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밭농사는 비닐멀칭을 한다.
까만 비닐을 밭 이랑에 씌우는 것이다.
텃밭을 하면서도 까만 비닐을 씌우기도 하는데 나는 잡초 때문에 그렇다고만 생각했다.
까짓 거 그냥 뽑지 뭐... 하면서 비닐은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일단 마당에 까만 비닐이 보이는 것이 그냥 싫다. 흙과 비닐이 섞여 있는 모습이 그냥 싫은 것이다.
그런데 잡초 때문만은 아니었다.
비닐을 씌우면 땅 표면의 온도 조절도 되고 수분도 유지된다. 또 땅의 오염도 방지되고 해충의 피해도 막아주며 흙이 흘러내리는 것도 막아 준다고 한다.
우리 텃밭의 모든 작물들은 늦된다.
자라는 속도도 늦고 열매도 늦게 달리고 크기도 작다.
올해는 날씨와 기온이 좀 이상해서 모든 작물들이 일찍 꽃이 피고 자라지도 않아 포기하고 있기는 했지만 지난 몇 년 간의 상태를 종합해 보면 그렇다.
짙 녹색의 고춧대가 팍팍 올라가는 마을 농가의 고추와 비교하면 우리 집 고춧대는 여리한 연두색이다. 게다가 열매도 늦게 달리고 빨갛게 되는 것도 늦다.
보통 다른 집 고추를 두어 번 땄을 때 이제 우리집 고추는 빨갛게 되기 시작한다.
다른 집 고추 대여섯 번 수확할 동안 우리집은 두 번 정도밖에 따지 못한다.
처음에는 퇴비를 부족하게 주거나 비료 같은 것을 안 줘서... 즉 땅에 영양분을 많이 주지 못해서 그렇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비닐을 씌우지 않아 그런 이유도 크다는 것이다.
비닐을 씌우면 땅이 수분과 온도를 유지하기 때문에 성장도 빠르고 열매가 익는 정도도 빠르다는 것이다.
나는 처음 밭 만들 때 퇴비를 주는 것이 전부이고 나머지는 그저 풀 열심히 뽑아 주고 물 열심히 주는 것밖에 없다.
나름 속태워가며 애지중지 키우지만 항상 늦되고 열매도 작고 양도 적다.
그래도 나름 만족하고 그래도 이게 어디냐... 하면서 멀쩡하게 잘생긴 열매가 하나라도 나오면 뛸 듯이 기뻐하며 좋아했다. ㅎㅎ
그런데 벌레는 참 문제였다.
처음에는 벌레 때문에 문제를 느끼지 못했다.
아무것도 모르고(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처음 맨 땅에 씨 뿌리고 모종 심을 때는 그럭저럭 자라는 것 같고 그저 신기한 마음과 대견한 마음만 있었었다.
그런데 해가 거듭할수록 벌레들의 극성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잎채소(배추, 청경채, 열무 등 하여간 잎을 먹는 채소)는 상추 빼고는 자라기도 전에 벌레가 다 먹어 치운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한냉사라는 모기장 같은 것을 쳤다.
처음에는 벌레 없이 잘 자라서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뻤다. 한냉사만 치면 만사 오케이인줄 알았다.
그런데 그것도 아니었다. 한냉사를 쳐도 여전히 벌레는 있었다. 물론 안 하는 것보다야 덜 하지만 그래도 벌레는 여전히 잎을 갉아먹었다. 해마다 차이는 있지만 말이다.... 어떤 해는 벌레 피해가 거의 없기도 하고 어떤 해는 한냉사를 했는데도 엄청나게 먹히기도 하고...
그러다 생각을 해 보니 땅 속에서 벌레들이 자라나는 것 같았다.
땅 속에서 자라는 벌레들은 한냉사를 쳐도 막을 수 없는 것 아닌가...
엊그제 드디어 무, 배추 심을 밭을 갈았다.
폭우 뒤에 폭염이 계속되어 무, 배추 심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읍내 장 보러 가려고 보름 만에 마을로 내려가다 보니 마을 밭들은 이미 잘 만들어 비닐 멀칭까지 끝마치고 있었다.
배추 모종은 아직 심지 않았지만 무는 씨를 넣지 않았을까...
보통 광복절 지나면 밭 갈기 시작해서 20일 쯤 무 심고 8월 말쯤 배추 모종을 심었었다.
그런데 올해는 날씨가...무 배추 심을 생각이 안 나게 하는 날씨였다.ㅠㅠ
더 미루지 않고 밭을 갈기 시작했다.
오후 4시 쯤 나가서 땅 파고 퇴비 주고...
땅이 돌덩이처럼 딱딱해서 물을 좀 뿌리고 삽질을 했다.
역시 삽질이 힘든 일 갑이다. 바로 손에 물집이 잡혔다.
그렇게 이틀 고생하고 여섯 이랑을 만들었다.
퇴비 뿌려 만든 밭을 뿌듯하게 보는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나비들 수십 마리가 밭이랑 위에 앉아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그것도 바로 어제 만들어 놓은 밭이랑 위에서만 말이다. 그 전날 만들었던 이랑에는 별로 없고 어제 만든 이랑에만 엄청 많다.
전날 만들었던 이랑에도 나비가 왔었지만 못 본 것은 아닐까?
상추와 감자를 심었던 곳인데 밭을 새로 갈아 놓기 전에는 나비가 앉지 않았었다. 참 신기하다 냄새 맡고 오나?
예전에는 그저 어머..나비들 좀 봐... 이쁘다... 이랬지만 지금은 좀 찜찜했다.
재네들이 왜 왔지? 혹시 알을 낳으러 왔나?
나비를 보니 배추벌레가 생각나면서 찝찝한 것이다.
나비가 땅에다 알을 낳는가? 보통 잎사귀에다 낳지 않나? 그래도 찝찝하니 일단 이랑을 덮기로 했다.
덮을 것이 마땅치 않았지만 어차피 한냉사를 칠 거니까 한냉사로 덮었다.
한냉사는 구멍이 뚫려 완벽하지는 않지만 아쉬운대로....
모종을 심고 바로 한냉사를 쳐도 배추 속에 애벌레가 있는 것을 보면 이해가 안 되었다.
나비가 아무리 작아도 한냉사 구멍을 뚫고 들어갈 수는 없을 것 같은데 땅 속으로 나비가 기어가지는 않을 테고 도대체 어떻게 배추에다 알을 낳은 것 일까? 미리 들어가 숨어 있는 것도 아니고... 땅에다 알을 미리 낳아 두었나? 나비가 땅에다 알을 낳을 수 있나? 인터넷 뒤져봐도 땅에다 알을 낳는다는 것은 못 본 것 같다. 아이고 머리야....ㅠㅠ
비닐멀칭이 해충을 어느 정도 차단해 준다는 것이 좀 이해가 되기도 한다. 수분이나 온도 유지로 작물이 더 잘 자라고 땅이 딱딱해지는 것도 막아주고.....
비닐의 효과가 단지 잡초만 억제하는 것이 아니었구나...비닐에 대한 유혹을 느낀다.
그렇다고 비닐을 씌울 것이냐....고민 고민....
아직까지는 그러고 싶지는 않다.
그냥 땅이랑 비닐이랑 섞이는 게 싫다.
땀 엄청 흘리고 샤워한 후 마시는 맥주 한 잔에서 무한한 행복감을 느낀다.
삽질로 물집 잡힌 손과 예초기 사용으로 덜덜 떨리는 손이 건배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