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딸아이의 졸업식이 있었다.
엊그제 입학식 하러 왔던 것 같은데 3년이 참 빠른 것 같다.
졸업식은 깔끔했다.
식전 행사로 무용부와 음악부가 수준 높은 공연을 보여 주었고
내외빈의 지리한 인사말도 없었고 구질구질한 시상도 없었으며 학교장의 축사는 간단했다.
반 대표들이 나와 졸업장을 받고 각 전공 별 1등 상만을 수상하고는
3년 간의 생활이 담긴 동영상과 각 반의 단체 졸업사진과 담임들의 메세지가 화면으로 보여지고
마지막 학생회장의 소회로 마무리했다.
'여러분 오른 손을 들어 옆 친구의 머리 위에 얹어 주세요 그리고 쓰다듬어주며 '사랑한다' 외쳐주세요
왼 손을 들어 옆 친구의 머리 위에 얹고 마구 쓰다듬으며 '수고했다' 외쳐주세요
그리고 남이었으면 벌써 갖다 버렸을 우리들을 19년 간이나 같이 살게 해 주신 부모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이들은 내내 깔깔거리며 우~ 와~ 탄성을 지르며 손뼉을 쳐댔다.
나는 눈물이 나왔다.
갑자기 세월호 아이들이 생각 났고 또 이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눈물이 났다.
딸아이 졸업식을 보며 눈물을 줄줄 흘리니 너무 쪽팔렸다.
무슨 사연 있는 엄마? 여자? 같이 보였을 것 같다 ㅠㅠ
난 사실 예술학교에 대한 인식이 참 좋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가 진학하는 것도 별로 탐탁치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난 3년 간 딸아이의 예술고등학교 생활에 만족한다.
선생님과 친구들 과의 관계도 좋았고 무엇보다 학교 생활을 즐겁게 했다.
물론 내부 사정을 알면 알수록 거시기한 면도 많은 것이 예술학교일 것이다.
하지만 별로 알려고 하지 않고 참여하지 않고 아웃사이더 학부모로서 본다면 나쁘지 않은 3년이었다.
졸업을 했으니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사실 딸아이는 대학 등록을 하지 않겠다고 우겨서 며칠 논쟁? 싸움?을 벌인 끝에
등록 마지막 날에 등록금을 냈다.
어차피 유학을 떠날 것이므로 1,2년 간의 대학 생활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며 바로 유학 준비해서 떠나겠다고 한 것이다.
물론 일리 있는 말이지만 그것이 확 내질러 본다는 듯한 인상을 내게 주었으므로 바로 수긍할 수는 없었다.
유학을 생각하고 있지만 대학 입시 준비하느라 구체적으로 알아 본 것이나 준비한 것이 없으니
대학 생활을 하면서 좀 더 폭 넓게 생각하고 알아보자는 내 말에,
자신도 여기 저기 물어 봤다. 그런데 엄마는 자신이 알아 본 것에 대해서는 무시하고 신뢰하지 않는다....
너는 세상이 100이라고 한다면 0.00001도 모르는 거다. 좀 겸허하고 겸손해져라....
난 원래 그렇다...그러니 나에게 겸손하라고 하지 마라...
넌 살다가 확 엎어져 봐야 정신을 차리지...
서로가 점점 기분 나쁜 말로 치고 받았다.
난 이 말에 확 열 받은 것이다.
어차피 자신은 유학을 생각하고 있으니 1년 간의 대학 생활은 캠퍼스 라이프? 나 즐기면서 대충 놀 것이라는..
넌 놀려고 몇 백만원 등록금 갖다 내냐? 똑바로 할 생각은 안 하고...
그래 어차피 대학 등록금 학비 아까우니 바로 유학 준비해서 떠날게...
난 유학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는 서양화 전공이고 작가가 되고 싶어하기에 원한다면 하기를 오히려 바란다.
그런데 지금 이 상황은 아닌 듯.....
난 아이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순간 최선을 다 하고
또 지금 생각하는 것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자신의 선택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다.
사실 나는 대학에 가서 열심히 생활하고 충분히 생각하고 더 넓게 사람도 만나고 찾아 보고 하면서 잘 준비하겠다는 말을 딸에게서 듣고 싶은 것이었다. 아무렇게나 놀면서 지내겠다는 말 말고 말이다...
그런데 고것은 내가 원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면서 죽어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반대로 말했다.
아우~ 꼴보기 싫어라~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지금 가야 하는 대학이 맘에 들지 않은 것이다.
'너 서울대 붙었어도 등록 안 하고 유학 갈거야?'
'아니..그건 얘기가 다르지..'.
'뭐가 달라? 너 웃긴다...'
딸아이는 서울대 입시를 준비했고 1,2차 시험 과정을 순조롭게 통과하며 당연히 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우리도 침을 흘리며 기다렸다...그러나 세상은 정황 상의 증거 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최종단계에서 떨어졌다. 선생님들과 기타 등등의 모든 사람들도 멘붕...
