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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풍농월

진짜 사람이 산다 2016/03/21

by jebi1009 2018. 12. 27.

  

       

'여기 집이 있는 줄 몰랐어요. 여기 사시는 거 맞습니까?'


전입 신고 후 처음 우편물을 가져 오신 우체국 직원 분의 말이다.

얼마 전에는 택배도 왔다.

일단 택배 직원 분은 전화를 해서 집의 위치를 묻는다.

도로명 주소, 지번 주소 다 있어도 어느 골짜기에 틀어박혀 있는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대부분 동네 분이 택배나 우편물 배달 업무를 보시지만 동네 구석구석을 모두 알고 있기는 어렵다.

게다가 새로 생긴 곳은 더더군다나....

마을 끝에 재실이 있고 재실을 끼고 위로 200미터 정도 올라오면 간청재가 있다.

그런데 재실에서 길 위 쪽을 보면 집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정말 집도 절도 없는 것 같이 보인다.

재실을 끼고 살짝 돌아 조금만 올라오면 간청재 지붕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니 재실 위 쪽에는 직접 와 보지 않은 사람이면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마을 끝 재실이 있는 곳이다. 보통 왼쪽 길로 가는 사람은 있어도 위로 난 길로 다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 곳에서 보면 길 위쪽으로 집이 있을 것 같이 보이지 않는다.





재실 위로 몇 걸음 옮기면 저 멀리 오른쪽으로 간청재 까만 지붕이 보인다.



몇 미터 조금 더 올라오면 간청재의 모습이 확실히 보인다.




집배원 분들은 동네 사람들 대부분을 훤히 꿰고 있는 분들이지만 우리같이 처음 보는 이름은 일단 전화를 한다.

'집의 위치가 어딥니까? 처음 보는 이름이라서요..'.

나는 너무도 유명한 방향치 길치...어릴 때 손바닥만한 동네에서 집 잃어버리고 운 적이 엄청 많았다.

언제나 길을 물어보거나 집의 위치를 물어보면 냉큼 용가리를 바꿔준다.

직원 분은 대충 위치를 듣더니 용가리 이름을 말하면서 그 집이냐고 묻는다.

우체국 택배는 우편물 배달하시는 분이 같이 하시기 때문에 처음 왔던 곳을 기억하고는 말씀하신다.

그리하여 역사적인 택배가 도착하였다.

감격적이었다. 이렇게 택배도 정상적으로 오는 구나....

돌아가시면서 말씀하신다.

'눈이 많이 오면 차가 올라 올 수 없으니 그때는 마을에 맡기겠으니 좀 부탁드립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눈 열심히 치워 놓을게요..'


간청재에 도착한 첫 번째 택배





두 번째 다른 택배 회사에서도 전화로 물어물어 정상적으로 도착했다.

역시 택배 물건을 전달하시면서 여기 집이 있는 줄 몰랐다 말씀하신다.

이제 우리 이름도 택배 직원 분에게 입력되었을테니 멀쩡하게 잘 도착할 것이다.


빨랫줄 칠 자리를 고민하다 결국은 가장 간단한 방법을 선택했다.

기둥 박을 곳을 아무리 살펴 보아도 앞마당에는 어느 곳이건 기둥 자체가 너무 걸그적거리고 조망도 가리고...

매번 기둥을 박았다 뽑았다 할 수도 없고 말이다...

그렇다고 뒷마당에 치자니 뒷마당에는 정오가 지나야 해가 비친다.

역시 아침부터 햇님이 방끗방끗 웃어주는 앞마당에 빨래를 널어야 효과가 만점인데 말이다.

그리하여 누마루 기둥과 집 벽에 간단히 고리를 박아 빨랫줄을 걸고 빼기 쉽게 했다.

고리 정도야 눈 감아 줄 수 있다. ㅎㅎ

정말 빨래 하나는 끝내주게 잘 마른다...흡족 만족!!




햇살 좋은 마당에서 빨래를 탁탁 소리 나게 털어 널고 빨래 집게로 딱 찝어 놓고...마당 빨랫줄에 빨래 너는 소원을 이제야 이루었네 ㅎㅎㅎㅎ




우편물도 오고 택배도 오고 집 마당 빨랫줄에는 빨래가 춤을 추고....

정말 사람 사는 집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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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너도바람 2016/03/21 21:21

    쫌 있으면 재실에 늘어지게 수양올벚꽃이 피겠네.
    빨랫줄에 널린 빨래 보니, 은비령님 생각난다.
    소원이 빨랫줄에 빨래 널면서 사는 거였는데... 잘 지내시겠지?
    본지 한참 됐네 그랴. 전지 기술자 됐겠지? 일 다니라 바쁜 계절됐네.

    • 제비 2016/03/23 17:53

      저도 빨래 널면서 은비령님 생각했었어요..

  2. WallytheCat 2016/03/22 06:46

    그찮아도 제비님 댁 생각을 하며, 우편물은 잘 도착하는지가 잠깐 궁금했더랍니다. 멀리서 별걸 다 궁금해하지요. 뭐든 다 새로이 시작하시니 축하할 일이 많아 좋으네요.

    • 제비 2016/03/23 17:54

      택배와 인터넷은 시골 살이의 정말정말 중요한 조건인 것 같아요...어찌어찌 해결이 되어 가네요 ㅎㅎ

  3. 알퐁 2016/03/23 04:44

    제대로 동네 주민이 되셨네요 ^^
    언제 뉴질스타일 빨래대를 사진찍어서 보여 드려야겠네요. 재미있게 생겼고 붙잡고 놀 수도 있답니다.

    • 제비 2016/03/23 17:54

      오~ 기대 만땅이네요 ㅎㅎ

  4. wooryunn 2016/03/23 13:12

    잘 지내시나 궁금했어요.
    우체국 택배를 시작으로 다른 택배도 어르고 달래가며 받으시면 될거예요.
    택배 들어오면 정말 아쉬운 게 많이 줄어 들어요.
    산내 '나무야 놀자' 동아리 모집하는 것 같던데...용가리님이랑 울 남편이랑 보내(^^)면 어떨까 싶어요.

    • 제비 2016/03/23 17:56

      우와~ 반가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