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는 내가 아는 '박남준'시인이 나온다.
그 시인이 '워즈워스'와 '까비르'의 시로 한 꼭지 글을 쓰기도 했고
'문신' 시인이 '박남준' 시인의 시 <흰 부추꽃으로>를 주제로 한 꼭지 글을 썼다.
'박남준'시인은 연관스님과의 인연으로 알게 되었다.
같이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노래도 하고 그 거처에 가서 차도 마셨다.
커피 봉투의 스티커로 사용하고 있는 '지리산 제비꽃' 글씨를 써 준 사람도 박남준 시인이다.
단지 연관스님 따라다니느라 엮인 인연이었다.
연관스님과 박남준 시인은 정말 각별한 사이였다.
그래서 시인이 책을 내면 시인의 서명이 들어간 책을 받아 보게 되었다.
내 이름과 시인의 서명이 들어간 시집이 지금 책꽂이에 여러 권 꽂혀 있다.
그런데 사실 그 시집들을 그리 열심히 읽지는 않았었다.
나는 시를 잘 읽지 않았고 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인들이 너무 유별스럽다는 생각도 좀 있었다.
책을 읽으며, 아는 시인이 나와 반가운 마음에 읽었는데 그 시가 오래 마음에 남았다.
만약에 지금 이 순간이 아니었다면 그 시가 내 마음에 남지 않았을지 모른다.
몸이 서툴다 사는 일이 늘 그렇다
나무를 하다보면 자주 손등이나 다리 어디 찢기고 긁혀
돌아오는 길이 절뚝거린다 하루 해가 저문다
비로소 어둠이 고요한 것들을 빛나게 한다
별빛이 차다 불을 지펴야겠군
이것들 한때 숲을 이루며 저마다 깊어졌던 것들
아궁이 속에서 어떤 것 더 활활 타오르며
거품을 무는 것이 있다
몇 번이나 도끼질이 빗나가던 옹이 박힌 나무다
그건 상처다 상처받은 나무
이승의 여기저기에 등뼈를 꺾인
그리하여 일그러진 것들도 한 번은 무섭게 타오를 수 있는가
언제쯤이나 사는 일이 서툴지 않을까
내 삶의 무거운 옹이들도 불길을 타고
먼지처럼 날았으면 좋겠어
타오르는 것들은 허공에 올라 재를 남긴다
흰 재, 저 흰 재 부추밭에 뿌려야지
흰 부추꽃이 피어나면 목숨이 환해질까
흰 부추꽃 그 환한 환생
<흰 부추꽃으로 / 박남준>
'어둠이 고요한 것들을 빛나게' 하는 것도, 아궁이에 불을 때는 것도, 도끼질이 빗나가던 옹이 박힌 나무도,
아궁이의 재를 부추밭에 뿌리는 것도, 하얀 부추꽃도.. 알지 못했다면 이 시도 그저 그렇게 읽고 지나갔을 것이다.
간청재 살면서 가끔 예전에 읽었던 시구가 생각날 때가 있다.
계절이나 꽃이나 풀이나 나무나 바람이나 하늘이나... 그 모습들을 시인이 왜 그렇게 말했는지 '정말 그렇구나' 감탄하게 된다.
실제로 보고 듣고 알게 되니 왜 그렇게 말하는지 저절로 깨닫게 된다.
난 고사리를 꺾어보고 나서야 왜 '고사리손'이라고 하는지 알았고 왜 쑥대머리인지도 알겠고 버들가지에 물이 정말 오르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런 것들보다 이 시를 읽고, 아니 다시 읽고 마음에 꽂힌 말은 '서툴다'는 말이다.
'몸이 서툴다 사는 일이 늘 그렇다'
나는 서툴다.
지금 이곳에 사는 것도 뭐 하나 잘하는 것이 없다.
텃밭일도 집안일도 서툴고 사람 대하는 것도 여전히 서툴다.
그렇다고 서울에 살 때는 잘했느냐면 그것도 아니다.
그때도 서툴렀다.
모든 것이 그랬다.
집안일도 아이를 키우는 일도 직장일도 서툴렀다.
교사로서 아이들을 대하는 것도 서툴렀고 동료 교사를 대하는 것도 서툴렀다.
그런데 서툴지 않은 척하느라 더 힘들었던 것 같다.
세상 쿨한 척, 독립적인 척 했지만 속은 찌질한 겁쟁이 울보였다. 지금도 그렇다.
나는 하나도 나아진 것이 없고 지금도 여전히 서툴다.
이곳에 살면서 지나가는 사람이 건네는 인사 하나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서툴게 받는다.
'언제쯤이나 사는 일에 서툴지 않을까'
부추밭에 아궁이의 흰 재를 뿌리면서도 그 재 위에 다시 부추가 수북이 올라와 흰 꽃을 피우는 것을 보면서도
부추꽃의 환생은 생각하지 못했다.
'환한 환생'
나도 서툴지 않은 환한 환생을 할 수 있을까.
상사화 꽃대가 올라와 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얀 부추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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