딸아이는 쿨하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아니었나보다....
수시에 함께 넣었던 대학, 전혀 준비하지 않았고 기대도 하지 않았던 대학에는 덜컥 붙어버렸다.
인생이 그런거지 뭐.....
내가 서울대라고 이렇게 까놓고 말하는 것은
이 땅에 발 붙이고 사는 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대학, 서울대...
서울대를 없애버리자는 주장이 나올 만큼 폐해?가 많은 것이 서울대다.
서울대는 갑 중의 슈퍼갑!
우리나라 모든 초중고 교육을 쥐고 흔든다.
서울대를 포함한 우리나라의 대학에서 공부와 연구는 사라졌고 오직 암기만이 남아 있을 뿐...
인간, 가치에 대한 고민은 사라지고 특정 대기업과 고시에 패스하기 위한 학원으로 전락했을 뿐....
대학에서 받는 돈은 또 오죽 비싸냐...정말 돈이 아깝다...
이런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 러. 나.
자식새끼가 걸리다 보니 대학의 문제고 나발이고 일단 붙어라...이거다.
서울대 엄청 욕하다가도 우리 새끼만 붙여 주면 다 용서해 줄게....이거다.
누가? 바로 나!
딸더러 웃긴다고 욕을 했지만 진짜 웃긴 것은 나다.
너무 쪽팔리고 부끄러웠다. 가슴에 손을 대고 반성하면서도 부끄러웠다.
표리가 부동하고 이중적인 잣대를 가진 대표적인 사례 아닌가....ㅠㅠㅠ
이 대학병(?)은 부모들에게서 훨씬 심각하다.
아이들은 그냥 대학 가면 한 1주일 좋거나 싫거나 하다가도 또 대충 적응해서 잘 다닌다.
그런데 가슴팍에 꽂아 놓고 끝까지 가는 것이 바로 부모들이다.
나도 딸아이 서울대 붙으면 누구누구한테 뻐시면서 자랑해야지 이런 생각으로 침을 흘렸다.
특히 둘째 시누이 남편에게 자랑해야지...이런 생각을 하면 기분이 좋았다 ㅋㅋ
딴 거 없었다. 어떤 공부를 하고 어떤 미래가 있고..이런 거 다 필요 없고
그저 얄미운 몇 놈에게 자랑하고 기를 팍 죽이고 싶었다. (정말 유치빤쓰~)
사실 지 입으로 자기 무슨 대학 나왔다고 자랑하는 사람은 없지만 자기 자식 어느 대학 다닌다고, 또 나왔다고 자랑하는 부모들은 널리고 널렸다.
낼모레 80이신 우리 엄마만 봐도 그렇다.
문화센터에서 그림 같이 하는 할머니가 자기 딸 이야기만 나오면 무슨 대학 나온 우리 딸..이런 식으로 자랑을 하더란다. 눈꼴 사나왔던 엄마가 한 번은 또 그 할머니가 그 이야기를 하기에 우리 딸이랑 사위는 무슨 대학을 나왔어..이랬더니 그다음부터는 그 딸이야기가 쏙 들어갔단다...
웹툰에서 본 장면.
50대 중년들이 동창회를 한다.
누구는 이사 되고 누구는 대표가 되고 누구는 이번에 몇백억 공사 따고...
추레한 친구 한 명은 조용히 소주잔만 기울이고....
잘 나간다고 떠들던 친구 한 명이 묻는다.
'너는 요새 좀 형편이 나아졌냐? 제수씨랑 애들은 잘 있고?'
추레한 아저씨 조용히 한 마디 한다.
'그렇지 뭐....우리 아들은 이번에 서울대 들어갔어.'
잘 나간다고 떠들어대던 동창들은 일시에 닥치고 조용~
핀잔을 주었던 엄마의 모습이나 중년의 동창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이 아닌가....휘휴~
이번에 딸아이와의 언쟁? 논쟁?에서 사실 내가 많이 찔렸다.
나의 이중적인 모습..그러면서 딸에게는 그러지 말라고 말하는 내 모습이 더 가관이었다.
부끄럽다. 그리고 반성한다. 자식문제라고 변명하지 말자.
관계 개선 후 딸아이가 그런다.
바로 유학 가겠다고 확 던진 거...사실 나에 대한 다짐? 뭐 그런거였어..
엄마도 알잖아..내가 얼마나 낙천? 나태?한지....
그냥 그런대로 대학 생활에 재미 들이고 미팅도 하고 이러면서 그냥 주저 앉을까봐 겁났어...
난 정말 작가가 되고 싶어...그래서 기회가 좀 더 많은 곳으로 가고 싶어...
엄마가 나에게서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아...그런데 죽어도 엄마가 원하는 말은 하기 싫은거 있지?
근데 다 아니까 걱정 마...
참 못됐다...누구 닮아서 그러냐?
