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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풀이

오묘한 조화 2013/04/15

by jebi1009 2018. 12. 25.


       



짐 자무쉬의 [커피와 담배]는 몇 년 전에 본 것이지만 다시 봤다.



이 영화는 볼수록 당기는, 마치 씹을수록 맛이 나는 오징어포 같은 영화다.
11개의 독립된 에피소드로 구성된 영화는 1986년 6분짜리 단편영화를 발표하면서 그 후 17년 간 커피와 담배에 관한 에피소드를 묶어 장편영화로 발표하게 된다.
“오늘 뭐했어?, 하는 질문에 누구도 ‘어, 커피브레이크를 가졌어’라고 대답하진 않는다. 어쩌면 일상적으로 커피를 마시는 시간은 우리 삶에서 가장 드라마틱하지 않은 시간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이 시간을 담고 싶어졌다”는 짐 자무시는 레스토랑에서, 카페에서 우연히 듣게 되는 사람들의 수다를 원천으로 17년간 이 영화를 만들어나갔다 한다.
영화의 모든 에피소드에는 검은 색의 커피와 흰 색의 담배, 검은 색과 흰 색의 체스판 무늬의 탁자가 화면을 구성한다. 그리고 흑백화면은 이러한 기본 구성에 매우 적절하고 또한 풍부한 질감으로 다가온다.
체스판무늬의 탁자에서 2명 혹은 3명 정도가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우고 잡담?대화?수다?를 나눈다.
황당, 어색, 짜증, 웃음, 허탈, 열등, 굴욕, 허무, 답답, 가식, 조롱, 탐색...
어디서 주워 들은 이야기에 현대인들은 혼자 있기에는 외롭고 둘이 되는 것은 너무 버겁다고 하는데
영화 속 인물들은 모조리 외롭고도 복잡하다.
그렇다고 둘이 나은가 하면.. 차라리 홀로 있는 게 낫다 싶다.

마지막 에피소드 '샴페인'에서는 구스타프 말러의 노래와 함게 두 노인의 대화가 나온다.
....
- 우리 지금 어디에 있는거지?
- 작업장 창고라네, 테일러
- "작업장 창고라네, 테일러" 너무 무겁고 생기 없이 들리는구만
......

- 우리 이 커피를 샴페인으로 생각하세
.....
- 난 커피가 더 좋네. 단순 노동자들의 커피
- 자넨 너무 소박하구만, 빌 자네의 문제가 뭔지 아나?
- 뭔가?
- 생의 기쁨이 없다는 걸세
- 없다구?
- 그래, 게다가 이 커피는 최악이네
- 자네 말이 맞군, 정말 맛이 없어
.....
그리고는 1920년대 파리와 1970년대, 정확히 1970년대 후반의 뉴욕을 위하여 커피로 축배를 하며
정말 맛있다고 흡족해한다.
10분 간의 휴식 시간이 거의 지나가고 2-3분 밖에 남지 않았지만 너무 잠이 온다며 테일러는 잠이 든다.(혹은 죽음)

음악 이야기도 많이 나오는데 의술과 음악의 관련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여러번 나온다. 약간은 황당스럽게..
음악에 대한 지식은 별로 없지만 배경에 깔리는 음악은 티나지 않게 영화 속에 담배연기처럼 스며들고
실제 음악인들이 출연하기도 한다.  

짐 자무쉬의 많은 매니아를 만들었던 [천국보다 낯선]도 사실 별 내용도 없다.
그냥 건달 같은 젊은이 셋이서 뉴욕에서 클리블랜드로, 다시 플로리다로 갔다가 도박하다 돈 날리고
여자는 우연히 돈 가방 얻고..그래서 배신하고 혼자 떠나고...
그래도 자무쉬의 영화를 보면서 마른오징어 처럼 자꾸 되씹게 되는 것은 그가 보는 삶의 단면들 때문이다.
자무쉬의 영화를 보면 참 스산하고 건조하다...그래도 그 건조함에 스며드는 커피향과 담배연기가 있다.

실제 [커피와 담배]  이 영화가 상영된 극장에서는 종영 후 극장 앞의 커피집에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줄과
담배를 피워대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고 하니
영화를 보면서 내내 커피와 담배에 대한 충동을 느낀 것이 나 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에 위로를 받는다.
영화에 나오는 커피는 맛있어 보이지도 않고 향이 있어보이지도 않는 싸구려 느낌이 나며
담배 또한 그런데도 말이다.

사실 나는 커피와 담배를 동시에 즐기는 편은 아니다.
담배를 피고 커피를 마시면 커피 맛이 형편없어지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도 등장 인물들이 커피와 담배 중 어느 것에 더 비중을 두는가를 살펴보면 그 사람의 진정성? 태도? 뭐 이런 것들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커피와 담배..정말 오묘한 조화다.

생각해 보니 영화[스노우]에서도 외딴 마을에 남겨진 여자들이 담배를 구하기 위해 애쓰고
담배 연기를 통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모습들이 많이 나온다.


건강과 웰빙을 외치는 현실에서 지탄 받는 니코틴, 카페인, 알콜..
하지만 또 다른 웰빙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