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박 3일 간의 서울 나들이가 있었다.
명절이나 생신 등의 정기적 나들이가 아니었다.
아빠에게 간 김에 서울까지 가게 되었다.
3월 1일 아빠의 생신 때 아빠의 납골당을 찾는다.
우리는 1년에 두 번, 명절이 아닌 생신과 기일에 아빠에게 간다.
돌아가신 분 생신을 꼬박꼬박 챙기는 것이 좀 이상하기도 하지만 그냥 그렇게 한다.
처음에는 케잌에 초를 꽂고 불을 붙이고 노래도 불렀었다.
지금은 그냥 케잌만 놓고 우리가 맛있게 먹는다.
사진 속 아빠는 그대로인데 이러다가 우리가 아빠보다 더 늙어버리는 날이 올 것 같다.
우리는 양력 생일을 했기 때문에 3월 1일이 언제나 공휴일이라 생일상을 아침에 차렸었다.
생일 아침상은 휴일의 늦잠과 바꿔야 하기 때문에 항상 불만 아닌 불만이 있었다.
아침부터 모여 떡 벌어진 생일상(우리집은 그 어떤 명절 보다 아빠의 생일상이 제일 화려했다)에 잠 덜 깬 얼굴로 모여 앉아 기름진 음식을 먹었었다.
그리고는 온천에 가거나 공원에 가거나 농구 경기를 보러 가기도 했다.
아님 아침부터 부어라 마셔라 몇 병의 술병이 나뒹굴면서 아무데나 쓰러져 낮잠을 자기 일쑤였다.
그래서 3월 1일은 가족 모두가 개별 행동을 한 적이 없다.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아님 저녁까지 먹고 헤어졌다.
독불장군 아빠와 그에 복종하는 엄마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다 보니 아빠가 돌아가신 후에도 3월 1일은 아빠를 찾아가야 할 것만 같았다.
그냥 집에 있으면 너무 허전해서....
내년이면 벌써 10년이다. 시간은 참 잘 간다....
보통은 그렇게 아빠를 보고는 바로 턴해서 집으로 오는데 이번에는 서울까지 갔다.
왜냐면......언제나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 우리 딸 때문이다.
2학년이 되면서 운 좋게 기숙사에 배정이 되었다.
그래서 다들 다행이라 여기며 기뻐했었다.
그. 러. 나. 기숙사에 가지 못했다.
왜냐고? 바로 기숙사비 납기일을 까먹었기 때문이다. 장하신 우리 딸이 말이다.
난 거의 한 달 동안 뚜껑이 열려 있었다.
딸아이도 창피한지 친구들에게도 그냥 기숙사가 안 되었다 말했단다. 그리고 내 입단속에도 나섰다.
절대 다른데 가서 말하지 말라고....
니가 저지른 일이니 니가 수습해라!
딸아이는 방을 구하러 다니고 이사까지 혼자 했다.
물론 방을 구하는 동안에도 멍청한 소리 한다고 나한테 욕 먹어가면서...
그 우여곡절 끝에 자리 잡은 딸아이의 새로운 둥지를 구경(?)하러 가게된 것이다.
딸아이가 보내준 사진으로 보기는 했지만 여기저기 살펴보니 나름 괜찮았다.
학교 앞 아파트 쉐어하우스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같은 학교 학생 8명이 함께 생활한단다.
작년 기숙사 들어갈 때 가져갔던 이불(어릴 때부터 덮던 것)은 너무 낡아 여기저기 찢어져서 새로 장만했고 빨래 건조대도 사고 세탁 세제며 옷걸이 기타 등등...필요한 것들을 사서 갖춰 놓은 것을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물론 이것저것 사면서 나와 통화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혼자서 살 도리를 찾은 것이다.
속으로 생각했다.
나보다 낫구나...
나는 딸아이 나이일 때 비누 하나 내 손으로 사 본 적이 없는데 말이다.
