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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중진담

생일상

by jebi1009 2019. 5. 28.

사람의 습관은 무서운 것이다.

어릴 때부터 엄마는 항상 생일이면 팥을 넣은 찰밥을 해 주었다.

그래서 용가리나 딸아이 생일에는 찰밥을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마구 든다.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경우에 따라, 즉 내 마음이 내킬 때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통과한 적도 있다.

5월 22일이 용가리 생일이다.

미역국과 계란말이를 해 주었었다.

미역국은 생일의 상징이고 계란말이는 용가리 최애반찬.

나 역시 계란말이만큼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음식은 없다고 생각하는 바다.

밥은 찰밥을 할 때도 있었지만 작년에는 그냥 쌀밥을 했다.

그러다가 올해는 생일상에 변화가 있었다.

세상이 진화하여 남부럽지 않은 '미역국라면'이 나왔기 때문이다.

맛도 나쁘지 않다.

특별히 생일이기 때문에 떡국떡도 넣어 주었다. ㅎㅎㅎ

그리고 계란말이는 그냥 계란후라이로 대체되었다.

이제 계란말이는 용가리도 할 수 있는 음식이 되었기 때문에 (지난번에 용가리가 계란 10개 넣어 계란말이를 아주 두툼하게 했는데 무지 맛있었다) 굳이 잘난척하며 해 줄 필요가 없어졌다.

사실...이런 저런 이유를 말했지만 생일상이 변화한 이유는 그저 귀찮기 때문임을 고백한다.

마음이 내키지 않은 경우에 속하므로 그렇게 했다.

그래도 읍내에 나가서 케잌은 사 왔다.

둘 다 귀찮아서 읍내에 나가지도 않으려 했으나 그래도 그러면 안 된다고 (사실 케잌은 먹고 싶었다 ㅋㅋ) 으쌰으쌰 해서 읍내로 갔다.



올해 용가리의 생일상




간단하게 지나간 생일이지만 멀리 있다는 이유로 마음 써 주는 선물이 있어 마음은 따뜻했다.

80 넘은 우리 엄마는 생일을 꼭 챙기신다.

내 생일 아침에는 장문의 카톡을 날리시고 통장에 돈을 조금 보냈으니 박서방과 맛있는 것 사 먹으라고 하신다.

사위의 생일도 예외는 아니다.

올해는 사위 박서방에게 직접 카톡을 날렸다.

그리고 나에게는 박서방 미역국에 찰밥 꼭 해 주고 저녁에는 맛있는 것 사 먹으라고 통장에 돈을 조금 보내셨단다.

이번에는 택배도 왔다.

상자 안의 물건을 보고는 웃음이 났다.

특별히 남대문 시장까지 가서 샀다는 일모자(지난번 서울에서 봤더니 내 얼굴이 까매졌다며 남대문 시장까지 가셨단다)

비타민, 유산균, 팬티, 깻잎장아찌, 달달한 일본과자(산골에서 그런 것 못 사먹는다며) ㅎㅎㅎㅎ





딸아이의 선물도 왔다.

용가리는 은근 고집있어서 옷 사 입는 것이 나랑 잘 안 맞는다.

그래도 딸아이가 골라주는 옷은 꽤 잘 입는 편이다.

요긴하게 입을 티셔츠....ㅎㅎ




떨어져 있어 그런가 딸아이가 우리에게 마음 쓰는 것을 보면 참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급하게 전화를 걸어와 별 일 없냐고 묻는다.

이상한 꿈을 꾸었으니 각별히 조심하고 집안에 있으라고 말하기도 한다.

여러번 부재중 통화 후에 전화가 연결되면 벌컥 화를 내기도 한다.

갑자기 멧돼지가 공격하거나 절벽에서 떨어졌을까봐 걱정했단다.

그럴 때면 너나 조심하라고 당부하고 쿨한 척 전화를 끊지만 그런 전화를 받으면 마음이 간질간질하다.



마당에는 작약이 한창이다.






툇마루에 앉아 지리산 천왕봉 바라보며 하염없는 생각에 잠긴다.

이렇게....이렇게 사는구나....이렇게 늙어가는구나....편안하게....

나이 먹어 서로의 생일날 미역국라면 끓여주면서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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