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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풍농월

단란한 가족?

by jebi1009 2023. 1. 15.

간청재 뒷마당 장작 지붕 밑에는 단란한 5인? 아니다, 5묘 가족을 볼 수 있다.
꼬물이 3남매(아님 형제 아님 자매-알 수가 없다)와 번잡이, 그리고 그의 아버지로 추정되는 고양이.
아버지로 추정되는 고양이는 꼬물이들이 막 들이닥쳤을 때부터 가끔씩 찾아왔다.
그놈은 덩치도 크고 털은 검은 회색빛에 경계심이 아주 많다.
어찌나 예민한지 얼굴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집 안에서 창문을 통해 뒷모습만 몇 번 봤을 뿐이다.
그놈이 나타나면 어디에 있던지 꼬물이들이 모여들고 서로 코를 부비고 애틋한 모습이다.
번잡이까지 다소곳하게 아는 척을 한다.
꼬물이들 밥그릇에 있는 밥을 먹기도 한다. 그리고는 꼭 주변에 영역표시를 하는 것인지 오줌을 누고 간다.
꼭 내가 풀 뽑을 때 사용하는, 옆에 세워 놓은 망태기에 오줌을 누고 간다. 찝찝...
아니 저 놈은 자식들 보러 오면 먹을 것을 들고 와야지 어째서 먹고 간다냐...
맛난 것 가져와서 자식들에게 줘야 하는 거 아님? 사냥이라도 해서 와야지 안 그러냐?
내가 중얼거리면 용가리는 그런다.
야 수컷이 자식 키우는 거 봤냐?
찾아오기는 왜 찾아오냐?
고양이들의 습성이나 마음이나 생각을 알 수가 없으니 저 가족의 모습을 그저 우리의 시각으로 바라볼 뿐이다.
내가 보는 저 가족의 모습이 완전 다른 의미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신기하기는 하다. 서로 알아보고 다가가고 코를 부비고...

날이 풀려 마당에 쌓였던 눈이 녹자 꼬물이들의 만행(?)이 드러났다.
요놈들이 대충 눈에다 응가를 하고 덮어놓아서 뒷마당 여기저기 똥무더기가 나온다.
이런 이런...ㅠㅠ
게다가 축대 밑 비탈 면에 가을 내내 풀 뽑고 수레국화와 양귀비 꽃씨를 뿌려서 그 싹이 다 돋아 났는데
하필 그곳에다 응가를 하느라 여기저기 파헤쳤다.
비탈면 고루 싹이 나서 손가락 마디만큼 자랐는데 흙이 드러나게 빈 공간이 여기저기 생겨버렸다.
그곳에는 똥이....ㅠㅠ 이놈들!
집 외벽 적삼목을 긁어놓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 말라고 야단치면 어찌나 능청스럽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쳐다보는지....

번잡이는 잠깐씩 오는데 정말 옛날의 번잡이가 아니다.
그렇게 설치고 나대던 번잡이는 온데간데없고 세상 달관한 모습이다.
꼬물이들 밥을 주면 전에는 모두 한 그릇에 머리 박고 먹었는데 이제는 순서대로 먹는다.
한 놈이 밥그릇을 점령하면 먹고 나올 때까지 주변에서 기다린다.
창고 문을 열면 그 앞까지 달려와서 기다리다 내가 창고 문을 나서면 잽싸게 밥그릇 놓인 곳까지 다들 달려간다.
그러다 또 뒤 돌아보고 다시 왔다가 또 달려가고..
그런데 요즘에는 창고까지 왔다가 내가 나오는 낌새를 알아채면 먼저 밥그릇으로 달려가 밥그릇을 선점하고 있다.
특히 까망이가 잘 그런다.
먼저 밥그릇을 차지하는 놈이 먼저 먹는 것 같다.
번잡이도 함께 있을 때가 있는데 그러면 번잡이는 물러난다.
어떨 때는 번잡이가 못 먹는 것 같아 번잡이를 따로 주면 같은 밥인데도 꼬물이들이 모두 번잡이 밥으로 달려든다.
그러면 번잡이는 또 물러난다.
내가 다시 다른 곳에 번잡이 먹으라고 주면 또 꼬물이들이 달려든다.
번잡이는 체념한 듯 다시 밥을 줘도 오지 않고 주저앉아 있다. 내 더러워서 안 먹고 만다.... 이런 표정으로.
가만 보면 극성스럽게 달려드는 놈들은 번잡이에게 얻어맞기도 한다.
번잡이가 나타나면 꼬물이들이 달려드는데 어떤 때는 번잡이가 손으로 밀치기도 한다.
귀찮게 굴어서 그런지 싸다구를 때리기도 한다.^^;;
번잡이가 따로 있다가 가끔 오는 것이 다 이유가 있기도 한 듯...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것인가?
특히 극성스러운 놈은 번투다. 배가 부르게 실컷 먹고도, 자기 앞에 먹을 것이 있어도, 남 밥그릇에 덤빈다.
그리고 엄마 껌딱지는 까망이다. 번투와 꼬짭이는 둘이 따로 다니기도 하는데 까망이는 번잡이를 졸졸 따라다닌다.
그러면 엄마 밥 좀 먹게 할 것이지 그렇게 못 먹게 덤비냐? 그러니까 맞지...
특히 까망이는 번잡이 밥 먹으라고 따로 주면 밥그릇에 지들 밥이 충분히 있는데도 번잡이 못 먹게 파고든다.

