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먼저 전화해서 안부를 묻는 스타일은 아니다.
게다가 전화 보다는 문자가 더 편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데 갑자기 양양으로 귀촌한 선배의 안부가 궁금했다.
옥수수와 고사리를 주고 받기도 하고 내 커피를 좋아해서 커피 주문으로 안부를 갈음하기도 했었는데
생각해 보니 마지막 커피 주문 후 꽤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커피 주문이야 이런 저런 이유로 안 할 수도 있지만 이번에는 왠지 느낌이 이상했다.
전화에 불편한 내가 문자 대신 전화를 걸었다.
선배는 강원도가 아닌 경기도 어느 병원에 있었다.
우울증으로 입원한지 한 달이 넘어가고 있다 했다.
어쩐지 전화하고 싶더라니....
지금은 많이 좋아졌고 밥도 먹는다고...
어떤 상태였는지 짐작이 갔다.
10년인가 20년인가...아무튼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우울증을 앓고 있는 언니가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언니는 직장생활도 계속하고 이제는 자신의 상태를 점검해서 다운되는 사이클이 돌아오면 약을 바꾸기도 하면서 그 상태를 그냥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주변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은 많이 힘들다.
엄마의 전화에서 '전화를 안 받는다..니 언니 또 시작됐나보다..그놈의 병은 왜 낫지를 않는다니...'
이런 소리를 1년에 한 두 번은 듣게 마련이다.
먹지도 씻지도 않고 그냥 누워만 있는다..그러면서 그냥 그렇게 삶을 마감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런 언니를 보면서 많이 힘들었다.
그 상태가 되면 방문 밖을 나오기도 힘들어 한다.
그래도 약의 힘과 모든 정신을 모아 직장에 출근하려 나온다.
그 끈마저 놓아버렸다면 더 힘들었을지도....
사실 나도 아주 잠깐 그런 비슷한 상황이 오기도 했었다.
아빠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뒷마무리를 하던 때
머릿속은 해야 할 일로 꽉 차있고 감정 정리도 제대로 안 되어 엄청 복잡했을 때....
복잡하던 머릿속은 갑자기 텅 비어 버리고 몸과 마음이 정말 '툭'하고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난 그 순간을 기억한다.
아빠의 추도식을 마치고 돌아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차 문을 열고 내리는 순간 그랬다.
이전까지의 나는 차에서 내리는 순간 완전히 달라져버렸다.
나를 포함한 모든 것이 무의미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린 느낌이랄까....
그 허무하고 무의미한 느낌이 너무 강해서 그대로 땅 속으로 들어가거나 더 이상 눈 앞에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물론 언니나 선배가 겪는 상황이 이와 비슷한지는 모르겠으나 그 언저리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선배는 전화기 너머로 말했다.
늙어가면서 별거 별거 다 한다...그래도 이 병원에는 쇠창살 같은 것은 없다 ㅎㅎㅎ
나 구경가도 되요? 그래 정신병원 구경 와...
처음 보러 가겠다고 했을 때는 뭘 오냐고 하더니 목소리가 조금 밝아진 듯하다.
그리고 양양으로 커피 좀 보내주란다.
'내가 이렇게 되어서 커피도 못 마시고 있을' 아저씨에게 보내주란다...
알았어요..맛있게 볶아서 보내드릴게...
선배는 이제 명상하러 갈 시간이라며 전화를 끊었다.
살아가는 것이 참 힘들구나...
항상 위태롭게 경계에 서 있구나...
경계에 서서 비틀거리며 중심 잡으려 애쓰는 내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취중진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울 나들이 2017/03/05 (0) | 2018.12.28 |
---|---|
어느새 2017/02/15 (0) | 2018.12.28 |
진도 2017/01/26 (0) | 2018.12.28 |
낯설다 2016/12/31 (0) | 2018.12.28 |
촛불 2016/11/13 (0) | 2018.12.28 |
잘 지내시죠. 모처럼 블로그에 들어왔다가 몇몇 이웃들 담장 좀 기웃거리다
갑니다. ^^
와~ 반갑습니다. 잘 지내고 계시리라 믿어요^^
사는 게, 살아내는 게 쉽지 않은 일이지요.
제비님 선배분 얼른 괜찮아지시길 바랍니다.
'두려워 마라, 별 것 아니다.'
이 말을 꺼내 보면서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