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痛飮大快
  • 통음대쾌
심심풀이

사람이 사는 미술관

by jebi1009 2024. 6. 23.

 

 

15년 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근무한 저자가 그림을 통해 인권을 쉽게 이야기하는 책이다.

다시 말하면 작가의 관점에서 인권을 새삼 생각하게 만든 세계의 명화를 소개하는 책이다.

어릴 적 아버지가 해마다 자신의 방에 걸어 주신 달력의 명화를 보는 것이 큰 재미이자 낙이었던 작가는

그렇게 그림과 인연을 맺으며 자신의 일터에서 보고 듣고 느꼈던 모든 것들이 그림들과 어우러지기 시작해 그림에서 인권을 보기 시작했다.

제리코의 <메두사의 뗏목> 속 절규하는 인물들은 세월호의 기억을 끄집어냈습니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1830년 7월 28일>의 작가로만 알던 들라크루아가 그린 <키오스 섬의 학살>을 보면서는 제주 4.3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그전까지는 미학의 측면에서 그림을 좋아했다면, 이제는 그 안에 담긴 인간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이지요.

그림으로 인권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들라크루아의 <키오스 섬의 학살>은 그리스 독립에 대한 당대 지식인들의 관심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프랑코 독재가 자행한 끔찍한 국가 폭력을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시대의 부조리를 포착한 어떤 그림은 사람들을 각성시키고 상황을 변화하게 만듭니다. 그 결과 우리의 인권은 한 단계 더 나은 방향으로 진보합니다. 이 책을 통해 인간의 권리를 새삼 생각하게 만든 세계의 명화들을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책에서는 인권의 주요 개념을 5가지로 나누어 말하고 있다.

 

제1부 여성

제2부 노동

제3부 차별과 혐오

제4부 국가

제5부 존엄

 

세계인권선언문을 기본으로 각 항목과 구체적인 사건들을 챕터마다 덧붙여 설명하고 있다.

인권교육 업무를 오랫동안 담당해서 그런지 '청소년을 위한 필독도서' 느낌이 나는 책이어서 조금 아쉽다.

더 많은 그림 이야기와 더 깊은 역사 이야기를 기대했는데 말이다.

하지만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부분을 알려 주고 인지하지 못했던 부분을 환기시켜 주어 좋았다.

예를 들면,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명화에서 여성들은 죽을 때도 아름답고 전쟁 중에도 육감적이어야만 했다.

 

제2부 노동 편에서는 내가 잘 몰랐던  '강주룡(1901년~1932년 8월 13일)'에 대해 알게 되었다.

강주룡은 한국 노동운동 역사에서는 첫 번째 여성 노동운동가이자 고공농성자로 알려져 있다.

그녀가 일하던 평원 고무공장에서 일방적인 임금 삭감을 감행하자 인금 삭감에 반대하고 노동권을 쟁취하고자 을밀대 지붕에 올라가 농성을 했다. 자신만의 권리가 아닌 2300명의 고무직공의 권리를 짊어지고 을밀대 지붕에 올라간 것이다.

8시간 만에 강제로 끌려 내려온 뒤에도 옥중 단식 투쟁을 계속하였고 결국 31세에 평양의 빈민굴에서 생을 마감했다.

 



 

제4부 국가 편에서 다루고 있는 국가 폭력과 국가의 보호의무에 대해서는 생각할 것이 많았다.

<메두사의 뗏목>이라는 작품은 메두사호라는 실제 군함의 난파 사건과 당시 무참히 버려진 열다섯 명의 생존자들의 실화를 담고 있는 기록화다.

메두사호가 난파되자 선장과 고위직 장교들은 150명의 선원과 승객을 버리고 구명정을 타고 탈출한다.

심지어 구명정과 뗏목을 연결하는 밧줄을 칼로 잘랐다고 전해진다.

메두사호는 일반 상선이 아니라 국가의 군함이었다.

더 웃긴 것은 이후 열린 재판에서 혼자 탈출한 선장에게 고작 3년형이 내려졌다는 것이다.

당연히 세월호가 생각날 수밖에 없다.

 

1

 

그리스 독립 전쟁을 진압하고자 오스만튀르크 군대가 키오스 섬의 민중들을 잔혹하게 학살한 역사를 담고 있는 <키오스섬의 학살>과 강요배 화백의 <젖먹이>를 연결시켰다.

작가는 <키오스섬의 학살>의 오른쪽 하단에 묘사된 엄마와 아이를 보며 <젖먹이>를 떠올린 것이다.

제주 4.3이 <키오스섬의 학살>과 다른 점은 국가가 자국민에게 행한 학살이라는 점이다.

제주 4.3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국가폭력에 대한 일들은 알면 알수록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에 돌덩이가 들어앉은 것 같다.

 

언제 봐도 울컥하게 만드는 그림이다.

 

 

제5부 존엄에서는 생존환경, 아동, 노인, 죄수 등등의 문제를 말하고 있다.

 

 

 

 

 

이 선언의 어떠한 규정도 어떤 국가, 집단 또는 개인에게 이 선언에 규정된 어떠한 권리와 자유를 파괴하기 위한 활동에 가담하거나 또는 행위를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것으로 해석되어서는 아니 된다.     /   <세계인권선언> 제30조

 

작가의 친절한 설명으로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여성, 노동, 차별과 혐오, 국가, 존엄...... 쉽지만은 않은 책이다.

'심심풀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 시를 그때 읽었더라면  (2) 2024.07.04
자수 가방  (0) 2024.07.04
오페라 맛 좀 봐라!  (5) 2024.05.21
간장게장, 여수  (4) 2024.05.17
부처님 오신 날  (4) 2024.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