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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풍농월

하루하루.. 2017/07/31

by jebi1009 2018. 12. 29.



집에서 뭐하고 지내세요?

어쩌다 마주하는 사람들이 건네는 말이다.

도대체 저 둘은 집구석에서 뭘 하며 지내는 것일까...

마을 근처에서는 코빼기도 볼 수 없고 다른 외지인들이 흔히 하는 산책조차 하지 않으니

하루하루를 어떻게 지내는지 신기해 보이나보다.

목공하러 갔을 때 잠시 배우러 온 고등학생조차 내가 무얼 하며 지내는지 호기심 반, 걱정 반으로 물어본 질문이기도 하다.

글쎄...딱히 이거다 할 만한 일은 없고 그냥 하루하루 할 일이 생긴다.

요 며칠 사이의 일을 복기해 보면

마당에서 지네를 발견하고 기겁하며 모기약 뿌려 퇴치하고

툇마루 밑에 벌집이 생겨 119 불러 떼어내고

누마루 앞의 밤사이 싸 놓은 똥의 정체가 박쥐똥이라는 것을 알아내기도 했다.

항상 누마루 앞에 누가 똥을 싸 놓는 것일까 궁금했었다.

우리는 들쥐나 다람쥐라 짐작하고 어째서 이 자리가 똥누는 자리가 된 것일까..어떤 면에서 이 자리가 배변활동에 최적화되었나...하면서 고심하고 있었었다.

어느날 누마루가 아닌 툇마루에 똥이 두어 개 있는 것이다. 요놈이 이제 마루까지 진출했나...하는데 밤이 아니라 낮에 똥이 조금 더 많이 생긴 것이다.

아니 내가 두 눈 뜨고 있었는데 언제 와서 똥을 싸고 갔지? 했는데 아무래도 이상한 것이다.

용가리가 살펴보다 기가 막힌 상황을 접했다.

접어 놓은 덧문 뒤에 박쥐들이 자고 있었던 것이다.

박쥐가 한 3-40마리는 족히 되는 것 같았다.

박쥐를 날려 보내고(무서워 죽는 줄 알았다. 박쥐 엄청 징그럽다 ㅠㅠ) 벽을 청소하고 그러다 덧문을 떼어내고..

일이 커졌다.

덧문 청소와 종이 교체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지금 종이 떼어내고 사포질하고 오일 발라서 말리는 중...

박쥐를 쫓아낸 뒤부터는 누마루 똥은 사라졌다.

열무김치와 부추김치 오이피클을 담갔다.

정말 장족의 발전이다.

이번 열무는 장에서 사다 담갔다.

가물어서 그랬는지 열무에 벌레가 엄청나게 생겨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게 되어 다 뽑아버렸다.

비가 오기 시작하자 부추는 엄청난 속도로 쑥쑥 자라서 태어나 처음으로 김치로 담갔다.

또 오이도 쑥쑥 자라 피클이라는 것도 생전 처음 만들게 되었다.





인터넷 황금 레시피를 보고 했으니 맛은 나쁘지 않다. ㅎㅎ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맛잇는 음식이 자기가 한 음식 아닌가...ㅋ

딸아이가 남겨 놓고 간 또띠아를 처분하기 위해 난생 처음 피자와 브리또를 만들기도 했다.



코 앞에서 풀 뜯어 먹는 고라니를 보기도 하고 까마귀들의 공중 혈투를 보기도 했다.


이 창문 너머로 자꾸 소리가 나서 쳐다보니 고라니가 풀을 뜯어 먹고 있었다.



고라니가 이제 간이 커져서 떡하니 쳐다보고는 도망가지도 않고 먹을 것 다 먹고 갔다. 용가리는 이제 고라니마저 우리를 우습게 안다며 슬퍼했다 ㅋㅋㅋ

어느 날은 길가에 갑자기 나타난 호박을 보고 놀라기도 했다.

뒤쪽 땅에 심은 호박이 마구마구 자라나 길가까지 덩굴이 뻗쳤다.

잎은 무성한데 호박은 달리지 않은 것 같고 잡초와 뒤엉켜 에라 모르겠다 내버려 두었더니

어느 날 호박 하나가 길바닥까지 나와 달려 있는 것이다. 깜놀~

더운 날 땀흘리며 나 먹겠다고 커피를 볶기도 하고

광목 커튼 빨아서 다림질 하느라 죽을 뻔 했다.

광목은 다림빨이 너무 안 먹는다. ㅠㅠ

목공 가서 깎아 놓은 볶음주걱 사포질해서 기름 먹이는 일도 했다.



아마씨유를 먹인 볶음주걱들...칼로 일일이 깎아내서 모양은 가지각색. 아직 두어 번 기름칠을 더 해야 한다.


물론 틈틈이 풀 뽑는 것은 거의 일상이다.

그러다 나도 모르는 사이 꽃이 피어 또 나를 놀래킨다.

담양에서 얻어 심은 금꿩의 다리와 능소화가 올해 처음 꽃을 피운 것이다.

환상..그 자체다.





나는 나대로 용가리는 용가리대로 꽃은 꽃대로 풀은 풀대로 나무는 나무대로 벌레는 벌레대로

모두 각자 꼼지락거리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것이다.

내가 보지 않는다 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내가 미련하고 부족해서 눈길을 주지 못할 뿐이지....

나른하고 무기력한 날도 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은 없다.




한 달 동안 비가 오지 않고 가물었을 때 우연히 보게 된 싹. 집 지을 때 사용했던 것 같은 받침대를 용가리가 정리하다가 발견하고는 나를 불렀다. 나는 이것을 본 순간 한숨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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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벨라줌마 2017/08/01 21:19

    집에서 뭐하고 지내세요? 라는 질문 저도 매우 자주 듣는 질문입니다...... 뭐 대단하게 스케줄 빡빡하게 성과가 들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저도 나름 꽤 바쁜데..... 집안에 할 일이 늘 태산인데 그런 질문 받으면 내가 혼자 띵가 띵가 너무 노나? 싶은 마음도 듭니다 ^^
    틈틈히 풀도 뽑고 똥 싸 놓은 녀석 누군지 밝혀내기 위해 관찰도 하고 음식도 하고 커텐도 만들고..... 세상에나 집에서 이렇게 바쁘게 보내시는 제비님을..... 저는 알아요 바쁘신거~~~~~ 말씀 드립니다 ^^
    간청재에 곧 식당 문 여셔야 하실 듯요! 모두 맛있어 보입니다!

    • 제비 2017/08/05 09:13

      시간에 쫓겨 바쁜 일은 없지만 그래도 사부작거리며 움직이다 보면 시간은 참 잘 가요 ㅎㅎ

      원래 남의 떡이 더 맛나 보이는 법!
      맛의 진실은 모르지요 ㅋㅋㅋ

  2. huiya 2017/08/05 09:51

    금꿩의 다리라는 꽃은 처음 봐요. 이름도 모양도 멋있네요....

    • 제비 2017/08/07 08:40

      저도 몰랐는데 너도님 덕에 알게 되었어요.
      정말 모양도 색깔도 참 예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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