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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중진담

케잌 먹는 날 2014/11/19

by jebi1009 2018. 12. 26.


        

가끔 케잌이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조각 케잌 말고 생일 날 먹는 동그란 케잌 말이다.
딸아이를 가졌을 때 케잌이 먹고 싶어 한 통을 사다가 먹었던 기억이 있다.
비싼 한우 꽃등심이나 한 점 먹을 때 살 떨리는 복어회도 아닌데 이상하게 케잌은 그냥 아무 날도 아닌 날 사기에는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왠만한 빵집 빵 몇 개 집어 들면 케잌 값 정도 나오지만 그래도 빵처럼 사서 먹게 되지는 않는다.
전에는 케잌 사는 기념일(뭐 그래봐야 생일 날)에 케잌을 사면 처음 잘라 먹고는 굴리고 굴리다가 결국 남은 것을 버린 적도 많지만 요즘에는 워낙 작은 케잌들이 나와서 알뜰하게 다 먹을 수 있다.
케잌 값이 비싸서 작은 케잌도 가격이 만만치 않지만 말이다...
어렸을 때 생일 날 아빠가 사가지고 오신 케잌을 먹으려 엄청 기다렸었다.
그때 케잌은 지금처럼 부드럽지도 않았고 생크림도 아니었다.
하얗고 딱딱한 버터크림(?)에 촌스러운 분홍색 꽃들이 장식되어 있는 크고 넙적한 케잌...
초딩 고학년 쯤? 어느날 아빠가 사 온신 케잌은 초콜릿으로 되어 있는 네모난 케잌이었다.
초콜릿으로 코팅된 것도 그랬지만 네모난 케잌은 획기적이었다.

며칠 전 내 생일이었다.
생일은 그래도 초 꽂아 놓고 잊고 지냈던 나이 한 번 더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게 된다.
얼마 전 우리 동네에 맛있는 케잌가게가 생겼다.
고급지고 맛이 좋은데 가격이 만만치 않다.
그 가게에는 케잌 종류가 딱 9가지 있는데 가격과 크기는 모두 동일하다.
그 중 우리는 3종류를 먹었다.
우리 세 식구의 생일, 5월 10월 11월 세 번 먹은 것이다.
남편 생일에 처음 그 케잌을 먹고 빨리 다음 사람 생일이 돌아와서 사 먹기를 기다렸다. ㅎㅎ

  딸아이가 사 온 당근케잌.


  우리는 이 9종류의 케잌을 내년까지 다 먹어 보는 장기 프로젝트를 세웠다.

이제  6종류만 먹으면 다 먹어 보는 것인데 내년 1년 동안 다 먹어야 한다.
그 다음 해에는 우리가 딸아이와 헤어져 이사를 하게 되니 이 동네를 떠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딸아이와 나는 6종류의 케잌을 어떤 날 먹을 것인지 심각하게 의논했다.
일단 내년 세 식구의 생일을 제하면 3번이 남는다.
내가 크리스마스 어떠냐고 하자 딸아이는 그 날은 반드시 아이스크림 케잌을 먹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그럼 어버이날 어때? 하니까 어린이날도 넣자고 한다.
물망에 어버이날, 어린이날, 결혼 기념일, 노동절 등등이 올랐지만 결혼기념일과 광복절에 먹기로 했다.
적절한 기간을 안배한 결과다.
결혼기념일은 자기가 사야 하니까 광복절에는 엄마가 사란다.
그러지 뭐...우리나라가 해방된 기념으로 케잌 사지 뭐...ㅋㅋㅋ
그리고 마지막 하루는 내년 12월 31일날 먹기로 했다.

딸아이가 케잌과 손으로 그린 카드를 준비했다.
케잌이 촌스럽던 고급지던 역시 생일 케잌은 맛있다...
난 내 생일 날 생일케잌에 와인을 마시며 두 사람을 노예처럼 부려먹었다...음하하하..





여섯페이지에 걸친 장문의 카드를 받았다.
그림의 내용도 심오(?)했다. 오즈의 마법사와 모모, 게다가 라바(만화영화주인공)까지 등장한다.
마지막 장을 모모의 거북이 카시오페아로 마무리했다.
나름의 스토리를 간직한 그림책이다. 어릴 때는 참이슬 한 병과 떡 벌어진 안주상을 그려주더니....
내년 생일에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차린 밥상을 제대로 그려달라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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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무명씨 2014/11/25 10:07

    정성이 가득담긴 생일카드를 받으시니 무척 행복하시겠네요.

    • 제비 2014/12/02 21:32

      넵. 좋아요 ㅎㅎ

  2. huiya 2014/11/26 14:45

    케익이 맛있어 보여요. 그리고 멋있는 카드...

    • 제비 2014/12/02 21:33

      케잌은 정말 맛있었어요.
      일본에 갔을 때 피자와 케잌 엄청 맛나게 먹었던 기억이....

  3. 알퐁 2014/11/29 18:56

    마지막 거북이 복이 마구 들어올 거같이 생겼습니다.
    happy birth day to you!

    • 제비 2014/12/02 21:34

      ㅎㅎㅎ

  4. 둥이맘 2014/12/08 20:27

    이렇게 꿈 꾸는 그림을 그리는 소녀가 너무 좋아요. 예쁜 딸이예요. 생일 축하드려요~ 늦었지만..^^

    • 제비 2014/12/09 21:22

      둥이맘님도 항상 꿈을 그리는 소녀 같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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