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에서 살다 보면 도시로 한 번 움직일 때 이런저런 일을 모아 모아서 움직이게 된다.
읍내에 나가더라도 한 가지 일로 나가지는 않는다.
'간 김에...' 이 말이 붙어 이런저런 일을 하고, 돌아올 때도 '또 뭐 살 것은 없나?' 다시 생각해 보고 돌아온다.
하물며 서울 한 번 움직일 때는 '간 김에...'가 더 확장되어서, 어떤 때는 주된 목적보다 더 거대한(?) 일을 계획하기도 한다.
이번 연휴에 아빠 보러 다녀왔다.
아빠 납골당에 모두 모인 것은 오랜만이다.
엄마와 그녀의 자식과 그들의 배우자들이 모두 모였다.
'조금 있으면 아빠가 제일 젊겠다.. 우리들은 늙어가는데...'
함께 점심을 먹고, 날짜를 잡은 조카의 결혼을 이야기하고, 더불어 결혼식 참석을 위한 양복에 대해 걱정하고..ㅎㅎ
현직에서 물러나니 정장을 구입하지 않았고 있던 것도 다 버렸고, 그에 따른 와이셔츠나 구두도 없으니..
그런데 더 웃긴 것은 다들 벨트 걱정을 한다는 것이다.
'허리띠가 없어! 나도 나도...' ㅎㅎㅎ
어쨌든 별일(?)없이 기분 좋게 헤어졌다.
역시 가족은 밥 한 끼 먹을 정도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딱 좋다. 두 끼 먹으면 안 된다. 우리 집은 말이다.ㅋ
서울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곳까지 갔으니 서울 가서 점심을 먹었다.
그러니 그냥 올 수가 없지.
예약 날짜 조정해서 안과 병원에도 가고 딸아이도 만나고 내친김에 전시회도 하나 보고...
오랜만에 삼청동.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올해의 작가상 2023'을 아직도 하고 있었다.
'전에는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올해의 작가상은 꼭 봤었는데...'
직장인이 되어버린 딸아이의 푸념을 들으며 함께 미술관에 갔다.
갈라포라스 김, 전소정, 이강승, 권병준 네 명의 작가의 작품을 봤다.
갈라포라스 김은 석관과 고인돌 미라 같은 유물들이 현대의 박물관과 미술관 속에서 본래의 기능을 잃고 수장고와 전시장에서 전시되는 상황을 과거 그 당시의 고대인의 뜻에 조금이라도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작업을 했다.
자신들의 믿음을 바탕으로 만들고 숭배했던 고대인들의 마음과 현대의 문화유산 시스템을 중재하려는 노력이다.
그래서 작가는 미술관이나 연구소와 같은 기관에 편지를 보내고 의견을 개진하고 유물을 이전하면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나 먼지, 곰팡이들로 작품을 만들거나 본래 있었던 곳으로 그 부스러기들을 보내기도 한다.
이강승 작가의 '누가 우리를 돌보는 이들을 보살피게 될까'라는 주제가 눈을 잡았다.
작가는 국가를 넘어서 퀴어 역사의 유산, 그중에서도 퀴어 역사와 미술사가 교차되는 지점에 관심을 두고 있다.
권병준 작가는 싱어송 라이터로 음악을 했었고 소리와 관련한 하드웨어 연구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로봇을 이용한 기계적 연극을 연출하고 있다.
전시라기보다는 공연에 가까운 전시?
전시된 로봇들은 쓸모와 효용을 위해 디자인된 산업용 로봇들이 아니라 춤추고 명상하고 일어나고 앉고 걸어 다니는 로봇들이다.
굳이 로봇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는, 즉 쓸모없는 일을 하는 로봇들이다. 없어도 되는 로봇?
로봇의 투입으로 노동력의 가치를 잃은 인간 노동자들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
이강승과 권병준 작가는 사회에서 추방되거나 잊혀진 역사를 탐구하고,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관점에서 접근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인간과 비인간, 이웃과 이방인, 난민과 정착민, 정상과 비정상....
전소정 작가는 근대화의 과정에서 놓아버린 바깥의 영역을 탐색하는 작가라고 한다.
영상, 사운드, 조각, 퍼포먼스, 책 등등 여러 가지가 등장한다.
앞 세 명의 작가들의 작품과 영상들을 너무 열심히 봐서 이 부분은 대충 봤다.
