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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풀이

왜 이곳에 살고 왜 남아 있는가.. 2013/04/12

by jebi1009 2018. 12. 25.



며칠 전에 영화 두 편을 때렸다.

보스니아 출신 여성 감독 '아이다 베기츠'의 [스노우Snijeg ],
짐 자무쉬 감독의 [커피와 담배 Coffee and Cigarettes]



보스니아 내전이 끝난 1997년 보스니아 동부지역을 배경으로 하는 [스노우]는 너무 절절하지도 않고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마치 바람도 없는데 시나브로 풀려 풀려내리는 짚단, 짚오라기의 소리 같은 영화다.
모든 남자들, 남자 아이들까지 모두 사라지고 그들을 잃은 여성들과 고아 여자아이들이 사는 외딴 마을.
나이 많은 할아버지와 두려움이 닥치면 머리가 자라는 남자아이를 빼고는 모두 여자들이다.
실제 처형장에서 머리가 자라 여자아이로 오인하여 살아 남게 된 아이를 모티브로 하였단다.
영화에서도 그 남자아이는 낯선 남자나 두려운 대상, 악몽을 꾸게 되면 머리가 길게 자란다.
주인공인 알마의 의지를 말해주는 듯한 스카프가 매 장면마다 눈길을 끌고 알마의 기도 준비 모습,
알마의 꿈속 장면은 아름답고 슬프다.
마을 사람들의 소중한 천(스카프, 가방, 앞치마)을 훔쳐다가 카페트를 짜는 할머니...
할머니는 그 카페트를  학살된 사람들이 묻힌 곳을 찾아갈 때 개울을 건너기 위해 펼친다.
마치 삶과 죽음의 경계를 건너는 듯...

남겨진 마을의 여성들은 알마가 중심이 되어 자두잼, 과일절임, 채소절임 등을 만들어 도로에 내다 팔지만
신통치 않다...마침 마을을 매입하기 위해 나타난 사람들...땅을 팔려는 사람들과 어떻게든 그 곳에서 살아보려는
알마와 시어머니...
그런데 우연치 않게 마을을 매입하러 온 세르비아인에게 자기고백을 듣게 되고
학살당한 마을 남자들이 묻힌 곳을 알아내어 수습한다...그리고 눈이 내린다..
결국 마을 사람들은 왜 이곳에 살고 왜 이곳에 남아 있는가..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냥 그렇게 그렇게 다시 살아간다...

전체적으로 영화에서는 자연이 주는 이미지를 매우 중요시하는데
눈이 주는 이미지도 여러가지 느끼게 해 준다.
사실 그 마을은 눈이 내리면 살기 어려워지는데 그 곳의 고아 소녀는 하얀 밀가루를 뿌리며 눈이 내리기를 바란다.
시신이 묻힌 곳을 발견한 다음날 내리는 눈은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보인다. 나무들은 파란데 눈이 내린다.
눈이 내리는 시기도 아닌데 눈이 내려 모든 것을 치유해 주려는 것처럼...
또 눈 때문에 토지 매입자들이 떠나지 못해 마을을 팔지 않게 되는 역할도 하고..

영화를 보는 내내 알마의 스카프는 너무 아름답고 슬펐으며 그녀들이 만드는 자두잼이 너무 먹고 싶었다.

저기 보이는 다리 양편으로 이슬람과 기독교 세력이 싸워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고 한다.
  그때 다리는 무너지고 평화의 의미로 다시 만들었다고...지금은 저곳에서 다이빙 대회를 하며 즐기고 있다.

몇 년 전 한 6,7년 전 쯤에 크로아티아를 여행한 적이 있었다.
크로아티아 경계부근의 보스니아 모스타르에 갔던 것이 생각난다.
자연은 눈부시게 아름다웠고 그 곳의 젊은 남녀들의 미소도 환했지만 그들은 너무나 처참한 유년기의 상처를
지니고 있었다.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대학생 쯤 되는 아이들은 모두 8,9살 때 그 학살의 현장에 있었고
가족을 잃었다고 했다.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고 햇살이 눈부신데 불과 십여년전에 그런 일들이 이 곳에서 있었다니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그때의 흔적을 간직한, 총탄이 박힌 건물들도 많이 보이지만 어찌 그리 사람들은 유쾌하고 평화로워 보이는지..
게다가 그 아름다운 풍경들이란...
정말 삶을 이어가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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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hippy 2013/04/13 07:45

    '영화를 때렸다'...ㅎ...이거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입니다. ^^
    시간이란 묘하지요. 전쟁의 상처도 금새 저렇게 지워버리니 말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쉬이 버릴 수 있지만 사람에게, 역사에 남겨진 상처란 얼마나 깊을 것인지...시간은 모든 것을 이긴다. 그렇겠지요.

    • 제비 2013/04/15 22:36

      흐릿해지거나 아주 작아질 수는 있겠지만 지워지지는 않을 것 같아요....

  2. 고들빼기 2013/04/13 12:26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종교,
    나와 다르면 이교도이거나
    지옥으로 보내거나
    전도의 대상으로 여기는 기독교...

    • 제비 2013/04/15 22:23

      종교 자체가 문제라기 보다는 종교를 이용하는 정치 때문이겠지요...

  3. 너도바람 2013/04/15 11:50

    보스니아 모르타르... 여행기를 읽을때마다 가슴이 시큰한 지명인데 늘 잊네그랴.
    담에 잊지 말고 외장하드 들고와 내 외장하드에 심어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