또 한 번은 재미있는 모습을 봤는데 정말 맛있는 것은 혼자 있어도 숨어서 먹는다는 것이다.
번투 혼자 누마루 난간에 앉아 있었다.
다들 어디론가 갔는데 번투만 하루종일 안 가고 마루에서 빙빙 돌면서 졸고 있는 것이다.
괜히 혼자만 떨어져 있는 것 같고 왕따 당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측은해서 간식을 줬다.
사료 구매할 때 사은품으로 받은 닭가슴살(?)같은 것인데 양이 적어서 모두들 있을 때는 주지 못한 것이다.
너 오늘 땡잡았다...하면서 댓돌 위에 놓아줬더니 거기서 먹어도 되는데 굳이 마루 밑으로 물고 가는 것이다.
그러더니 옹알옹알? 소리를 내면서 마루밑 깊숙한 곳에서 먹는 것이다.
그렇게 먹는 것은 처음 봤다.
보통은 그냥 댓돌 위에 간식을 주면 거기서 먹는다.
꼬물이들이 다 있을 때는 서로 으르렁대며 머리를 밀어가며 치열하게 먹기 바쁘다.
밥 먹을 때와는 달리 간식은 번잡이도 적극적이다.
경쟁자들도 없이 혼자 먹는데도 숨어서 먹다니... 그게 그렇게 맛있나??

가끔 띵띵이가 나타나면 번잡이 가족과의 대치 상태가 계속된다.
띵띵이는 별 관심 없는 듯 무심하게 앉아 있는데 그 주변으로 꼬물이들이 모여서 띵띵이를 쳐다보고 있다.
험난한 생활을 하는 띵띵이가 오랜만에 오면 영양식이라도 챙겨주고 싶은데 그렇게 하려면 용가리까지 출동해서 띵띵이 밥그릇을 사수해야 한다.
꼬물이들이 극성이라 띵띵이가 물러난다.
띵띵이 많이 먹이고 싶은데 요놈들이 가만 두지 않는다. 그래도 띵띵이는 무덤덤....
밥 먹은 띵띵이는 잠시 쉬었다가 또 어디론가 떠난다.

꼬물이들도 어딘가 아지트가 따로 있는 것 같다.
아침 문을 열고 나가면 어디선가 꼬물이들이 나타난다.
용가리말에 의하면 귀신 같이 알고 오는데 주로 아래서 올라온다고 한다.
길 밑 도랑에 있다가 오는 것인지 아님 그 근처 숲 속에 있다가 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지만 어디선가 나타난다.
한 번은 어디로 가는지 살살 따라가 봤는데 눈치채고는 길가에 주저앉아 가지 않는다.
그래 알았다. 요놈들...
겨울이라 바깥일 하는 경우가 없으니 집 안에서 가끔 꼬물이들이 보이는데 뭘 하나 보면 참 가지가지 한다.
나무에 올라가기도 하고 무언가 발견하면 우르르 달려가는데 그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다.
고양이가 저렇게 빠른 동물이었나 할 정도로 빠르다.
누마루 올라가는 곳에 슬리퍼를 놔두었는데 얼마 전에는 그 슬리퍼에 손도 집어넣고 머리도 집어넣고 난리도 아니다.
받침대로 세워둔 작은 통나무에 가서 발톱을 긁고 넘어뜨리고 우산 꽂아놓으려고 만든 것도 넘어뜨렸다.
우당탕탕... 난리...
또 마당에서 뭘 집어던지며 놀기에 자세히 봤더니 작은 쥐....^^;;
그 쥐는 용가리 말에 의하면 상반신이 없이 마당에서 발견되기도 하고 밥그릇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밥그릇에 뭐가 얼핏 보이면 나는 용가리를 부른다.
벌레 같은 것은 어느 정도 내가 처리할 때도 있지만 이것만은 아직도 못 보겠다..ㅠㅠ