그래서 잘 생각이 안 난다. ㅠㅠ
같이 전시하던 '프로젝트 해시태그 2023'은 강냉이와 우뭇가사리를 통한 젊은 작가들의 다양한 작업이 소개되는데, 게임을 통한 참여가 가능하다.
역시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었다. 나는 후딱 보고 나옴.
한국 현대 미술의 여러 관점을 보여주는 '백투더퓨처'도 괜찮았다.
여러 작가들이 이렇게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고, 그저 별 의미 없는 엉뚱한 발상들(내가 보기에)이 오히려 참신한 느낌이었다.
언제나 전시회에서 느끼는 것이지만 작가나 작품을 설명하는 글들은 왜 쉽고 명확하게 쓰지 못하는 것일까?
항상 중얼거리며 두어 번 읽어야 대충 뜻이 통한다.
간결하고 쉽게 쓰면 안 되나? 아니 간결하지가 않더라도 그냥 풀어서 쓰고 문장을 좀 짧게 썼으면 좋겠다.
한 번 읽어서는 문장들이 뭘 말하는지 정말 알 수도 없고 눈에 잘 읽히지도 않는다.
그리고 요즘 작가하기 참 힘들겠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이렇게 여러 가지를 통해서 작업해야 하다니...
사운드, 영상, 퍼포먼스, 오브제, 사진, 회화, 자수, 직조 등등
그럼에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작품들은 나름의 그 서사가 있는 것이었다.
자신의 이야기가 있어야만 마음을 움직인다. 그것도 작고 구체적으로 다가올수록 말이다....
역시 전시를 보는 것은 재밌고 설레지만 피곤하다. 하얗게 불태웠다.ㅠㅠ
미술관을 나와서 삼청동 골목을 잠시 걸었다.
삼청동 길은 언제 걸어도 좋다.
그런데 뜻밖의 장소를 발견했다.
무한도전의 광팬인 나와 용가리. 특히 용가리는 무한도전 무한 숭배자다.
무한도전에 나왔던 목욕탕을 본 것이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라고 박명수가 목욕탕 물속에 누워서 예언자 역할을 하는 뭐 그런 내용이다.ㅋㅋ
거기에 나왔던 목욕탕, 코리아 목욕탕을 본 것이다.
지금은 폐업했는데 무한도전 사진과 설명이 쓰여 있었다. ㅋㅋㅋㅋㅋ
용가리는 성지에 간 것이다.
생전 사진 찍어달라는 말도 잘 안 하는데 용가리가 사진 찍어 달라고 해서 인증샷 찍어 줬다.ㅎㅎㅎ
저녁은 정말정말 오랜만에 복어 요리를 먹었다.
아마도 지리산 내려온 이후 처음? 게다가 후쿠시마 때문에 수산물도 잘 먹지 않아서 정말 오랜만이었다.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 물질 때문에 무서워서라기보다는 자존심 상하고 짜증 나서 안 먹었다.
정부 하는 꼬라지가 사람 열받게 한다. 일본 정부 말고 우리나라 정부 말이다.
뭐라 항의도 못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수산물 먹는 것을 일본이 본다면 우리를 얼마나 바보멍충이로 여길 것인가.
빈정 상하고 자존심 상한다. 그래서 잘 안 먹었다.
딸아이가 복어 잘하는 집 있다고 먹자고 했다. 회식 때 갔었다고..
복어 맑은탕 맛을 알다니... 다 컸구나!
물론 고가의 음식이니 부모님 왔을 때 먹는 것이다. ㅎㅎ
그래! 정권 바뀌면 욕을 몇 배로 퍼부어 주고 지금은 일단 먹자.
소고기는 계속 안 먹어도 되는데 수산물 피하기는 사실 좀 어렵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그렇게 먹고 싶지는 않다. 억지로 참는다기 보다는 먹고 싶은 마음이 별로 안 생긴다.
나는 회, 수산물에 정말 진심인 사람인데 정부가 내 식욕에도 영향을 끼친다. ㅠㅠㅠ
복어 맑은탕, 복어찜, 복어튀김. 정말 오랜만에 누리는 호사.. 소주는 각 1병.
그리고 2차는 펍에 가서 맥주.
서울 '간 김에' 전시도 보고 복어 요리도 먹고 딸아이와 까페 가서 수다도 떨고.
아빠 보러 '간 김에' 잘 놀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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