가 있다니....
털실과 재봉틀 가지고 놀다 보니 또 해가 넘어가려 한다.
구들방에 불을 넣어야 한다.
집 안에서 꼼짝을 안 하고 있던 우리는 비로소 신발을 신고 땅을 밟는다.
나는 나가지 않으려 했는데
너도 좀 콧구멍에 바람 넣고 땅 좀 밟으라고 용가리가 끌고 나가 하는 수 없이 나갔다.
화로에 숯을 옮기고 밤과 고구마를 구웠다.
화로에 이것 저것 구워 먹는 것이 소원이었던 나는 드디어 소원성취했다!
서울의 가로등보다 더 밝은 달이 두둥실 떴다.
마치 밖에 누가 찾아 온 것처럼 달빛이 마루까지 들어온다.
看梅聽雨勸人茶
窓前明月請與家
달빛도 끼워 세 식구가 술 한 잔 나눈다.
아침에 눈을 뜨니 세상이 하얗다.
울어야 할까 웃어야 할까...
일단 웃기로 했다. ㅎㅎ
오늘 올라가야 하니 눈을 치우기 시작했다.
햇살이 좋아 눈이 얼지는 않겠지만 역시 그늘진 곳이 있어 차가 내려갈 수 있게 치워야했다.
재실 지나 마을까지의 길도 눈을 아무도 치우지 않았다.
눈을 미는 김에 민박집 앞까지 밀었다.
이렇게 눈 치운 것을 보면 기분 좋아하시겠지? 우리가 그런 줄 알면 칭찬하실거야...
개뿔...하지만 이런 생각이 얼마나 바보 같은지 점심 때가 지나 서울로 출발하면서 알았다.
해가 너무 잘 드는 곳이라 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괜히 눈을 안 치우신 것이 아니다. 날씨 보고는 그냥 두신 것이다...ㅠㅠ
역시 햇님은 위대하시다. 울트라킹왕짱!!
땀 한 판 흘리고 집 정리하고 아직도 절절 끓는 구들방을 아까워하며 조심조심 차를 몰고 내려왔다.
겨울에는 우아하게 천왕봉 바라보며 차 한 잔 옆에 놓고 책이나 읽으며 음악을 들으며 지내려 했더니
어쨌거나 땀을 한 판 흘려야만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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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있는 곳은 50센티미터 이상이 쌓여서 할 수 없이 기계로 치웠는데요...
눈에 질려서 기계(트랙터)를 사야되나 잠깐 고민했습니다.
집에서 보이는 풍경이 무척 아름답고 좋네요.
눈속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는 배추나 시금치까지...
50센티 이상이면 좀 고민이 되겠는데요 ㅠㅠ
오, 드디어 실이 등장했네요. 부디 두터운 옷을 짜세요. 혹시 실이 모자라면, 같은 색은 아니라도 더 있읍니다. 실이 옛날 실이에요. 요즘 실처럼 보드랍지 않지만, 거칠고 투박한 야성미가 있어요. 요새 실은 보드랍지만, 약하고 뺀질이 같아서 맛이...
저도 투박하면서 거친 느낌 좋아해요~
저도 같은 화로 있어요^^
잔디 위에 놓고 바베큐 한번 했다가 잔디가 동그랗게 타버려서 다시 못하고 있습니다.
밑에 뭐 놓고 쓰세요?
화로 밑에 발이 달린 받침대가 있어요.
같은 무쇠로 된 것인데 집 안에 들일 때에는 그 받침대 밑에 나무로 판을 만들어 놓으려 합니다.
지금은 임시로 두꺼운 종이 상자를 받칩니다~
깡통고기집에 가면 식탁으로 쓰는 그 받침하시면 좋아요.
음식도 놓고 쓸 수 있어요.
제 포스팅에 명지산 숯가마 보시면....첫번째 사진에 있어요.
http://blog.ohmynews.com/mirine1774/526525
깡통고기집? 사진을 봐도 뭔지 이해가 안 가요, 이렇게 머리가 나쁩니다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