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찮으신 시어머니 뵈러 일주일 한 번씩 서울에 간다.
재활요양병원으로 옮기셨다.
어느 정도 보행하실 수 있도록 재활치료가 가능한 병원으로 옮기신 것이다.
많이 떨어지신 인지 능력이 얼마나 회복되실지.....
대화도 하시고 휠체어나 보조기구 의지해 바깥바람도 쐬시는 모습을 보면 기쁘고 반갑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어수선하고 갈피를 잡을 수 없다.
나는 효심이 없는 사람이라 그런지 막 이것저것 활동하고 운동시키는 것에 그리 열심히 동참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한없이 서글프다.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이 참으로 힘들구나.
그런 것을 바라보는 것도 힘들고 직접 감내하는 것도 힘들구나.
결국 태어난 것이 고통이구나.
나이 들어 위기가 닥치면 그것이 하늘이 주신 기회라 생각하고 마무리를 잘해야 할 텐데...'
요즘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생각이다.
물론 내가 아무리 머릿속으로 계획을 세워도 그렇게 될리는 만무하지만 말이다.
토요일, 어머니를 뵙고 나와 그리 멀지 않은 혜화동으로 갔다.
타들어가는 듯한 뜨거운 태양 아래 대학로를 걸었다.
정말정말 오랜만에 학전 소극장에 가보고 싶었다.
지금은 폐업했지만 그 흔적은 남았다.
용가리와 함께 다녔던 곳에는 그 당시 낡은 건물과 새로 생긴 건물들이 뒤엉켜 있고..
물론 우리가 다녔던 술집들은 다 없어졌고 말이다.
친구들과 대학로에서 만날 때 약속장소였던 KFC는 그대로 있었다. 신기~~
용가리랑도 이 앞에서 참 많이도 만났다.
막연히 오래 되었다 생각했는데 찾아보니 KFC 대학로점이 1984년 문 열었단다. 40년이나 되었다.
마로니에 공원, 학림다방, 파랑새극장, 흥사단 건물까지 구경(?)했다.
'젊음의 거리 대학로'라고 쓰여 있지만 사실 젊은 시절을 회상하는 50대들이 더 많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 50대와 함께 온 젊은이들...
우리도 그 조합이었다.
추억하는 50대와 따라온 젊은 딸아이.ㅎㅎㅎ
딸아이는 혜화동 일대는 거의 알지 못했다.
어릴 때 우리와 함께 연극을 보러 온 것만 기억했다.
'그때 엄마아빠 대판 싸웠잖아. 그리고 또 술 마시고 언제 그랬냐는 듯 놀았잖아..ㅋㅋ'
'여기 이 넓은 길이 차 없는 길이었어. 대로 한 복판에 주저앉아 막걸리 마시고 그랬지ㅎㅎ'
딸아이는 어린 시절 우리와 함께 연극이나 전시를 보러 몇 번 왔었지만 차 없는 거리를 경험하지는 못했었다.
동성고등학교 출신인 용가리가 고등학교 때 다녔던 진아춘 중국집이 보였다.
거기서 항상 눈치 보며 재빨리 소주를 한잔씩 마시던 이야기도..ㅋ
아쉬운 대로 빈티지스러운 주점에 들어가 적당한 안주와 시원한 생맥주를 마시며 저녁을 먹었다.
해가 넘어가면서 2차로 수제 맥주집에 갔는데 아주 감성적이었고 술도 맛있었다.
옛날 ㅁ자 집을 개조해서 만든 '독일주택'이라는 곳.
나는 맥주, 용가리는 싱글몰트 위스키, 딸아이는 마티니.
배가 아무리 불러도 술은 넘어간다.
아... 서글프기도 하고 낭만적이기도 한 여름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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