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는 감자를 심을 생각이 없다가
'한 고랑만 심어도 한 박스 나오니까 심어봐'라고 하신 동네 할머니의 말씀에 혹해서 늦게 감자를 심었었다.
처음 수확한 감자는 주먹만 한 것은 대여섯 개 정도였고 나머지는 자잘했다.
기대만큼 큰 성과(?)는 아니었지만 창고에 쟁여 놓고 먹는 맛이 쏠쏠했다.
그리고 감자는 고구마 옥수수와 더불어 나에게 사랑 받는 3총사 중 하나이기 때문에 엄지 손톱 만한 것도 놓치지 않고 다 먹었다.ㅎㅎ
올해는 3월에 꼭 심어야지...
감자 심을 밭을 만드는데 갑자기 감자 욕심이 생겨 한 고랑을 더 만들었다.
장에 가서 씨감자 5천원어치를 사고 눈을 자르고 며칠 두었다가 재에 굴려 심었다.
여기저기 인터넷으로 검색한 정보를 내가 대충 혼합해서 감자 심기를 했다.
심혈을 기울였으나 결과는 장담할 수 없다.
엄청 신경 써서 심어도 결과가 나쁠 때도 많고 오히려 모르는 상태에서 대충 심었는데 의외로 결과가 좋을 때도 있다.
그저 겸허히 결과를 기다리는 수밖에....
어쨌든 2019년 첫 작물로 감자를 심었다!!
감자 두 고랑을 심고 씨감자가 남아서 구석에 조그맣게 자리를 만들어 남은 감자를 심었다.
용가리는 작년 가을부터 마음을 두었던 호두나무를 사서 심었다.
호두나무를 심으려고 아래 땅 풀도 베고 버드나무도 캐어 내고...나름 관리 모드로 들어갔었다.
처음에는 10개 정도 심으려고 했는데 가격도 만만치 않고 또 나무 심을 자리도 잘 가늠이 되지 않아 일단 6개를 주문했다.
택배로 나무 묘목을 받아 보기는 처음이다.
나무를 주문하기 전 용가리는 나무 심을 자리를 다듬고 땅을 팠다.
손이 가지 않은 땅을 파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다.
억센 풀뿌리와 칡뿌리 나무뿌리 등이 얽혀 있어 삽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
간격을 대충 맞춰 구덩이를 팠는데 내가 보고 자리가 너무 어중간하다고 하니 또 옆 쪽으로 다시 팠다.
그런데 또 지나가던 아저씨가 호두나무는 간격이 너무 멀~다 싶을 정도로 떼어 놓아야 한다고 10미터는 되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는
또 다시 팠다.
인터넷에는 6미터 정도면 된다고 했는데 또 10미터라는 말을 들으니 찝찝해서 다시 판 것이다.
나무 6개 심는데 며칠 동안 구덩이만 20개 쯤 판 것 같다. 한 마디로 개고생 ㅋㅋㅋㅋ
나무는 그 자리에서 뿌리 내리고 쭉 커가는 것이기 때문에 처음 자리 잡는 것이 참으로 힘들었다.
물이 많아도 안 되고 너무 길 쪽으로 가도 안 되고 너무 한 가운데도 안 되고......
우여곡절 끝에 묘목이 오고 나무를 심었다.
나무를 심을 때 갑자기 우박이 내리고 바람이 불고 난리도 아니었다.
용가리는 자면서도 호두나무를 걱정했다.
사실 용가리는 텃밭 작물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내가 씨를 뿌리고 모종을 심고 싹이 나고 자라는 것을 애가 타게 바라보며 걱정할 때도, 고라니의 습격으로 텃밭이 엉망이 되어 속상해 할 때도
용가리는 나만큼 속상해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호두나무는 용가리 소관이다.
'이제부터 매일마다 호두나무에게 가서 책도 읽어주고 음악도 들려주고 이야기도 해 주고 그래야 하는거야~알았지?'
내가 용가리에게 말했다.ㅋㅋ
호두 열매를 거두어 말리는 일도 모두 용가리가 하기로 했다.
용가리 환갑 정도에 아마도 호두가 달리지 않을까 싶다.ㅎㅎ
감자는 심었지만 이제는 씨 뿌리고 모종 심을 밭을 만들어야 한다.
엊그제 상추와 잎채소 씨 뿌릴 곳을 만들고 퇴비를 섞었다.
역시 삽질은 힘들고 파도 파도 돌은 계속 나온다...ㅠㅠ
풀 뽑고 땅 파서 뒤집고 퇴비 놓고 쇠스랑으로 각 잡고...
또 누마루 문 창호지 새로 바르고 이불 빨래도 해야 한다.
그냥 이불 빨래가 아니라 이불 호청을 뜯어서 빨고 이불 속은 햇볕에 널고 다시 이불 호청을 꿰매야 하는 고난도의 작업이다.
게다가 날씨도 받쳐 주어야 하기 때문에 날도 잘 잡아야 한다.
또 4월부터는 고사리 시즌이다. 고사리 끊고 삶아서 말리고...
손바닥 만한 고사리 밭이지만 양쪽 어머니들이 너무 좋아하셔서 안 할 수가 없다.
나야 그저 재미로 즐겁게 선택해서 하는 일이지만
옛날 꽃피는 춘삼월 집나간 아녀자들은 봄바람 때문이 아니라 봄에 일이 많아서 도망간 것이 틀림 없다.
지금보다 백배는 많았을 일이 얼마나 힘들고 고됐을까....그 노동에서 헤어날 수 없으니 도망치는 수밖에....
씨 뿌릴 준비를 마친 잘 만들어진 밭이랑은 참 이쁘다.
이번에 새로 장만한 호미. 철물점 할아버지가 권해주신 호미다. 3천 원짜리 중국것은 못쓴다며 6천원 국산을 권하셨다.
주시기 전에는 날도 갈아 주셨다.그립감도 좋고 땅에 박고 한 번 훑으면 대여섯개의 풀들이 딸려 나온다. 완전 맘에 든다. 짱!!
산골의 생활은 겨울을 대비하기 위한 준비로 나머지 계절을 보낸다.
지금부터 혹독한 겨울을 준비하는 기나긴 과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산골에서의 삶이 그렇게 반복된다는 것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
도시에서 반복되는 싸이클과는 참으로 결이 다르다.
그래서 지치지 않을 수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오히려 더 설렌다.
그래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