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는 1919년 3월 한국에 처음 방문한 이래 여러 차례 한국을 여행하면서 한국의 문화와 자연, 생활 모습을 담은 수채화와 채색 목판화를 많이 그렸다.
엘리자베스 키스의 사실적인 그림과 그림에 대한 설명, 언니 엘스펫 키스 로버트슨 스콧의 글을 더해서 당시 한국의 생활 모습과 사회적인 상황을 잘 보여주는 책 <올드 코리아>를 1946년 출간했다.
이 책은 2006년 번역 출간된 <올드 코리아>에 옮긴 이 송영달 교수가 자신이 수집한 그림을 더 하고 해제를 붙여 원저보다 두 배 이상 많은 그림을 수록한 완전 복원판이다.
당시에 한국을 방문했던 외국인들, 선교사 교육자 여행자들이 남긴 그림이나 글은 지금도 볼 수 있지만 엘리자베스 키스의 글과 그림은 조금 남다르다.
일단 키스 자신이 열린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지고 한국의 풍경과 그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그림과 글 곳곳에 담겨 있다는 것이다.
키스는 한국에 도착해 그 인상을 말하면서 한국인들의 옷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한다.
한국인의 복색이 한국의 풍광과 아주 잘 어울린다는 묘사가 많다.
특히 흰옷을 입은 것에 대해 자세하게 말한다.
그러면서 흰옷의 세탁을 담당하는 여성들의 노동까지도..
흰옷은 사치스럽고 고급스럽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정작 그 옷을 세탁할 사람들을 생각하면 딱한 생각이 들었다.
남자들이 하얀 두루마기에 하얀 바지만 입기 때문에 당연히 세탁물이 많을 수밖에 없는데 이 나라에서 세탁은 오로지 여자의 몫이다. 일본과 중국에서는 남자가 세탁을 하는데, 한국에서는 유독 여자만 어마어마한 양의 빨래를 담당한다. 한국 어디든지 강이나 개울에 가면 부인들이나 여자아이들이 빨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중략)
빨래도 힘들지만 한국의 다듬이질은 정말 힘든 노동이다. 서울 어디를 가나 여자들의 다듬이질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 소리는 어떤 때는 새벽부터 시작해서 밤늦게까지 계속된다. 이렇게 두드려 편 옷은 다시 새것처럼 된다. 거칠던 무명은 반짝반짝 윤이 나고, 섬세한 고급 옷감은 더 보드랍게 펴진다. 다듬이질을 많이 하다 보면 손목이 붓기도 하고 심지어 손가락이 휘기도 한다.
한국 여자들은 세탁과 다리미질을 아주 잘해서 아무리 더럽고 거칠었던 옷도 그들의 손을 거치면 반짝반짝 윤기가 나도록 깨끗하게 세탁된다.
한국에서는 어디에나 물이 흘러가는 곳이라면, 여자들이 편편한 돌에다 빨래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국 여자들은 빨래를 어찌나 잘하는지, 거친 무명으로 된 옷도 그들의 손을 거치면 무척 고급스러운 옷감으로 되살아난다.
한국 여자들의 빨래 솜씨에 감탄하는 모습이 여기저기 나온다.
나도 예전에 엄마의 세탁물을 보고 '엄마는 빨래 선수권대회에 나가면 금메달 땄을 거야,라고 말한 적이 있다.
우리 엄마도 식구들의 옷과 이불 수건 등등의 세탁물을 정말 하얗고 반듯하게 유지하셨다.
그렇게 하려면 끊임없는 노동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도 나중에서야 알았다.
세탁물을 발로 밟고 다듬이질하는 모습도 생각난다.
세탁물 밟는 것은 어린 나에게 많이 시키셨다. 막대 사탕 하나를 쥐어 주시면 그 사탕 빨면서 빨래를 밟았다.
풀 먹여 다듬이질한 이불 홑청은 매끈하고 빳빳해서 겨울에는 냉기가 느껴졌다.
흰옷과 민족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올드 코리아>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한국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들의 강인한 성품을 잘 알게 되었고 또 존경하게 되었다. 한국인들은 일본의 간사한 농간 탓에 조국을 잃었고 황후마저 암살당했으며, 그들 고유의 복장을 입지 못하게 되었고, 학교에서는 일본말만 사용하도록 강요받았다. 나는 길을 가다가 한국 전통 의상을 입은 사람 옷에 검은 잉크가 마구 뿌려져 있는 것을 보았다. 일본 경찰이 한국인의 민족성을 말살시키려고 흰옷 입은 한국인들에게 그런 만행을 저질렀던 것이다.
키스는 한국 여성에 대한 관심도 많았다.
