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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풀이

왕년에

by jebi1009 2023. 1. 7.

아주 가끔 연주회 하는 꿈을 꾼다.

대학 시절, 또 졸업하고도 얼마 동안 써클 활동을 이어갔다.

지금은 '동아리'라고 하지만 내 시절에는(라떼는) '써클'이라는 말을 썼다.

내가 활동했던 써클은 '취주악부 吹奏樂' 

딱 봐도 일본식 명칭이다. 그만큼 오래된 써클이다. 

지금은 '관현악'이나 '윈드 오케스트라'로 더 많이 부른다.

관악기와 타악기로 구성된 합주단이고 퉁 쳐서 '밴드'라고 부르기도 한다.

취주악에서 대취타를 연상해 취타대로 알고 국악기를 연주하는 써클로 오인받기도 했다.

사실 취타대의 서양악기 버전이 취주악, 콘서트 밴드, 윈드 오케스트라 정도 되겠다.

용가리도 이 써클 출신이다. 트럼펫을 불었다.

3월 신입생 연주회, 5월 축제 연주회, 9월 정기 연주회, 이렇게 1년 3번 연주회를 했고 졸업하고도 재학생 연주회에 참여했고 나중에는 동문 연주팀이 따로 만들어져서 동문 연주회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옛' 활동이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흘러 내가 사용하던 악기는 최종 간청재 다락에 처박히게 되었다.

엊그제 문득 악기에 곰팡이라도 슬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한 번 정리가 필요하다 싶어 다락에서 갖고 내려왔다.

다락에서 내려온 악기는 일단 먼지를 대충 닦고 살펴봤다.

겉에 한 번 더 감싼 케이스에는 곰팡이 비스무레한 것이 있었고 끈도 삭아서 벗겨버렸다.

다행스럽게도 하드 케이스는 멀쩡했고 뚜껑을 열자 생각보다 상태가 괜찮은 악기의 모습이 드러났다.

오~~~ 이게 얼마만이야!!

 

엉망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상태가 좋다.

이 악기는 내가 대학 2학년 때 산 것이다.

그때 당시 언니가 결혼을 했고 결혼식 축의금 정리하는 부모님 옆에 있다가 그냥 한 움큼 쥐고는 

'나 이걸로 악기 살 거야' 이러면서 도망갔다. 그니까 훔쳐갔다고 해야 하나..^^;;

당시 중고 악기로 샀는데도 가격이 꽤 나갔다.

유명하고 알아주는 '셀마'도 같은 가격에 살 수 있었는데(중고) 나는 요놈이 소리가 이뻐서 데려왔다.

같은 브랜드에서도 레벨이 높은 것이었다.

 

지저분한 것들 버리고 리드도 다시 갈무리하고.... 중요한 마우스피스 상태는??

깨끗이 씻고도 찝찝해서 열탕 소독을 하려고 뜨거운 물에 담그는 순간 색이 확 변하는 거다.

재빨리 꺼냈지만 변색이 되었다. ㅠㅠㅠㅠ

검색해 보니 열탕 소독 금물이라고...ㅠㅠ

변색이 되어도 변형은 되지 않은 듯.... 리드 끼고 불어 보니 괜찮은 것 같다.^^;;

하나 새로 장만할까 해서 검색하니 가격이 꽤 나간다. 무슨 영광을 볼 것이라고... 큰돈 쓰지 말자.

'끓는 물에 확 삶아라'라고 옆에서 말했던 용가리를 탓하며 성질을 부렸다. 남 탓하기 왕 ㅎㅎ

 

교본이며 악보며 살펴보니 엣 생각이 솔솔 난다.

색소폰은 악보도 별로 없었고 게다가 클래식 색소폰은 정말 악보가 거의 없었다.

지금이야 인터넷으로 악보도 구하기 쉽지만 예전에는 악보 사러 종로에 나갔고 거기서 원본을 샀다.

당시 마음먹고 구입한 악보가 두 보 있었다.

연주회 악보도 있었고 내가 그린 악보도 있고 교사할 때 동료 교사(피아노)와 학교 축제 때 무대에 섰던 악보도 있었다.

정말 추억은 방울방울....

 

보면대도 멀쩡했고 악보들도 그대로다.
색소폰 스탠드는 내 후배가 선물한 것이다. '**누나에게 사랑을 담아 드립니다. 00가' 괜히 설렌다 ㅋㅋㅋ

 

지금은 소리도 안 날 거야... 용가리에게 말하며 별 기대 없이 악기를 불었는데 의외로 소리가 괜찮았다.

스케일도 잘 돌아가고 악보도 잘 보이고... 감이 살아나는 듯?

야 너 소리 좋다... 용가리가 살짝 감탄 비슷한 것을 했다 ㅎㅎㅎ

내친김에 두어 시간 불었더니 입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어깨도 아프고ㅠ

확인 정리만 하고 다시 다락으로 올려 보내려던 것을 일단은 내려두기로 했다.

추억팔이 실컷 하고 다시 다락으로 올라가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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