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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풍농월

비닐

by jebi1009 2020. 8. 26.

대부분의 밭농사는 비닐멀칭을 한다.

까만 비닐을 밭 이랑에 씌우는 것이다.

텃밭을 하면서도 까만 비닐을 씌우기도 하는데 나는 잡초 때문에 그렇다고만 생각했다.

까짓 거 그냥 뽑지 뭐... 하면서 비닐은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일단 마당에 까만 비닐이 보이는 것이 그냥 싫다. 흙과 비닐이 섞여 있는 모습이 그냥 싫은 것이다.

그런데 잡초 때문만은 아니었다.

비닐을 씌우면 땅 표면의 온도 조절도 되고 수분도 유지된다. 또 땅의 오염도 방지되고 해충의 피해도 막아주며 흙이 흘러내리는 것도 막아 준다고 한다.

 

우리 텃밭의 모든 작물들은 늦된다.

자라는 속도도 늦고 열매도 늦게 달리고 크기도 작다.

올해는 날씨와 기온이 좀 이상해서 모든 작물들이 일찍 꽃이 피고 자라지도 않아 포기하고 있기는 했지만 지난 몇 년 간의 상태를 종합해 보면 그렇다.

짙 녹색의 고춧대가 팍팍 올라가는 마을 농가의 고추와 비교하면 우리 집 고춧대는 여리한 연두색이다. 게다가 열매도 늦게 달리고 빨갛게 되는 것도 늦다.

보통 다른 집 고추를 두어 번 땄을 때 이제 우리집 고추는 빨갛게 되기 시작한다.

다른 집 고추 대여섯 번 수확할 동안 우리집은 두 번 정도밖에 따지 못한다.

 

 

첫고추를 요만큼 땄다. 올해는 방앗간 가져갈 분량도 안 나올지 모르겠다. ㅠ

처음에는 퇴비를 부족하게 주거나 비료 같은 것을 안 줘서... 즉 땅에 영양분을 많이 주지 못해서 그렇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비닐을 씌우지 않아 그런 이유도 크다는 것이다.

비닐을 씌우면 땅이 수분과 온도를 유지하기 때문에 성장도 빠르고 열매가 익는 정도도 빠르다는 것이다.

나는 처음 밭 만들 때 퇴비를 주는 것이 전부이고 나머지는 그저 풀 열심히 뽑아 주고 물 열심히 주는 것밖에 없다.

나름 속태워가며 애지중지 키우지만 항상 늦되고 열매도 작고 양도 적다.

그래도 나름 만족하고 그래도 이게 어디냐... 하면서 멀쩡하게 잘생긴 열매가 하나라도 나오면 뛸 듯이 기뻐하며 좋아했다. ㅎㅎ

 

그런데 벌레는 참 문제였다.

처음에는 벌레 때문에 문제를 느끼지 못했다.

아무것도 모르고(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처음 맨 땅에 씨 뿌리고 모종 심을 때는 그럭저럭 자라는 것 같고 그저 신기한 마음과 대견한 마음만 있었었다.

그런데 해가 거듭할수록 벌레들의 극성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잎채소(배추, 청경채, 열무 등 하여간 잎을 먹는 채소)는 상추 빼고는 자라기도 전에 벌레가 다 먹어 치운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한냉사라는 모기장 같은 것을 쳤다.

처음에는 벌레 없이 잘 자라서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뻤다. 한냉사만 치면 만사 오케이인줄 알았다.

그런데 그것도 아니었다. 한냉사를 쳐도 여전히 벌레는 있었다. 물론 안 하는 것보다야 덜 하지만 그래도 벌레는 여전히 잎을 갉아먹었다. 해마다 차이는 있지만 말이다.... 어떤 해는 벌레 피해가 거의 없기도 하고 어떤 해는 한냉사를 했는데도 엄청나게 먹히기도 하고...

그러다 생각을 해 보니 땅 속에서 벌레들이 자라나는 것 같았다.

땅 속에서 자라는 벌레들은 한냉사를 쳐도 막을 수 없는 것 아닌가...

