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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풍농월

화엄사

by jebi1009 2023. 3. 8.

 
간청재 마당에 매화가 피기 시작했다.
마당에 내려서면 매화향이 진하다.
우리 집 홍매를 보면서 갑자기 화엄사 홍매는 피었나? 하는 생각이 났다.
화엄사 갔던 때가 언제인가... 꽤 오래되었다.
스님 결재 때 찾아뵙느라 가 보고는 그 후로 가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화엄사에 다녀오자.
산 넘어 다녀오려고 했는데 노고단 가는 길이 3/31일까지 통제다.
용가리는 남원으로 가자고 했지만 내가 산 넘어가자고 했는데... 한 시간 정도 돌아 나와야만 했다. ㅠㅠ
화엄사 홍매가 피기 시작하면 사람들 몰려 들어서 그 나무 옆으로 가지도 못할 터이니 꽃은 많이 보지 못하더라도 어정쩡한 시기에 가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화엄사 근처 들어서니 다음 주부터 홍매 축제를 알리는 현수막이 눈에 들어온다.
잘하면 꽃도 좀 볼 수 있겠다 싶었다. 간청재 마당에도 홍매가 피었으니 말이다...
 

 
화엄사 들어서니 여러 가지 기억들이 스친다.
이게 얼마만이야? 사진을 찾아보니 2013년. 딱 10년 만에 화엄사에 왔다.
그때 스님은 화엄사에서 결재 중이셨고 '머리 깎고 빨래하는 날' 잠시 찾아뵈었다.
기억이 선명한 듯 가물가물... 다른 사찰에 갔을 때와 오버랩되기도 하고...
그때 털신에 지팡이 짚고 나오신 스님이 생각난다. 햇살 따가운 6월 하순에 털신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300살이 훌쩍 넘은 홍매를 찾아가니 아직 꽃망울만 잔뜩 달려 있다.
그 가운데 딱 한 송이가 피었다.
꽃을 피운 것이 신기할 정도로 잎이 없는 홍매 나무의 가지는 세월이 많이 느껴졌다.
꽃이 없어도 잎이 무성할 때는 잘 몰랐는데 매화나무의 휘어진 가지들을 보니 괜히 서글프다.
 

3월 7일, 딱 한 송이가 피었다.
321살이 된 홍매나무

 
각황전 앞 석등이 유난히 이뻐 보였다.
기억을 더듬어 구층암에도 갔다. 
 

구층암

 
화엄사를 나오는데 뭔가 허전했다.
이상하다... 무언가 안 하고 온 것이 있는 것 같았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났다.
아니 뭐야... 사사자 삼층 석탑을 안 보고 왔네..ㅠㅠ
사사자 석등만 보고는 석탑 보러 갈 생각을 못한 것이다. 이럴 수가!!
10년 전 스님이 말씀하셨었다.
'대강 대강 봐야 또 오지.'
그래... 또 오지 뭐...
 
 
 

털신과 지팡이
정신 빠져서 이번에 보지 못하고 온 사사자 삼층 석탑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았던 작은 암자.
석류꽃도 피었었다.

 
2013년 6월 하순이다.
사진을 찾아보며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가니 마음이 촉촉해진다.
스님과 둘러보았던 화엄사 각황전, 석등, 효심이 엄청 묻어나는 사사자 삼층석탑..
스님이 잠시 살고 싶으셨다는, 아무도 살고 있지 않았던  화엄사 안 작은 집에도 들어갔었다. 
연기암에 올라가 섬진강 줄기도 보고
연기암 올라가는 길목에 있는 커피집에서 커피와 팥빙수 먹으며 이야기도 했었다.
그 커피집에 앉아 있으니 산에 가셨던 선방 스님들이 한 분 두 분 내려오고 계셨었다.
 
스님이 떠나시고 한 동안 나는 스님의 부재를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그리고 실감 나지도 않았었다. 그저 스님과 어떤 행사를 함께 치른 느낌이었다.
이제는, 아니 이제야 그 부재는 그리움으로 증명되는 것 같다.
이 그리움의 정체가 스님의 부재를 증명하는 것이다.
스님 영결식 때 박남준 시인이 추도사에서 '벌써 스님이 보고 싶습니다' 했을 때 나는 하나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때 생각했다. 나는 왜 안 보고 싶지? 왜?
나는 지금이 되어서야 스님이 보고 싶다.
다시 화엄사에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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