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가온의 노소장님이 전화를 했다.
ebs에서 간청재를 촬영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집'에 대한 테마를 다루는 프로그램인데 개량한옥 형태를 한, 특히 누마루를 가진 간청재를 찍고 싶어한다고...
그러면서 황급히 덧붙이기를 '집만' 촬영한다고 했다.
임소장님이 같이 오셔서 이런 저런 설명을 곁들여 누마루 중심으로 찍는다고 했다.
일단은 의논하고 다시 전화를 드린다고 했다.
용가리와 상의하니 한 번쯤은 부탁을 들어드려야 하지 않겠냐고....
사실 간청재를 짓고 살면서 가온을 통해 신문이나 잡지, 방송에서 촬영을 부탁하는 일들이 있었다.
처음부터 우리는 출연하지 않는다는 것을 밝혔음에도 여러번 설득하다 취소되곤 했다.
노소장님도 이러한 우리의 생각을 잘 아시는터라 슬쩍 운을 떼다가 말고는 하셨다.
이번에도 집만 나온다고 강조하시고 예능프로가 아니라 ebs에서 하는 것이니까 괜찮을 것 같아서 말씀드린다고 하셨다.
그래서 이번만은 하기로 했다.
ebs에서 작가가 연락하고 운전차량이 주소를 묻고 답사 날짜를 잡고 촬영일을 말하고...
답사 오기 전에 작가가 물었다.
'두 분이 내려와서 함께 사시는 건가요? 서울 생활은 완전히 정리하셨나요?'
그렇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전화가 와서 집에는 사람이 있어야 완성되는 공간이다 어쩌고 저쩌고..
어째 낌새가 이상하다 싶었다.
우리가 출연하면 안되겠냐고 했다.
'우리가 출연하지 않아도 된다 해서, 집만 촬영한다고 해서, 임소장님도 같이 오신다고 해서 촬영하기로 한 것인데요'
'아...그렇게 말씀 들으셨군요...'
다시 피디에게서 전화가 왔다.
용가리에게 전화가 왔는데 나에게 전화를 넘겼다.
왜 나한테 넘기는데?
니가 말해야 할 것 같아
전화를 바꾸자 피디가 물었다.
'무슨 이유로 촬영을 안 하시는 건데요?'
그 물음에는 어떤 불편한 부분이 있으면 다 해결해 주도록 하겠다는 의미인 것 같았다.
'그냥 안 할 거예요. 우리는 출연 안 해요.'
아...저쪽에서 잠시 있다가 막 설명을 시작했다.
집에는 사람이 있어야 생활하는 모습을 전하고 어쩌고...
누마루에서 막걸리 나누는 모습, 이야기하는 모습이 어쩌고...
그러다가는 그냥 이야기 나누는 모습만 찍으면 안될까요? 아님 멀리서 뒷모습만 찍으면 안될까요?
NO!!
다시 회의를 해 보고 연락 드린다고 했다.
그리하여 엊그제 촬영을 보류하기로 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피디는 계속 미련을 못 버리고 이야기하다가 나중에라도 다시 연락드리면 잘 부탁드린다며 전화를 끊었다.
취소 전화를 받자마자 어찌나 개운하던지...ㅎㅎㅎ
번잡스럽던 마음이 정리되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혼자 생각해 보면 이제 이렇게 시골 사는 모습 찍는 프로는 좀 바뀌어야 할 것 같다.
내가 피디라면 다른 컨셉으로 색다르게 만들고 싶을텐데...뻔한 구성이 지겹잖아....
사람이 나오지 않더라도 사람의 향기가 느껴지도록, 그 집에서의 생활 모습이 충분히 상상되도록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그게 진정한 연출이지 말이야..ㅋㅋㅋ
나름의 전문가들이 들으면 뭣도 모르는 소리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사실 나도 처음에는 귀농 귀촌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내는 프로를 즐겨 봤었다.
그런데 내용은 하나같이 똑같았다.
공기 좋은 곳에서 산다, 밥 하다가 텃밭에 가서 재료를 가져 올 수 있어서 좋다, 농약 안 친 채소 먹는다....
그리고는 결론은 삼겹살 파티로 끝난다.
사람들이 고기 구워 먹으려고 귀촌하는 것 같다.
그런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사람들 유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쫄딱 망해서 내려온 사람, 아파서 내려온 사람, 좀 여유가 있어서 전원주택에서 살고 싶어 내려온 사람.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살아서 '너무너무너무 좋다'를 외치고 있었다.
