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불볕더위에 집 안에서 조신하게 있다가 오후 태양의 기세가 조금 수그러들면 밖으로 나가서 풀을 뽑는다.
오후 4시 전후에 나가서 두세 시간 일하고 들어오면 제법 시원한 기운이 돌아 맥주 한 잔 곁들여 저녁을 먹고 하루를 마감한다.
그렇게 이삼일 일하면 대충 급한 곳 정리도 되었으니 바깥바람을 쐰다.
시원한 곳. 바로 극장 구경.
영화 '밀수'를 보고 왔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나름 재미있었다.
1970년대가 배경이다. 영화 자체도 그 느낌을 물씬 살렸고 어째 영화관 관객도 그때 분위기를 만들었다.
연배가 제법 있는 여성 관객들이 영화를 보면서 아이고 어째 어머나.. 등등의 감탄사를 참지 못하고 연발하면서 옛날 동네 극장 분위기를 만들었다. ㅎㅎ
세관을 피해 바다에 물건을 던지고 그것을 해녀들이 건져 올려 몰래 들여오는 밀수 이야기.
소재가 색다른 맛이 있지만 스토리 전개는 예측 가능하다.
김혜수와 염정아의 끈끈함(다방 마담 옥분이도 함께), 그리고 등장하는 나쁜 놈들.
세관원의 나쁜 역할이 생각보다 주도적이고 대담했고 조인성의 역할은 조금 의아했다.
조인성은 처음 매우 임팩트 있게 등장했으나 영화 전체로 보면 우정출연인가? 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 흘려 들었던 70년대 가요들이 영화 전반에 흐르면서 영화와 찰떡궁합을 만들었다.
장기하가 음악 감독을 했다는데 잘했다.
특히 피 흘리는 난투극 장면에서 산울림의 '내 마음의 주단을 깔고'를 넣은 것이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그리고 '무인도'라는 곡이 정훈희가 부른 것인 줄 알았는데 김추자 버전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원래는 김추자 노래였는데 국제 가요제에 김추자가 참석 못하게 되면서 정훈희가 나가서 입상을 하는 바람에 정훈희 곡으로 더 알려진 것 같다.
어쨌든 1970년대에 나는 꼬마였지만 이래저래 흘려들은 노래들이 나오니 그 어릴 때 생각이 절로 났다.
기존의 가요를 영화에 썼기 때문에 저작권료도 엄청 지불했다는데 그 값을 한 것 같다.
앵두 /최헌 1979
연안부두/김트리오 1979
님아 / 펄시스터즈 1968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 산울림 1978
무인도 / 김추자 1974
머무는 곳 그 어딜지 몰라도 / 박경희 1978
https://youtu.be/m9QsiB1JZ3g?list=RDm9QsiB1JZ3g
영화 보고 돌아오는 길, 옛날 기분 유지하면서 저녁 먹거리 장만을 위해 분식점을 선택했다.
근처 경상대 후문에 '경대튀김'이라는 곳이 유명하다고 해서 떡볶이 튀김 순대 세트 메뉴를 샀다.
관록이 넘치는 아주머니가 착착착 담아 주시고 계산은 알아서 해야 한다.
만원, 오천 원, 천 원, 동전들 통이 따로 있고 옆에 카드 계산기도 있다.
아주머니가 얼마, 하고 말해 주면 내가 돈통에 돈을 넣고 거스름돈을 챙긴다.
나는 처음이라 어리버리했지만 작은 가게에 끊임없이 들어오는 손님들은 알아서 착착착 잘한다. ㅎㅎ
가래떡 뽑아서 집에서 떡볶이도 자주 해 먹지만 이런 분식점 밀떡볶이는 참 오랜만이다.
큼지막한 분식점 튀김들도 오랜만이다.
떡볶이 국물에 찍어서 시원한 맥주와 먹으면서 영화 마지막을 장식했던 '머무는 곳 그 어딜지 몰라도'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