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좋아!!
음풍농월 2018/09/30 22:01 제비
시골 생활의 1년이란 결국 겨울을 준비하기 위한 과정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땅이 녹기 시작하는 봄부터 땅을 갈고 씨를 뿌려서 가을에 거두어 저장에 용이하게 만드는 모든 과정은
바로 겨울을 나기 위한 작업인 것이다.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에도 나오지 않는가...여름 내내 열심히 일한 개미는 겨울을 행복하게 잘 보냈다고...
간청재 내려와 살고 보니 노력의 정도와 무관하게 주어지는 가을의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열심히 노력했다면 주어지는 것이 더 풍성할 수 있겠지만 반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실망한 결과도 얻기 마련이다.
어쨌든 무언가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신나하는 기분은 가을에 주어지는 선물이다.
게다가 하늘 색도 달라지고 노을 빛도 더 예뻐지니 어찌 가을이 좋지 않겠는가!!
땅콩을 수확했다.
이번에는 작년보다 더 짭짤하게 건진 것 같다.
겨우내 나의 요긴한 술안주가 되어줄 것이다.ㅋㅋ
게다가 땅콩 수확 후 햇님도 도와주어서 지금 잘 말리고 있는 중이다.
가을에 거둔 수확물은 말려서 저장하는 것이 대부분인데 가을비가 많으면 정말 난감하다. ㅠㅠ
고추는 한 번도 따지 못한 채 여행을 다녀와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다녀와 부랴부랴 한 번 따서 말린 것이 나름 선방했다.
엊그제 말린 고추를 들고 방앗간에 갔다.
고추 빻으러 왔다 하니 고걸? 하시며 놀리셨다.
까만 비닐봉지 두 개.....
그런데 웬걸...빻고 나니 생각보다 양이 많았다.
고추를 또각또각 잘라 차곡차곡 넣어서 그런가 보다며..건조기도 없을텐데 잘 말렸다고 칭찬해 주셨다.
'그기..재산인데..가다 터쳐서 흘리면 우짤꼬...한 번 더 담아가야지..' 하시면서 두 번이나 꼭꼭 담아 주신다.
그래서 내가 얻은 고춧가루는 4근...정말 훌륭하지 않습니까? 으쓱으쓱^^
둘이서 1년 동안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양이다.
이번에는 방앗간 비용을 2천원이나 냈다. 처음에는 5백원 냈었다.
방앗간 비용은 고춧가루 무게에 따라 다른 것 같다. 정확한 가격 책정 기준은 모르지만 말이다. ㅎㅎㅎ
지금 텃밭은 자라고 있는 무와 배추, 쪽파가 있고 끝물인 피망이 조금 있다. 그리고 대파.....
마땅한 텃밭 채소도 없고 시장도 가지 않아 먹을 것이 없던 차에 대파가 아주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전골, 볶음, 전까지...
텃밭에서 뽑아온 대파는 정말 달다.
대파를 마구 때려 넣어 볶으면 열 채소 넣어 볶은 채소볶음 보다 맛나다.
대파를 이용해서 쪽파처럼 파전을 부쳤다.
작년에는 월동한 대파로 부쳤더니 조금 질겼는데 이번에는 질기지도 않고 달큰한 맛이 나는 게 아주 맛있었다.
게다가 오늘은 별 생각 없이 마당을 서성이다 굴러떨어지는 밤송이를 보고 눈을 크게 뜨고 집 옆 비탈 숲을 보니 알밤들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장화 신고 낫 들고 비탈을 두어 번 오르내리며 양쪽 바지 주머니 가득 밤을 주워 담고
바지춤 부여잡으며 내려오기를 두어 번 하니까 바구니에 제법 밤이 쌓였다.
밤을 줍는 일은 참으로 재밌다. 중독성이 있다고나 할까....
밤송이가 떨어져 밤알들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데
그 반짝이는 것들이 눈에 보이면 마치 무엇에 홀린 것 같이 비탈진 숲길을 마구 헤매게 된다. ㅎㅎㅎ
밤 줍다가 숲에서 길 잃어버리기 딱 좋다.
우리집 바로 옆인데도 한참 밤을 줍다 고개를 드니 여기가 어딘겨? 어디로 내려가지? 살짝 당황...
올라간 곳과 한 스무 걸음 쯤 떨어진 곳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ㅎㅎ
오늘은 이런 저런 일들로 기분이 조금 우울했는데
축대 밑에 올라온 풀들 싹 베고 비탈길 헤매며 알밤을 줍고 나니 기분이 좋아졌다.
아침부터 기분이 안 좋다고 용가리에게 툴툴거리니
나가서 나랑 같이 풀 베고 정리하면 기분 좋아질 거라고 그러더니...용가리 말이 맞았다.
게다가 밤까지 주웠으니 기분이 째진다. ㅋㅋㅋㅋ
서울에서 추석을 보내고 돌아오니 새삼 중얼거리게 된다.
그래도 여기서 살기로 한 건 잘 한 일이야...여기가 좋아....그리고 가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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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을 많이 수확하셨네요. 부럽습니다.
동경은 장마철보다 비가 더 많이 와서 날씨가 나빠요.
어제 처음 땅콩 맛을 보니 환상이었어요 ㅎㅎ
이제 오마이에서 블로그를 닫는다니 huiya님도 어찌하실지....계속 만나뵙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