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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풍농월

어느새

by jebi1009 2021. 3. 1.

어느 틈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거부할 수 없는 봄은 오고야 말았다.

2월 한 달 날씨가 난리도 아니었다.

18도 따뜻한 날씨가 한 이틀... 그러다 바람 불고 기온이 뚝 떨어지더니 눈 내리고 얼음 꽁꽁...

햇살이 반짝거려도 어찌나 바람이 불어대는지 밖에 나가서 꼼지락거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예전부터 봄날씨는 사기치는 날씨라고 생각했다.

창문 너머로 보는 날씨는 세상 따뜻하고 포근해 보이지만 막상 나가보면 입술이 파래질 정도로 차갑고 바람도 거칠다.

봄 블라우스를 입고 나갔다가는 하루 종일 덜덜 떨면서 지내기 일수였다.

그리하여 언제 봄 옷을 입어보나 하다가 땀 질질 흘리는 여름이 오면 봄 옷은 다시 옷장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무런 기척도 없이 홍매가 피었다.

이제 슬슬 밖에 나가 겨우내 내버려 두었던 텃밭과 그 주변을 정리해야 하지만 궁둥이가 무거워 집안에서 계속 뭉기적거렸다.

놀기 시작하면 계속 놀고 싶어지니 떨치고 나가야 하는 시점을 이런저런 핑계로 계속 미루고 있었다.

그러다 며칠 전 마당을 서성이다 우연히 매화를 보게 되었다.

생각지도 못했다....세상 황량한 풍경 속에서 매화는 열심히 꽃을 피우고 있었다.

이곳은 지대가 높아 아직도 주변은 겨울의 황량한 모습 그대로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매번 같은 현상을 보면서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구 보라고, 누구에게 뽐내려고 혹은 사랑받으려고 꽃을 피우지 않는다. 그저 본분에 충실하는 모습.

그 모습이 정말 아름답다.

그리고 살펴보니 제법 잡초도 많이 올라오고 작년 가을 남겨둔 쪽파도 다시 파릇파릇 올라왔다.

완전 죽은 것처럼 다 초토화되었었는데 참 신기하기도 하다. 

 

 

오늘은 3월이 시작되는 날.

2월 달력을 떼어냈다.

하루 종일 비가 촉촉이 내린다.

 

 

역시 세상은 억지로 되는 것이 없다.

머리로는 밖에 나가서 일해야지... 하지만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 뭉기적대고 있었는데

이제 마음이 동한다.

호미 들고 장화 신고 밖으로 나갈 마음이 말이다.

자연이 시키는대로 하면 될 것 같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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