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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풍농월

바닥 공사

by jebi1009 2024. 11. 23.

안방 바닥을 바꿨다.
간청재 안방은 한지장판이었다.
집을 지을 때 좌식 한옥을 생각해서 안방은 한지장판으로 했다.
한지장판이 좋았다. 잘 썼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얼룩이 생기고 습기에 약했다.
얼룩이 생기지 않도록 특별히 조심했지만 생활하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얼룩이 생기기 마련이다.
물방울이 떨어지거나 어쩔 수 없는 자국들 말이다.
그 흠집들을 지우려고 하면 더 자국이 커지고 종이가 벗겨졌다.
기름을 먹여 층을 두텁게 해야 하는데 그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얼룩은 그렇다 치고 가장 어려운 문제가 습기였다.
여름이 오면 장판은 파도를 쳤다.
여름이 지나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짱짱해졌지만 습기가 가장 힘들었다.
사실 목조 주택은 여름 겨울의 차이가 심하다.
나무들의 수축과 팽창을 온전하게 감당해야만 한다.
한지장판도 그렇다.
그렇게 그렇게 지내다가 지난여름은 그 절정이었다.
더위도 심했지만 습기가 장난 아니었다.
장판이 우글거려서 30도가 넘는 기온에도 난방을 했다.
잠깐이면 견디겠지만 그 여름의 습기가 점점 길어지는 것 같다.
처음에는 장판의 내구성을 높이려고 고민하다가 옻칠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것도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바닥재를 바꾸기로 했다.
그렇다고 비닐 장판을 깔고 싶지는 않았다.
안방 외에는 나무 마루를 깔았는데 그 만족도가 높으니 안방도 마루를 깔아 보면 어떨까...
여기저기 검색하니 한식 집에 다실 같은 곳은 마루를 깐 곳도 많았다.
그래... 차라리 마루를 깔자.
그런데 마루도 종류가 너무 많았다.
우리 집 마루와 같은 것으로 해야 할지, 그래도 안방이니 다른 마루를 해야 할지..
원목마루? 강화마루? 일자마루? 우물마루?
인터넷으로 봐서는 도무지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망설이다 간청재를 설계한 가온 건축에 문자를 했다.
노은주 소장님이 반갑게 답해 주셨다.
오랜만에 통화하고 안부를 물었다.
'건축탐구 집'에서 간청재 촬영할 때 뵙고는 처음이었다.
바닥 재료를 알아 봐 주시겠다고 하시고 사무실을 옮겼다는 소식도 전했다.
서울 오실 때 한 번 오시라고...
겸사겸사 11월 초 서울 갈 때 가온 건축을 방문했다.
임형남 노은주 소장님은 여전했다.
한적한 주택가에 작은 집을 구입해서 건축 사무소로 개조했는데 분위기가 아주 좋았다.
압구정동에 있을 때 보다 훨씬 가온건축 분위기에 잘 맞았다.
정말 반갑고 즐거운 만남이었다.
그리고 바닥재를 결정하는데 아주 많은 도움을 받았다.
사실 특별하게 새로운 획기적인 바닥재를 알려 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가장 필요한 답을 주었다.
수많은 재질과 수많은 색감....
그리고 샘플로 보는 것과 실제 바닥에 깔았을 때의 분위기는 많이 다르기 때문에 결정이 정말 어렵다.
그런데 단순하게 어떤 선을 그어 주는 신뢰 있는 누군가의 한 마디가 나는 필요했다. 그것을 준 것이다.
'바닥재는 특별한 것이 없다.
비닐 장판이 싫으면 나무 마루를 방에 깔아도 괜찮다.
굳이 원목 마루를 할 필요는 없다.
우물마루는 깔아 놓으면 정신없다.
색감은 내추럴 오크가 무난하다.
무난한 것이 편하게 오래간다.'
요런 말들이 그냥 결정을 편하게 했다.
 
더 추워지기 전에 안방 바닥을 바꾸자.
이런 외진 시골에서는 인력풀이 없다.
그래서 웬만한 것들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용가리가 유튜브를 보면서 마루 시공하는 것을 열심히 공부했다.
둘이서 잘할 수 있을까??
괜히 고생하지 말고 시공업체에게 맡기라는 유튜버들도 많았다.
그러다가 읍내에 우리가 쓰려고 하는 마루 자재를 파는 대리점이 얼마 전에 생긴 것이 기억났다.
어차피 자재는 구입해야 하기 때문에 방문했는데 시공도 업체에서 파견해서 해 준다는 것이다.
시공해 주시는 분이 부산에서 온다고 하는데 생각보다 가격도 괜찮았다. 그리고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하여.... 안방 바닥을 한지장판에서 나무 마루로 바꿨다.
역시 기술자는 다르다.
우리는 하루 일을 생각했는데 오전 11시에 와서 점심시간에 맞춰 끝냈다.
장판 뜯고 마루 까는데 1시간 20분. 우와~~~~~
용가리와 내가 했으면 하루가 넘게 징징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시공하러 오신 분이 장판 멀쩡한데 왜 바꾸냐고 하셨다.^^;;
내가 봐도 지금은 장판이 그런대로 멀쩡하다. 그런데 여름이 되면 또 난리가 날 것이다.
 

 
 
이틀 말리고 청소하고 가구 집어넣고 이제 일상으로 복구했다.
뜯어낸 장판을 태우면서 그래도 10년 간 잘 썼다고, 고마웠다고 인사했다.
반들거리는 장판이나 반짝이는 대청마루를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대감마님집 '언년이'가 매일 닦고 기름 먹이고 해야 하는 것이다.
나에게는 언년이가 없고 내가 언년이가 되기에는 나이도 많고, 닦고 기름 먹이는 노동에 너무도 취약하다.
그래도 10년 간 언년이에게는 미치지 못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애는 썼다.
반질거리는 한지장판이 아쉽지만 미련은 없다.
 

 

 
 
사실 나는 더 어두운 색으로 안방 마루를 깔고 싶었다.
진한 먹색에 가까운 것으로...
그런데 용가리가 색이 어두우면 벌레들이 보이지 않는다고 반대했다.
맞는 말이다.
진한 색의 마루는 좀 더 차분하고 기품(?) 있어 보일 것 같지만 또 관리가 어려울지도 모른다.
물론 벌레들 기어 다니는 것도 잘 안 보이고..ㅠㅠ
역시 무난한 것이 오래가고 관리도 쉬운 것 같다.
무언가 개성 있게 하려면 그만큼 품이 든다.
나도 이제 늙음의 한 중간에 있으니 품이 많이 드는 것은 조금 포기해야 할 것 같다.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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