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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풍농월

김장

by jebi1009 2020. 11. 16.

한 해를 마감하는 거사가 끝났다.

약 3일 간 사부작사부작 준비해서 김장을 했다.

흔히 김장을 했다 하면 몇 포기를 했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우리집 김장은 몇 포기라고 대답하기가 곤란하다.

배추의 크기가 천차만별이고 게다가 일반적인 배추에 비해 아주 작기 때문이다.

속이 찬 정상적인 배추에 가까운 배추도 서너 개 정도 되지만(그것도 크기는 작은 편) 나머지는 개수를 세기에 쫌 그런 헐랭이와 잔챙이들이다.

그래도 이렇게 수확을 할 수 있게 자라 준 배추들이 대견하기만 하다.

약 5년 간 배추를 심었지만 배추를 잘 수확하는 것은 참 어렵다.

무는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 얼게 되는 것만 조심하면 그럭저럭 먹을 수 있게 되는데 결과를 알 수 없는 것이 배추다.

일단 벌레가 엄청나고 벌레에서 살아 남아 속이 차고 여물어진 배추라도 막판에 어쩌다 보면 진딧물 등등의 공격으로 망칠 수가 있다.

이번 배추도 맘고생이 많았다.

올해는 날씨가 이상해서 모종을 심을 때부터 태풍과 엄청난 폭우로 넉다운이 되더니 그 후로는 비가 오지 않았다.

여태껏 무 배추는 특별히 물을 주지 않아서 배추밭에 물을 줘야 한다는 자각이 없었다.

그러다 아랫집 할아버지네가 많이 자란 배추밭에 물을 주는 것을 보고서야 물을 주게 되었다.

이렇게 비가 안 와서 땅이 말랐는데 왜 물을 줘야 한다는 생각을 못했지?

사실 봄에 심는 작물은 가물게 되면 잎이 시든다던가 티가 팍 나서 물을 주고 싶은 마음이 마구마구 드는데 무 배추는 잎이 시들거나 하지도 않고 그럭저럭 잘 자라는 것 같아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게다가 일교차가 있으니 어느 정도 수분을 흡수하기 때문에 물이 부족할 것이라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그런데 올 가을에는 가뭄이 너무 심했다.

뒤늦게 물을 주기는 했어도 거의 다 자란 배추 잎이 노랗게 되기 시작했다.

딱히 시들게 되는 것도 아니고 겉잎의 색깔이 노랗게 되면서 전체적으로 더 심하게 되었다.

찾아보니 토양이 메마르면 석회를 흡수하지 못해 칼슘이나 마그네슘이 부족해서 배추 잎이 노랗게 되거나 회색으로 마른다고 했다.

초록색 배추잎 색깔이 연해지는 것을 보니 마음이 편치 못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그저 되는 대로 결과를 기다릴 뿐....

 

올해의 MVP배추. 사진으로는 커 보이지만 크기는 사실 손바닥보다 조금 크다. ㅋㅋ
소금물 부어 절여 놓으니 딱 한 다라이 나온다. 우리집 배추는 어지간해서는 기가 죽지 않아 이번에는 소금을 팍팍 뿌렸다.

다행스럽게 배추가 그렇게 이상하게 되지는 않았다.

노란 잎들을 떼내고 나니 속은 멀쩡했고 맛도 좋고 식감도 좋았다.

놀라운 것은 동그랗게 속이 다물어진 배추 속에도 벌레가 있었다. 곧 나방이 되기 직전의 아주 큰... 너무 싫고 징그럽다 ㅠㅠㅠ

한냉사를 덮어도 벌레는 생기니 두어 차례 벌레를 잡아 주었다. 그렇게 단속을 해도 어디서 벌레가 그렇게 생기는지....

 

 

무는 달고 물이 많다. 맛있어~~

날씨가 반짝 추워진 적이 있어 무는 얼른 뽑았다.

전에 무를 얼린 적이 있었기 때문에 며칠 전 미리 뽑아 상자 안에 종이로 싸서 넣었다.

쪽파 뽑아서 다듬고 마늘 사고 갓 조금 사고....

그래서 얼렁뚱땅 김장을 해치웠다.

 

전날 절여 놓은 배추를 씻었다. 막상 씻어 놓고 보니 배추가 청경채같다. ㅋㅋ
김장 세팅 완료!
김치포기가 손가락 세 개 포개 놓은 크기 ㅋㅋㅋ
그나마 없는 배춧속 노란 잎 뜯어서 겉절이 버무렸다.
올 겨울 우리들의 일용할 양식이다. 남은 김칫속은 덤....

 

사실 김장이라고 하기가...김치 두 통이 채 되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도 기분만은 200포기 김장을 한 듯하다.

텃밭은 비워지고 김치가 두 통이나 되고 쌀도 넉넉하고....

 

소고기 뭇국 끓여 갓지은 흰쌀밥에 막 버무린 김장 겉절이 놓고 먹으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말 그대로 이밥에 고깃국 먹는 것 아닌가!

비워진 텃밭을 보며 이제 겨울을 즐길 일만 남았으니 이보다 좋을 수는 없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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