한국 여성의 삶과 태도를 존중하면서도 남존여비, 가정에서의 끊임없는 노동, 교육의 기회 박탈, 이런 것들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한국 여자들은 뼈대가 작으며 얼굴 표정은 부드럽다. 인내와 복종이 제2의 천성이 된 듯하다. 하지만 온순하기만 한 한국 여자들에게도 의외로 완고한 구석이 있다. 가령 이들에게 새로운 문물을 강요한다든지 오랫동안 쌓아온 그들의 생각이나 생활신조를 바꾸려 든다면, 차라리 서울을 둘러싼 산들을 허물어 옮기는 것이 더 쉬울지 모른다. 그러므로 한국 여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최선이 방법은 오로지 한국 풍습을 존경하며 끈기와 친절로 대하는 것뿐이다.
3.1 운동에 가담해 남편은 죽고 아들은 일제에 끌려갔고 자신 또한 일제에 끌려가 온갖 고문을 당하고 감옥에서 풀려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여인을 그리면서 이렇게 썼다.
'몸에는 아직도 고문당한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그의 표정은 평온했고 원한에 찬 모습도 아니었다. 타고난 기품과 아름다움이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여인이었다.'
한국인들의 꼿꼿한 태도를 여기저기 말하기도 했는데 일본 사람들과 대비해서 말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내가 키스의 생각을 정리한다면, 한국 사람들(남성 여성 아이들)은 다 예쁘고 당당하고 잘생겼고 일본 사람들은 꾀죄죄하고 못생겼다고 할 수 있겠다.
한국인의 자질 중에 제일 뛰어난 것은 의젓한 몸가짐이다. 나는 어느 화창한 봄날 일본 경찰들이 남자 죄수들을 끌고 가는 행렬을 보았는데, 죄수들은 모두 흑갈색의 옷에 조개 모양의 삐죽한 짚으로 된 모자를 쓰고 짚신을 신은 채 줄줄이 엮여 끌려가고 있었다. 죄수들은 여섯 척 또는 그 이상 되는 장신이었는데, 그 앞에 가는 일본 사람들은 총칼을 차고 보기 흉한 독일식 모자에 번쩍이는 제복을 입은 데다가 덩치도 왜소했다. 일본 경찰의 키는 한국 죄수들의 어깨에도 못 닿을 정도로 작았다. 죄수들은 오히려 당당한 모습으로 걸어가고 그들을 호송하는 일본 사람들은 초라해 보였다.
키스는 한국인들의 발과 신발에 관심이 많았다.
한국 사람만큼 키는 크면서도 발이 예쁘게 작은 사람도 없을 것이라 했다.
사람을 그릴 때는 버선과 신발을 빼놓지 않았고 버선에 대한 감탄과 설명도 항상 덧붙였다.
그림을 보면 재미있는 것이 일하는 사람들이 담뱃대를 천장에 매달아 놓고 담배를 계속 피우면서 일한다.
신발 만드는 사람들은 일을 하면서도 담배를 피우며, 이때는 담뱃대를 천장에 달아놓은 담뱃대 걸이에 얹어서 고정시킨다.
담배 피우는 사람에 대해서도 재밌게 말한다. 그녀의 견해가 아주 탁월하다.ㅎㅎ
길을 가다 가끔 열려 있는 문 안으로, 나이 많은 영감이 긴 담뱃대를 물고 있는 한가로운 장면을 볼 수 있다. 한국의 양반은 보통 하인이 불을 붙여주면 담배를 피운다. 하기야 스스로 직접 불을 붙이긴 꽤 어려워 보이는 길이이긴 하다!
다른 그림에서도 보듯이 한국에서는 일을 하면서도 흔히 담뱃대를 물고 있다.
하지만 정말 행복한 흡연가는 근사한 담뱃대를 뻐끔대고, 꿈꾸듯이 먼 곳을 바라보며 한가로이 앉아 있는 바로 이 사람일 것이다.
(중략)
일반적으로 한국의 젊은 여성들은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한국의 가정에서 대부분의 일은 여자가 하고, 그런 만큼 남자의 역할은 아주 경미하다. 여기 앉아 있는 노인도 그런 남존여비 제도의 혜택을 받은 사람 중 하나다.
이 책에서 나에게 가장 확실하게 다가온 것은 바로 "한글"이다.
30년 넘게 선교사로 일하며 한영사전을 만든 학자이기도 한 '제임스 게일'은 이렇게 말한다.
아시아에서는 기독교 전파가 쉽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많은 일반 대중이 문맹이라 성경을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은 문자는 있지만 문자 자체가 배우기 힘든 인도 등의 나라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이야말로 제일 안 좋은 경우인데, 지배층에서는 고고한 문화를 논하며 편안히 지내는 동안, 대중은 일자무식으로 소문, 귀동냥, 그리고 미신만 믿으면서 살아왔다.
극동에서 한국은 유일한 예외인데, 그들에게는 누구나 쉽게 배우고 쓸 수 있는 글자가 있었다.
어떤 선구자적인 본능이 작용했는지 모르지만 한국에서는 사백육십 년 전에 간단한 표음문자가 발명되었다.
그래서 남녀노소, 빈부의 차이, 직업의 고하, 생계의 방법을 막론하고 누구나 글을 읽을 수 있다.
