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나 감자나 다 감자라고 불렀으나 하지에 캔다고 해서 하지감자라고 부르니 하지 즈음해서 감자를 캐야 할 것이다.
하지 지나고 조금 더 감자를 키워보고도 싶었으니 올해 농사는 완전 망해서 감자도 빨리 정리하고 싶었다.
일명 구황작물이라 불리는 감자, 고구마, 옥수수 등등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다.
고구마도 심고 싶었으나 멧돼지가 온다고도 하고, 고구마 저장이 너무 어려워 감자만 심었다.
고구마는 상전이다. 어찌나 쉽게 상하는지....방구들에 함께 끼고 살아야 할 정도다.
반면 감자는 오래 되면 싹이 나기는 하지만 수월하게 놓고 먹기 좋다.
옥수수는 오수숫대를 처리하기가 힘들어서 한 해 심고는 안 심고 있다.
땅속에 결과물을 숨기고 있는 작물은 수확하기까지 궁금증(?)을 유발한다.
작물이 달렸는지, 얼마만큼 컸는지, 혹 썩지는 않았는지, 벌레가 마구 먹지는 않았는지...
너무 일찍 꺼내도 안 되고 너무 늦게 꺼내도 안 되는 것이 땅속에 있는 작물들이다.
땅속에서 꺼내는 것 중에 땅콩과 감자를 심어 봤는데 수확 날짜를 결정하기까지 확신이 없다.
또 날씨도 생각해야 한다.
비가 왔다면 땅이 조금 마른 다음에 캐야 하고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있으면 그전에 캐야 한다.
땅에서 꺼낸 다음에는 말려야 하는 일도 있으니 이래저래 날씨 눈치도 봐야 하고 땅 위에 있는 잎 상태도 살펴야 하니 쉽게 날을 잡을 수가 없다.
보통 잎들이 시들시들해지면 상태를 살피기에 들어간다.
그러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확 뽑아버리기도...^^;;
올해 감자 수확은 그저 그렇다. 그런데 예년과 달리 벌레 먹은 것이 많다. 올해는 진짜 벌레가 난리도 아니다.
5천 원 씨감자 사서 심었으니 노동생산성이 있는 것인가?
강원도지사가 팔았던 감자가 10킬로에 5천 원이었는데 이 감자는 딱 봐도 10킬로는 안 될 것 같다.
밭 갈고 퇴비 주고 씨감자 심고 북 주고 순도 뽑아 주고.... 가물 때는 이틀에 한 번 물 주고....
용가리는 항상 그런다. 그냥 사 먹으라고...니가 그렇게 종종거리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고... 올해는 심지 말라고...
말은 그러면서도 같이 밭도 갈고 퇴비도 주고 고춧대도 박고 오이 줄도 만들어 준다.
올 텃밭 농사는 완전 망했다.
텃밭 농사하면서 모종 원가 생각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고추와 토마토를 망했으니...ㅠㅠ
지금까지 고추나 토마토가 하나도 달리지 않았다. 꽃도 피지 않았다.
처음 모종 상태에서 꽃이 마구 피고 심지어 작은 열매들도 달려 다 따주었더니 지금은 몸체도 별로 커지지 않고 열매도 하나 없다.
지금쯤이면 고추가 주렁주렁 달려 비가 오면 쓰러져야 할 판인데 고추 하나 달리지 않았다.
고추나 토마토는 대충 심어 놓아도 무지 잘 자라는 작물이었다.
어찌나 생명력이 좋은지 세심히 살피지 않아도 엄청나게 잘 자라고 열매도 주렁주렁 달렸었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그나마 오이는 그럭저럭 잘 자라고 있고 호박도 그럭저럭이었는데 오늘....ㅠㅠ
호박은 조선호박 3개와 애호박 3개를 심었었는데 애호박 2개는 이유도 모른 채 꺾이고 시들어서 초반에 사라졌다.
남은 호박은 그런대로 잘 자라서 호박 두어 개를 키우고 있었는데 오늘 눈여겨본 호박이 비 온 뒤 확 커졌을까 살피러 갔더니 호박 심은 곳이 다 파헤쳐져 있었다.
옆에 있는 뽕나무 가지는 마구 부러져 있고...
멧돼지가 왔는지 극성맞은 고라니의 짓인지 모르겠다.
용가리는 멧돼지가 왔다면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란다. 완저 굴삭기로 밀어 버린 것처럼 다 휘저어 놓는다고...
어쨌든 내가 눈독 들이던 호박들도 다 떨어져 나가고 호박 줄기는 다 끊어지고 뿌리도 드러났다. ㅠㅠ
내가 이러려고 텃밭을 했나 자괴감이 든다...
그래도 감자를 수확했으니 감자전!!
인생 뭐 있냐..땀 흘리고 막걸리 한 잔 먹으면 망한 농사도 다 술술 넘어가는 거지 ㅋㅋㅋ
작년에는 고라니가 상추까지 뜯어 먹어 먹을 것이 없었는데 올해는 철통 같은 한냉사 수비에 상추는 건졌다.
그리고 산딸기는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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