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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풀이

아치의 노래

by jebi1009 2022. 5. 20.

때때론 양아치라고 불리우기도 하는 그는

하루 종일을 동그란 플라스틱 막대기 위에 앉아

비록 낮은 방바닥 한 구석 좁다란 나의 새장 안에서

울창한 산림과 장엄한 폭포수, 푸르른 창공을 꿈꾼다

 

나는 그가 깊이 잠드는 것을 결코 본 적이 없다

가끔 한 쪽 다리씩 길게 기지개를 켜거나 깜빡 잠을 자는 것 말고는

그는 늘 그 안 막대기 정 가운데에 앉아서 노랠 부르고

또 가끔 깃털을 고르고 부릴 다듬고, 또 물과 모이를 먹는다

 

잉꼬는 거기 창살에 끼워 놓은 밀감 조각처럼 지루하고

나는 그에게 이것이 가장 안전한 네 현실이라고 우기고

나야말로 위험한 너의 충동으로부터 가장 선한 보호자라고 타이르며

그의 똥을 치우고, 물을 갈고, 또 배합사료를 준다

 

아치의 노래는 그의 자유, 태양빛 영혼

그러나 아치의 노래는 새장 주위로만 그저 뱅뱅 돌고...

 

그와 함께 온 그의 친구는 바로 죽고 그는 오래 혼자다

어떤 날 아침엔 그의 털이 장판 바닥에 수북하다

나는 날지마, 날지마, 그건 자학일 뿐이야라고 말한다

너의 이념은 그저 너를 깊이 상처낼 뿐이야라고 말한다

그는 그가 정말 날고픈 하늘을 전혀 본 적이 없지만

가끔 화장실의 폭포수 소리

어쩌다 창 밖 오스트레일리아 초원 굵은 빗소리에 환희의 노래처럼

또는 심음처럼 새장 꼭대기에 매달려 이건 헛된 꿈도 인연도 아니다라고 내게 말한다

그러나 아치의 노래는 새장 주위로만 그저 뱅뱅 돌고..

 

내일 아침도 그는 나와 함께 조간 신문을 보게 될 것이다

내가 아침마다 이렇게 가라앉는 이유를 그도 잘 알 것이다

우린 서로 살가운 아침 인사도 없이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고

가족 누군가 새장 옆에서 제발 담배 좀 피우지 말라고 내게 말할 것이다

 

아치의 노래는 그의 자유, 태양빛 영혼

그러나 아치의 노래는 새장 주위로만 그저 뱅뱅 돌고... 아치의 노래는..

 

 

 

정태춘, 박은옥...고마운 사람들이다.

2년 전 40주년 기념 콘서트에 다녀오고 엊그제 다큐영화를 봤다.

영화에서는 그 콘서트 장면이 많이 나왔다.

콘서트에서는 그렇게 많이 울지는 않았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노래를 듣는 내내 눈물이 흘렀다.

노래 5.18도 분명 아는 노래이고 콘서트에서도 들었었는데 그 노래를 듣고 보는 내내 왜 이리 눈물이 나는지...

생각해 보니 정태춘은 천재가 맞다.

타고나는 천재..

박은옥의 목소리는 첫 소절만 시작해도 가슴이 아린다.

어쩜 저런 목소리가 있을 수 있을까...

두 사람의 삶과 노래와 그 외로움과 가치가 나를 울렸다.

 

다시는

다시는 종로에서 깃발 군중을 기다리지 마라

기자들을 기다리지 마라

비에 젖은 이 거리 위로 사람들이 그저 흘러간다

흐르는 것이 어디 사람뿐이냐

우리들의 한 시대도 거기 묻혀 흘러간다

 

다시는

다시는 시청광장에서 눈물을 흘리지 말자

물대포에 쓰러지지도 말자

절망으로 무너진 가슴들 이제 다시 일어서고 있구나

보라 저 비둘기들 문득 큰 박수 소리로

후여 깃을 치며 다시 날아오른다 하늘 높이                       <92년 장마, 종로에서>

 

다시는 다시는 시청에도 광화문에도 종로에도 서초동에도 나가고 싶지 않은데

왜 그런지 다시 시작될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

정태춘의 귀환이 더 아리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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