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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풍농월

모범 시민

by jebi1009 2023. 3. 15.

3월의 날씨가 변화무쌍하다.

봄 날씨는 항상 그렇지만 이렇게 오락가락하다가 금방 더위가 찾아온다.

그리고 항상 봄비는 간절하다.

예전에는 '봄비'라는 단어가 그저 감상적으로만 보였지만 지금은 현실적인 단어로 보인다.

가뭄이 계속되다가 며칠 전 비가 왔는데 어찌나 요란스러운지...

천둥 번개 바람이 함께 들이닥쳐 집 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천둥 번개가 엄청났다.

천둥소리에 집이 다 떨리고 부엌 쪽에서 스파크가 났다.

이런 적은 없었는데 어디선가 전기가 흐르나? 번개 칠 때 불꽃을 다 보다니...ㅠㅠ

요란스럽게 비가 한 번 왔지만 아직도 봄비가 간절하다.

곧 씨를 뿌리고 모종도 심어야 하는데 말이다..

그래도 매화는 황홀하게 피어 향을 진하게 흩날리고 수선화와 상사화도 뾰족뾰족 올라오기 시작했다.

오늘은 무심코 지나치다 할미꽃이 핀 것을 봤다.

열심히 봐주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조용하게 꽃이 핀 것을 보면 괜히 미안하다.

지붕이 날아갈 것 같이 바람이 불기도 하고 천둥 번개도 치고

갑자기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기도 하고 20도를 웃도는 한 낮이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간정채 마당에서는 저마다 열심히 자기 할 일을 하고 있다.

마당에서 성실한 아이들을 보고 있으니 전에 읽었던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시민의 불복종] 중에서 '가을의 빛깔들'이 떠올랐다.

지금은 봄이지만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말하는 성실한 아이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멀리 어느 깊은 골짜기에 자라고 있는 한 그루의 꽃단풍나무를 보도록 하자. 길에서 1.5킬로미터는 떨어져 있으며 사람들 눈에도 띄지 않는다. 겨울과 여름 내내 그 나무는 그곳에서 단풍나무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단풍나무의 도리를 지켜왔다. 빈둥빈둥 놀러 다니는 일이 없이 여러 달 동안 열심히 자람으로써 단풍나무의 덕을 쌓았으며 지금은 지난 봄보다 하늘에 더욱 가까워진 것이다. 이 꽃단풍나무는 자신의 수액을 충실히 관리하고 떠도는 새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했으며 이미 오래전부터 씨를 성숙시켜서는 바람에 날려 보냈다. 그리하여 이제는 천 그루의 행실 바른 어린 꽃단풍나무들이 이 세상 어디엔가 자리 잡고 살아가고 있으리라는 생각에 이 나무는 가슴이 뿌듯할 것이다. 이 나무는 단풍나무 왕국의 모범 시민 자격이 충분히 있다.          시민의 불복종(헨리 데이빗 소로우) - <가을의 빛깔들> 중 '꽃단풍나무'

 

우리 마당의 매화나무도 수선화도 상사화도 할미꽃도 모두들 자신들의 도리를 지키는 행실이 바른 모범 시민이다.

마당이 아닌 집 안에 살고 있는 두 생명체는 그렇지 못한데 말이다...ㅠㅠㅠ

 

할미꽃
수선화
상사화

 

집 안에 있는 두 생명체 중 하나.

 

살짝 무너진 돌담을 손보고 있는데 어째 날이 갈수록 돌담이 더 해체되는 느낌이다.

'아씨... 다 무너뜨리고 다시 할까?'  며칠 째 한숨 쉬며 용가리가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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