딸아이 집을 나와 딸아이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한 횟집으로 갔다.
가성비 좋은 집이었다. 옛날 학교 다닐 때 생각도 나고...
딸아이는 소맥 만드는 기계(?) 시범도 보여주고 술자리 게임도 가르쳐 주었다.
미술학원 알바해서 번 돈으로 딸아이가 쐈다.
젓가락을 저 기계(?)에 끼우고 버튼을 누르면 잘 섞인 소맥 완성~
정말 오랜만에 산오징어회를 먹었다. 질 좋은 생선회도 푸짐히 나왔는데 반가운 마음에 오징어만 찍었네...
맥주 잔에 맥주를 붓고 그 잔 안에 소주 잔을 넣고, 그 소주잔에 돌아가며 소주를 따른다. 어느 정도 무게가 되면 소주잔이 쑥 가라앉는데 자기 차례가 되어 소주를 따르다 잔이 가라앉으면 술래가 되어 그 술을 원샷하는 것이다. 두 번 했는데 다 내가 걸렸다ㅠㅠ 근데 나는 나이가 있으니 원샷은 좀 피해달라고....용가리와 딸아이가 봐줘서 원샷 말고 나눠 마셨다. ㅋㅋ
내가 잘 가는 '너스레'라는 주점에도 가야 하고, 거기 정말 치즈김치전이 맛있거든....
가격 대비 퀄리티 좋은 경양식집(?)에도 가야 하고, 엄마 학교 다닐 때 다녔다는 딱 그 옛날 분위기야..
떡볶이 국물에 얹어 먹는 순대가 정말 맛있는 집에도 가야 하고, 타르트 맛있는 집에도 가야 하고
엄마 1주일 서울에 있다 가면 다 먹을 수 있는데...언제 날 잡고 다시 와 응?
집에 오면서 생각했다. 감사했다.
물론 더 좋은 원룸이나 오피스텔에서 사는 아이들도 있겠지만 그래도 내가 보기에 그런대로 마음이 놓인 곳에서 살게 되어 감사했다.
정말 내가 돈이 없다면, 그래서 내 눈으로 보고 온 곳이 보다 열악했다면 마음이 참 안 좋았을 거다.
아이의 학비와 적당한 방세와 적당한 생활비를 줄 수 있어서 감사했다.
그냥 단순하게 지금 이 순간 이 정도의 돈이 나에게 있어서 정말 다행이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마구 들었다.
나중에 어찌 되든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할 일이고.....
간청재로 돌아오니 지리산이 설산이다.
이런 곳에서 이렇게 살 수 있으니 또 감사했다.
서울 갔다고 밥이며 고기며 술이며 사 주는 친구가 있어서 감사했다.
나는 정말 운이 좋다. 내가 노력한 것은 없고 전부 운빨이 좋아 이렇게 사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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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에 감사하며 사는 마음도 아름답지요. ^^
순간 순간 감사한 마음이 들 때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어요 ㅎㅎ
저는 쏘맥을 즐겨 마시는 타입은 아닌데 따님의 쏘맥 회오리 솜씨를 보고 있자니... 한 잔 하고 싶은데요?ㅎㅎㅎㅎㅎㅎ 감사할 일이 천지인 삶의 축복을.... 자주 그것도 매우 자주 불평하고 원망하고 사는 것이 늘 부끄럽습니다.
저리 아름다운 설산을 매일 아침 볼 수 있는 제비님의 운빨은.... 조금 질투가 납니다 ㅎㅎㅎ
그래도 날이 날이니만큼 오늘 3월 10일은.... 질투 접고! 그냥 아무 이유에고나 기뻐하렵니다! ㅎㅎ
어이구......오랫만에 들어오셧네유?...
무쟈게 반갑습니다. 오늘같이 특별한 날에
들어오시니 더욱 반갑습니다.
벨라님 반가워요~~
세레나와 벨라님 동지도 다들 잘 계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