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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풀이

가정의 달

by jebi1009 2022. 5. 9.

겸사겸사 서울에 다녀왔다.

코로나 시국에 명절과 각종 기념일을 제끼고 지내니 독거노인 엄마 얼굴도 봐야 했고, 아빠 납골당에도 다녀오고...

5월 첫 주는 휴일에 복잡할 것 같아 미리 다녀왔다.

4월 29일이 결혼기념일이니 맛있는 케잌 먹으러 서울 가자...

서울 가는 길에 아빠 납골당에 들렀는데 고맙게도 딸아이가 시간을 내서 내려와 납골당에서 조우했다.

딸아이와 이렇게 우리 식구만 아빠에게 가 보고 싶었다.

아빠에게 가는 것은 대부분 엄마를 포함해서 다른 식구들도 함께 가기 때문에 따로 가게 되지 않았다.

그리고 딸아이와 떨어져 살다 보니 시간 내서 오라는 것도 쉽지 않고 말이다.

살다 보니 손녀딸이 할아버지 납골당을 찾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시간이 지나다 보니 이렇게 딸아이와 가는 것이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다음에 가면 되지... 또 기회가 있겠지... 하던 일이 그냥 10년 20년 마구 지나가는 것을 보면

마음먹고 하지 않으면 새털같이 많은 날들도 다 사라지게 될 것 같다.

딸아이와 아빠 앞에서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다. 물론 아빠는 말이 없었지만 말이다...

 

엄마 집에서 저녁은 중국집 배달이다.

쿠폰 20개면 고추잡채와 마파두부 중 먹을 수 있는데 아쉽게도 이번에 모자라서 다음을 기약했다.

간청재에서는 중국집 배달 음식을 먹을 수 없으니 엄마 집에서 편안하게 먹고 싶었다.

그렇게 엄마 보러 갈 때 두어 번 시켜 먹으니 쿠폰이 생겼다.

언니네나 오빠네가 와도 절대 쿠폰 쓰면 안 된다고 다짐받았다.

엄마는 항상 더 좋은 것, 맛난 것 해 주고 싶어 하셨지만 중국집 배달 음식은 우리에게 별미다.

게다가 엄마가 힘들지도 않고, 또 엄마도 혼자서 중국음식 배달시켜 드시게 되지는 않으니 내심 좋아하시는 듯...ㅎㅎ

중국음식 메뉴에는 항상 양장피가 일등이다.

딸아이는 탕수육.

어린 시절 중국집 음식 배달시킬 때 아빠는 언제나 양장피를 시켰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 자식들 생각해서 탕수육을 시켜 줄 만도 한데 탕수육 먹어본 기억이 별로 없다.

그 대신 잡탕밥을 시켜 주셨다.

그리고 짬뽕이나 짜장면...

어릴 때 양장피가 무슨 맛이 있겠는가... 게다가 잡탕밥이란 ㅠㅠ

양장피 겨자도 듬뿍 쳐서 먹으니 우리는 달걀지단이나 새우 몇 개 집어 먹는 정도였다.

그렇게 무슨 맛인지도 몰랐던 양장피가 이제는 중국집 메뉴 일등이다.

나이 먹고 술 좀 먹으니 양장피나 잡탕밥이 술안주로 딱이란 것을 알았다.

그래도 그렇지 어린 자식들 입맛도 좀 생각해 주면 안 되남?ㅠ

그런데 아직까지도 의문인 것은 양장피 겨자 소스는 왜 그렇게 많이 주는 것일까??

밥공기 하나 정도 주는데 그 양은 서울이나 지방이나 고급 요릿집이나 동네 배달집이나 똑같다.

정말 그만큼 겨자 소스를 다 먹는 사람이 있을까? 

작년 할머니 집 같이 같던 딸아이가 양장피에 겨자 소스를 몽땅 들이부었다.

양장피를 처음 먹어봐서 그 소스가 탕수육 소스 정도 되는 줄 알았단다.

살짝 물 부어서 씻어 먹었다.ㅠㅠ

 

'할머니 등 긁어 줘~'

배부르게 먹고 마시고 쿠폰 고이 모아 넣어 두고는 할머니 무릎에 찰싹 누워 말한다.

나는 엄마에게 저렇게 살갑게 굴지 못한다.

물론 어린 시절 할머니가 돌봐 주기도 했지만 나와는 다른 면이 있다.

엄마는 항상 내가 차갑다고 말한다. 다른 집 딸들처럼 살갑게 굴지 않는다고...

딸아이가 고맙다.

 

엄마의 좌탁에 보지 못한 에세이집이 있다.

엄마가 오랜만에 서점에서 책을 사셨단다.

좋은 말 많은 분홍색 커버의 에세이집과 윤동주 시집을 사셨단다.

윤동주 시집 새 책을 갖고 싶으셨단다.

팔순 넘은 할머니가 서점에서 책을 고르고 돋보기 끼고 책을 읽는 모습을 생각하니 급 반성 모드.

서점 가서 새 책 냄새 맡으며 둘러보던 때가 언제인가...

필요한 책은 인터넷으로 주문하고 주문한 책도 잘 읽지 않는다. 집중력과 시력 저하..ㅠㅠ

엄마에 대한 나의 감정은 복잡할 때도 많지만 이렇게만 계셔 주신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독거노인 우리 엄마 화이팅!!이다.

 

 

결혼 기념 특별식으로 몸 보충을 위한 장어를 먹었다.

대선 이후 정신적 충격이 커서 몸이 많이 축났다.

나이 먹으니 다시 돌아오는데도 시간이 걸린다.ㅠㅠ

오랜만에 장어구이와 술 한잔.

월말 김어준에서 김어준이가 그랬다.

대선 다음날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떨치고 일어났단다.

그래서 친환경 제품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단다.ㅋ

물론 깊게 생각한 것은 아니고 몇 초만에 드는 직관적인 생각이었다고...

앞으로 5년 간 세상은 뒤로 갈 것인데 물살을 거스르며 앞으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

저들은 더 후지고 뒤떨어져 있을 텐데 나는 더 나아져서 그 격차를 많이 벌려 놓는다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 것인가... 하는 생각.

역쉬~ 김어준이는 난 놈이다.

나도 장어 먹고 힘내서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할 텐데....

아직은 어떻게 더 나아져야 할지 모르겠다.

능력은 딸리고 눈은 침침하고 집중력은 떨어지고 속은 더 좁아지는 것 같은데 말이다.ㅠㅠ

달콤한 케잌에 와인으로 진정하자~

 

일부러 찾아간 케잌 맛집. 케잌은 딸아이가 샀다. 장어는 우리가..다음에는 딸이 더 비싼 거 사기를..

용가리와 27년 살았다.

며칠 전 집 뒤 호박 심을 곳 밭 만들며 풀을 뽑고 있는데 지나가시는 호호 할머니가

'날 더운데 각시가 고생하네 신랑한테 풀을 꼭꼭 어찌어찌해 달라고 해..(무슨 말인지 잘 못 알아 들었음) 각시는 들어가고 신랑한테 하라고 해..' 이러신다.

신랑 각시 ㅋㅋㅋ

용가리에게 말했더니 '푸하하하 우리는 중늙은이 전우일 뿐이라고 말씀드리지 그랬어?' 이런다.

이제 이 전장에 누가 홀로 남겨질 것인가 생각하는 중늙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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