널부러져 잠자고 있는 것을 보면 '이렇게 태평하게 잠자면 이 험한 세상에서 어쩌려고 그러냐...'잔소리를 한다.
전에는 엄청 예민하게 깨어나서 살피고 잽싸게 도망가더니
이제는 눈만 게슴츠레하게 뜨고는' 너냐?' 하는 표정으로 한 번 보고는 다시 잔다.
'야 정신 차려 너네들은 야생고양이잖아. 경계를 늦추면 안 돼. 사람이 제일 무서운 거야.'
이렇게 일장 연설을 해도 '왜요?'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삐딱하게 쳐다본다.
가끔 하늘에 매가 떠다니면 나는 살짝 걱정이 된다.
이 근처 귀촌한 사람들이 달걀 먹으려고 닭을 키우는 경우가 많은데 한 두 마리씩 없어진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많이 커서 좀 괜찮지만 처음 꼬물이들이 들이닥쳤을 때는 걱정했었다.
하기사.. 그때는 엄청나게 잘 숨었지... 축대 바위틈에도 흔적 없이 잘 숨었었다.
지금은 어찌나 능청스러운지...



이 겨울, 꼬물이와 번잡이의 모습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간청재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고양이들이 왔었다.
그때는 '어 고양이다..'이런 정도?
그러다가 자주 오는 고양이가 생겼고 가끔 멸치 같은 것을 줬었고 그러다 밥을 준 것은 동글이 때문이었다.
동글이가 한 계절을 이곳에서 거의 지냈기 때문이다.
제일 처음 소시지를 줬었던 것은 띵띵이다.
서울 다녀올 때 빈 집 마루에 앉아 있었던 것이 띵띵이다.
처음 띵띵이는 지금처럼 험난한 모습이 아니었다.
그래도 신기한 것은 띵띵이가 아직도 아주아주 가끔씩이지만 온다는 것이다.
띵띵이는 우리에게 처음 인연이다. 그래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던지 나타나기만 하면 열일 제치고 꼭 밥을 챙겨준다.

처음 우리집 드나들 때 띵띵이. 이렇게 귀여운 모습이었는데..ㅠㅠ

그러다 번잡이 분홍이가 나타났고 전혀 예상치 못한 번잡이의 꼬물이들이 나타났다.
처음 꼬물이들을 봤을 때는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때 딸아이가 한 말이 맞았다. '누가 엄마더러 키우래? '
꼬물이들은 번잡이가 키웠고 지금은 알아서들 잘 산다.
나는 그저 번잡이 밥그릇을 채워줬고 지금도 누구의 밥그릇이 되었건 그 빈 그릇을 채울 뿐이다.
고양이들은 살고 싶은 대로 살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가고 싶은 대로 간다... 말 그대로 그저 살아갈 뿐이다.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고 계획이 있고 걱정이 있을까... 그것은 나의 의미이고 걱정일 뿐이다.
꼬물이들을 보며 마음이 심란해지면 연관스님이 생각난다.
내가 번잡이와 꼬물이들에 대해서 말하면 스님은 뭐라고 하셨을까?
스님은 이 인연을 어떻게 바라보셨을까?

이곳에서 살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자연의 모든 것은 일부러 관계를 맺을 수도 일부러 관계를 끊을 수도 없다.
나무는 나무대로 고양이는 고양이대로 잡초는 잡초대로 벌레는 벌레대로 자기 할 일을 하는 것이다.
그저 오면 오는 대로 가면 가는 대로....
그 옆에서 나도 역시 그저 바라보면서 그저 느끼는 것일 뿐...

날씨가 풀리면서 비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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