뭐 그리 좋은 점만 있는지...그리고 뭐 그리 자랑질을 하는지....짜증이 났다.
나는 여기 살면서 느끼는 것이 '함부로 자랑질하면 안 된다'이다.
세상에 좋기만 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어떻게 생긴 집이라도 자기가 사는 집이 제일 좋은 법이다.
언제가 집 근처를 산책하는데 '지리산 천왕봉이 제일 잘 보이는 곳'이라고 쓰인 문구가 박힌 어떤 농장의 원두막을 보았다.
무슨 근거로 저렇게 말하는 거지? 제일 잘 보인다니? 이 동네 사람들 집 마당에서도 다 잘 보이는데?
차라리 멋지게 보이는 곳이라고 하던가..그건 주관적이니까 봐 줄 수 있다..
이렇게 중얼거리니까 넌 애가 왜그렇게 삐딱하냐고 용가리가 쯧쯧쯧 혀를 찼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똑같다.
시골이라고 좋은 인심만 있는 것도 아니고 불편한 점도 많고 몸에 좋은 것만 먹지도 않는다.
밥 하다가 텃밭 가서 파 뽑아오려면 엄청 귀찮다. 냉장고에서 꺼내 쓰는 것이 훨씬 편하다.
난 냉동식품과 레토르트 식품도 즐겨 먹는다.
장에 가는 것도 멀고 외식이나 배달음식이 안 되기 때문에 오히려 서울 살 때보다 더 쟁여 놓게 된다.
게다가 냉동식품이나 레토르트 식품이 몸에 나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나는 그저 먹고 싶은 것을 맛있게 먹으면 그것이 제일 몸에 좋다고 생각한다.
불편한 점은 고칠 수 있으면 고치고 안 되면 익숙해지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이제는 그런 귀농 귀촌에 관한 프로그램이나 책을 잘 보지 않아 내용이 좀 바뀌었을지도 모르겠다.
여기 내려와 3년을 살면서 이런 저런 것을 많이 생각하게 된다.
사람마다 여러 이유로 시골 생활을 선택하게 되지만 우리는 더 이상 돈을 벌고 싶지 않았다.
급하게 달려가는 자본주의 열차에서 뛰어내리고 싶었다.
그 열차에서 뛰어내려 이곳으로 온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것에 하나를 더 갖고 싶어 내려오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삶에 있어서 '플러스 알파'를 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삶을 대하는 태도나 관점이 조금 다를 수 있다.
난 여러가지 이유로 내려온 사람들을 다 존중하고, 비난할 생각도 없지만
나와 같은 이유와 방향을 갖고 있는 사람과 소통할 수 없으면 결국 나도 또라이가 될까봐 걱정인 것이다.
'플러스 알파'를 위해 내려온 사람들과 공감할 수 없고 그렇다는 것은 삶을 대하는 태도와 방향성이 다르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깊이 소통할 수 없으므로 혼자 우물파고 들어가 앉을까 걱정이다.
내가 바라보는 현상이 나만 보이는 것인가...내가 너무 삐딱하게 편협하게 보는 것은 아닌가....내가 하는 고민을 다른 사람도 하는 것인가...등등을 함께 나누고 이야기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 걱정된다.
얼마 전 뉴스공장에서 들었던 정태춘 인터뷰가 생각난다.
10년 간 노래를 만들지도 하지도 않았다...
더 이상 소통이 되지 않았다.
그러면서 점점 외골수가 되어가는 것 같다...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노래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느꼈고 그래서 노래를 만들지 않았고 그렇게 지내다보니 더 외골수가 되는 것 같다'는 의미로 이해되었다.
난 그의 이야기가 슬프기도 했고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했다.
예술가, 가수에게 있어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는 것은 거의 고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모든 예술적 기질을 세상에 보여주고 이야기해야만 하는 예술가가 더 이상 그것이 불가능하고 벽이 생겼다고 느꼈을 때
얼마나 답답했을까...
나야 뭐 예술가도 아니고 예술가와 같이 세상을 향해 외쳐야 할 어떤 근원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소통의 단절, 혹은 어려움이 외골수로 몰아갈까봐 걱정이 된다.
뭐 쉽게 말하면 또라이가 될까봐 걱정이다.
지리산에 내려와 지내면서 가끔은 소통이 그리울 때가 있다.
같은 방향으로 삶을 바라보는 사람과의 소통 말이다.....
오늘은 새로운 얼굴, 할미꽃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