 

엊그제 드디어 무, 배추 심을 밭을 갈았다.

폭우 뒤에 폭염이 계속되어 무, 배추 심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읍내 장 보러 가려고 보름 만에 마을로 내려가다 보니 마을 밭들은 이미 잘 만들어 비닐 멀칭까지 끝마치고 있었다.

배추 모종은 아직 심지 않았지만 무는 씨를 넣지 않았을까...

보통 광복절 지나면 밭 갈기 시작해서 20일 쯤 무 심고 8월 말쯤 배추 모종을 심었었다.

그런데 올해는 날씨가...무 배추 심을 생각이 안 나게 하는 날씨였다.ㅠㅠ

더 미루지 않고 밭을 갈기 시작했다.

오후 4시 쯤 나가서 땅 파고 퇴비 주고...

땅이 돌덩이처럼 딱딱해서 물을 좀 뿌리고 삽질을 했다.

역시 삽질이 힘든 일 갑이다. 바로 손에 물집이 잡혔다.

그렇게 이틀 고생하고 여섯 이랑을 만들었다.

 

첫날 3이랑을 만들었다.
둘쨋날 나머지 이랑을 다 만들었다.

퇴비 뿌려 만든 밭을 뿌듯하게 보는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나비들 수십 마리가 밭이랑 위에 앉아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그것도 바로 어제 만들어 놓은 밭이랑 위에서만 말이다. 그 전날 만들었던 이랑에는 별로 없고 어제 만든 이랑에만 엄청 많다.

전날 만들었던 이랑에도 나비가 왔었지만 못 본 것은 아닐까?

상추와 감자를 심었던 곳인데 밭을 새로 갈아 놓기 전에는 나비가 앉지 않았었다. 참 신기하다 냄새 맡고 오나?

예전에는 그저 어머..나비들 좀 봐... 이쁘다... 이랬지만 지금은 좀 찜찜했다.

재네들이 왜 왔지? 혹시 알을 낳으러 왔나? 

나비를 보니 배추벌레가 생각나면서 찝찝한 것이다.

나비가 땅에다 알을 낳는가? 보통 잎사귀에다 낳지 않나? 그래도 찝찝하니 일단 이랑을 덮기로 했다.

덮을 것이 마땅치 않았지만 어차피 한냉사를 칠 거니까 한냉사로 덮었다.

한냉사는 구멍이 뚫려 완벽하지는 않지만 아쉬운대로....

모종을 심고 바로 한냉사를 쳐도 배추 속에 애벌레가 있는 것을 보면 이해가 안 되었다.

나비가 아무리 작아도 한냉사 구멍을 뚫고 들어갈 수는 없을 것 같은데 땅 속으로 나비가 기어가지는 않을 테고 도대체 어떻게 배추에다 알을 낳은 것 일까? 미리 들어가 숨어 있는 것도 아니고... 땅에다 알을 미리 낳아 두었나? 나비가 땅에다 알을 낳을 수 있나? 인터넷 뒤져봐도 땅에다 알을 낳는다는 것은 못 본 것 같다. 아이고 머리야....ㅠㅠ

 

혹시 나비가 알이라도 낳을까봐 아쉬운대로 한냉사를 덮었다.

 비닐멀칭이 해충을 어느 정도 차단해 준다는 것이 좀 이해가 되기도 한다. 수분이나 온도 유지로 작물이 더 잘 자라고 땅이 딱딱해지는 것도 막아주고.....

비닐의 효과가 단지 잡초만 억제하는 것이 아니었구나...비닐에 대한 유혹을 느낀다.

그렇다고 비닐을 씌울 것이냐....고민 고민....

아직까지는 그러고 싶지는 않다.

그냥 땅이랑 비닐이랑 섞이는 게 싫다.

 

 

하루의 마무리는 역시 맥주!!  맥주 없는 인생은 상상할 수 없다.ㅎㅎ 

땀 엄청 흘리고 샤워한 후 마시는 맥주 한 잔에서 무한한 행복감을 느낀다. 

삽질로 물집 잡힌 손과 예초기 사용으로 덜덜 떨리는 손이 건배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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