누군 누구야 엄마 닮아서 그렇지!
어쨌든 24세까지 학비와 생활비 지원을 하고 그 이후로는 국물도 없다는 사실을 딸아이도 안다.
여태까지 가만 있다가 갑자기 그 24세가 만으로 24세 아니냐며 따진다.
난 무조건 지금부터 4년이라고 했다.
그리고 내 돈 받아 쓰는 것이니 똑바로 하라고....
요 부분에 대해서는 딸아이도 할 말이 없는 것 아닌가...음하하하하~
이번 일을 통해서 나도 인간 되려면 정말 멀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끊임 없는 마음 공부와 자기 다짐으로 더 추접스러운 인간이 되지 않게 더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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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대학 3학년을 마치고 이제 대학에서 더이상 배울 것이 없어서 휴학하겠슴다 하니 울 엄마 쿨하게 네가 그리 생각한다면 대학이 가르칠 게 없나 보지 그래라 해서 휴학하고 떠돌며 이일저일 하다 하고 싶은 일이 생겼는데 졸업장이 필요해서 다시 학교로 가서 졸업했습니다.
워낙 대졸자가 많은 한국에서는 그 후로도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외국 나와서 영주권 따는 것부터 시작해서 일자리 구하려니 그때 대학 졸업장을 따지 않았더라면 지금 제가 하는 일이 불가능했을 거 같더라구요. 졸업장이 없어서 정말 하고 싶은 일을 못하는 것도 졸업장 따려고 하고 싶은 일을 못하는 것만큼 속상할 겁니다.
그런 세상을 산 우리 세대는 대학 졸업장이니 좋은 대학이니 은근히 신경쓸 수밖에 없는 거 같습니다.
곧 세상이 달라지겠지요^^
외국 유학을 가더라도 국내대학에서 외국대학으로 옮기는 것이 훨씬 쉬울 겁니다 ^^
너에게는 더 가르칠 것이 없으니 그만 하산하거라~
알퐁님 어머님 말씀을 들으니 이런 장면이 생각나네요 ㅎㅎ
한국에서 대학을 들어가지 않고 외국에서 학부부터 했던 저로서는
한국에서 대학생활을 경험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열심히 하는 것은 한국에서나, 외국에서나 최선을 다해야 겠지요...
제가 유학 나올 때, 아버지가 반대할 줄 알았거든요.
그냥, 적당히 시집이나 가서 살라고...
그러면 나도 그냥 그렇게 살려고 했는데.
당신 인생이니, 당신이 알아서 하라고 하더군요.
부모도 믿을게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어디에서든 신중하고 최선을 다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인데 그게 말한다고 팍 깨닫는 것도 아니고..ㅠ
고3 따님의 솔찬한 이야기가 전개되어진 것이 엇그제 같은데 벌써 졸업이군요. 제비님의 눈물.... 마음적으로 이해가 됩니다.... 그래도 축하하는 것은 뺴먹으면 안되니......"졸업 축하합니다!!!"
표리가 부동하고 이중적인 잣대를 가진 대표적인 사례는 비단 제비님의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아요. 산다는 것 자체가 이중적인 잣대를 들이밀지 않고는 어떠한 답도 얻을 수 없는 어떠한 선택도 할 수 없는 것 같으니 말입니다...... 말씀은 그리 하셔도 제 마음의 귀에는 이상하게도 따님의 의견을 참 많이 존중해 주는 엄마 제비님님님님님 하는 소리가 들리는 걸요? ^^ 지혜로운 따님이 신중하게 자신의 앞 길을 결정할 것입니다. 믿어주셔요요요요요요 ^^
존중을 하든 안 하든 믿고 안 믿고 간에 결국은 지가 하고 싶은 대로, 지가 결정한 대로 갈 것이라는 것을 저는 잘 알아요...그런데 그걸 그냥 입 꾸욱 다물고 지켜 보려니 복장 터질 때가 많아서리...ㅋ
캐나다 안, 크지도 않은 이곳 킹스턴에 와, 아마 백명도 안 되었을 한국인이 살던 시절에(지금도 그 정도 수준일 듯) 초대를 받고 간 한 모임에서 대놓고 나는 어느 대학(서울대도 아닌) 나왔네, 너는 어느 대학 나왔니? 라는 사람들을 만나 어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오래 전에 지인에게서 들었었지요. 그랬답니다. 십 수년 전, 한국에서 그렇게나 먼 이곳에서요. 그게 옛날, 한 때 철 없고 뭘 몰랐던 시절이 아니라 아직도, 아니 더 뻔뻔하고 당당하게 내세우는 건 한국만의 독특한 문화 탓일까요? 국민성? ㅎ...한국만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만 했으면 좋겠어요. 적어도 공공연히, 뻔뻔스럽게 만이라도...그 나라가 도덕적으로 건강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니까요.
대학에 대한 열등감, 또는 우월감은 그리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아요...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