요즘 교회 일을 보는 한국인 중에는 평생 학교를 가본 적이 없는 사람도 많다.
한글은 복음 전파의 선교활동을 아주 쉽게 해 주었다.
선교사들은 세종대왕이 발명한 한글로 성경을 번역했고 그리하여 이 은둔의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곧 에덴동산에서 갈릴리 바다에 이르기까지 성격 이야기를 훤히 알게 되었다.
또 한국에는 이미 하늘에 계시는 '하느님'이라는 개념이 있어서 우리가 전하고자 하는 유일신 개념을 쉽게 전할 수가 있었고, 하느님이 우리의 일상생활을 어떻게 주관하는지 이해시킬 수 있었다.
(중략)
이 나라는 학문을 쌓은 학자라면 비록 남루한 옷을 입고 다닌다 해도 존경하고 우대하는 문화를 갖고 있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사도 바울과 그 제자들의 행적을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한글은 공부하면 할수록 참 대단한 문자라고 감탄하게 만든다.
문자계의 하이엔드, 원탑!! ㅎㅎㅎ
어느 외국 신문에서 한글을 'the height of luxury'라고 표현한 것을 본 적이 있다.
내가 살면서 어디에 가서든 맘껏 자랑하고 뽐낼 수 있는 것이 바로 한글을 가졌다는 것이다.
세종대왕 짱짱짱!!!
세종대왕을 언급하니 광화문 맞은편에 있는 이순신 장군이 자연스레 생각나는데 이 책에 나온다.
송영달 교수가 이순신 장군 초상으로 추정되는 그림을 소개한다.
지금 표준 영정으로 사용되는 이순신 장군 초상보다 더 이전에 키스가 그린 그림으로 이순신 장군 실제 모습에 더 가깝다는 추론이 함께 한다.
키스가 그의 언니와 그 당시 한국에서 생활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모델을 설득해서 그림을 그려야 하고, 눈에 띄는 서양인 여성의 모습으로 그림을 그리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몰려들기 마련일 것이다.
내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캔버스를 세워놓는 순간 어디서 나타나는지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왔다. 대개는 아이이거나 나이 많은 남자였다. 그래서 어떤 때는 내 언니 제시가 땅에다 금을 긋고 그 이상은 들어오지 말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더 가까이 오지 말아요. 얘야, 저리 물러서!'하고 우리가 소리를 지르면, 사람들은 우리의 말투를 흉내 내며 따라 했다. 우리도 마주 보고 웃는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너무 몰려와서 구경을 하는 바람에 어떤 때는 포기하고 집에 돌아왔다가 새벽닭이 울 때 다시 찾아와 그림을 그리기도 했는데, 그래도 어떻게 아는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동양에서 서양인 여행자가 남몰래 다닐 방법은 사실상 없었다.
또 여기저기 달라붙는 파리에 대해, 파리가 앉은 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 놀라는 모습 등 당시 한국에서의 생활을 생생하고 재미나게 묘사한다.
마지막으로 이 그림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키스가 우리에게 던진 질문도.
내가 처음 서울에 갔을 때 스케치 대상을 찾아 돌아다니가 주위가 참 아름다운 이곳에서 예쁜 옷을 입은 학생들을 만났다. 이 건물은 원래는 절이었는데 임시 교사로 사용하고 있었다. 일본인들이 식민지 교육을 강행하기 위해 시멘트와 콘크리트로 된 학교를 부지런히 짓고는 있지만 아직 학교의 숫자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학생들 중에는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주 어린아이도 눈에 띄었지만, 바지는 다 하얀색으로 통이 넓었다.
군인처럼 칼까지 찬 선생이 학생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행진을 시키고 있었는데 주위의 평화스러운 환경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나이가 좀 찬 학생들은 규율도 그리 심하지 않고 푸근한 집 같았던 서당 시절을 그리워하지 않았을까.
몇 년 후에 한국에 다시 갔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바뀌어 학생들은 일본식 교복에다 흉한 치즈 자르는 칼 모양의 모자를 쓰고 있었다.
이제 일본의 압박에서 놓여났으니, 한국 사람들은 다시 옛날 한복으로 돌아갈까? 아니면 일본 사람들의 복장을 계속 사용하는 게 편하다고 생각할까? 과연 한국 사람들은 옷뿐만 아니라 건축양식에서도 추악한 일본의 잔재를 없앨 수 있을까? 그들에게 현명한 충고를 해줄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 이 책을 읽다 보니 오래전에 읽었던 <그림으로 읽는 한국 근대의 풍경 - 이충렬 지음>이 생각났다.
엘리자베스 키스의 그림을 보면서 어디서 봤던 것이라 생각했는데 바로 이 책에서였다.
이 책에는 키스가 말한, 당시 서울에서 절을 임시 교사로 사용한 초등학교는 창신동 원흥사 절터에 설립된 창신 공립 보통학교 (지금의 창신초등학교)라고 그림을 본 이순우 우리문화재자료연구소장이 추정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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