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痛飮大快
  • 통음대쾌
음풍농월

이불 빨래(feat. 달맞이꽃)

by jebi1009 2021. 6. 13.

간청재 구들방 침구인 요와 이불.

결혼할 때 엄마가 해 준 원앙금침을 결혼하고 한 번도 사용하지 않다가 간청재 이사 와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요는 엄청 두껍고 길다.(용가리 키가 그리 크지도 않은데 왜 이렇게 길게 했을까??)

청소할 때마다 침구 정리가 엄청 힘들다.

볕이 좋은 날은 밖에 내놓고 효자손으로 팡팡 때리고 그렇지 못한 날은 둘이서 잡고 턴다.

그런데 그 두꺼운 요가 무겁기도 하고 손에 잘 잡히지도 않아 둘이서 제대로 털기도 힘들다.

이불은 그나마 나은 편이라 둘이 잡고 털기도 하고 볕이 좋으면 밖에 널어놓기도 한다.

요와 이불을 털 때마다 용가리와 나는 '이것이 우리의 업보인가... 이거 털다가 죽겠다...'

사실 나이가 더 먹게 되면 이 침구들을 이용하기에는 힘들 것 같다.

평소 관리도 힘들지만 이불 홑청 뜯어서 빨고 새로 꿰매고 하려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날씨와 기타 등등의 스케줄을 감안하여 날짜를 잡아야 한다.

해가 쨍쨍한 날 아침부터 요와 이불 홑청을 뜯고 알맹이는 밖에 널어 일광욕시키고,

뜯어낸 홑청들은 빨아 널어 살짝 말려서 다림질하고 꿰매고....

부지런을 떨어야 하루에 마칠 수 있다.

처음에는 조금 힘들지만 나름 새로운 작업이라 흥미롭기도 했다.

그런데 해가 거듭할수록 힘에 부친다.

엄마는 요를 이불집에 가져가서 좀 얇고 작게 만들고 이불 홑청도 지퍼를 달아 쓰면 된다고 했지만

이 산골에서 그 뚱뚱한 요를 짊어지고 어디로 간단 말인가...

읍내 이불집이 있기는 하지만 그곳에서 새롭게 만든 요가 영 내 맘에 들 것 같지도 않고 또 그 비용도 꽤 들 것 같다.

그렇게 하느니 간단하고 세련된, 내 맘에 드는 침구를 구입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구들방에 어울리는 침구를 구입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그럼 이 원앙금침을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ㅠㅠ

폐기물 딱지 붙여서 쓰레기 수거장에 가져다 놓을 수밖에 없는데 아직은 그럴 수는 없다.

이불이 너무 곱다...ㅠㅠ

그렇다고 다락에 보관한다? 

그렇게 올라간 이불은 내가 죽기 전에는 다시 내려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침구를 구입하려면 지금 요와 이불을 버리는 것이 정답인 것이다.

아..... 아직 기운이 남았으므로 사용할 수 있을 때까지 쓰는 수밖에 없다. ㅠㅠ

좋은 방법이 없을까? 했더니 용가리 하는 말이 이불을 빨지 않고 계속 쓰면 된단다.

하나도 더럽지도 않은데 왜 빠는지 모르겠단다... 아이고~~ㅠ

이번에는 내가 미쳤는지 요 홑청을 삶기까지 했다.

이왕 빠는 것 하얗게 삶아보자.... 다시는 이런 결심을 하지 말아야겠다.ㅠ

 

 

이렇게 이불 빨래하고 호청 꿰매고 하다 보니 해가 다 기울었다.

이불 꿰매다 마루 문으로 마당을 보니 달맞이 꽃이 새삼 예쁘다.

요즘은 마당의 화사한 분위기를 담당하는 아이가 요 달맞이꽃이다.

그런데 이름은 달맞이인데 해가 쨍쨍한 낮에는 활짝 피고 해가 뉘엿뉘엿해지면 꽃이 오므라든다.

달이 뜨는 밤에 활짝 피어야 이름이랑 맞는 거 아닌가?

 

활짝 피어 있던 꽃이 해가 뉘엿해질 무렵 이렇게 입을 다문다.

 

'음풍농월'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숙생  (0) 2021.06.27
가죽나무꽃  (0) 2021.06.24
오디잼  (0) 2021.06.12
고라니의 만행  (0) 2021.06.10
띵띵이와 분홍이  (0) 2021.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