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계엄 내란 사태 이후,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면서 서로 공유하는 최소한의 것들이 무너진 느낌이다.
공허하고 우울한 기분이 든다.
너무나 뻔한 상식적인 개념들이 부정당하고 있다.
왜 저렇게까지 하는 것일까?
이해 불가능한 것을 이해해야 하는 고통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해야 하는 고통
이해하고 싶은 고통
답답하고 공허하고 허무하고 우울한 기분...
'월말 김어준'의 박구용 교수님의 이야기를 들으면 이 우울함이 '철학적 고통'이라고 한다.
우리가 서로 공유하고 있던 최소한의 것이 붕괴되면서 느끼는 것들.
의미 자체가 상실되는 것. 즉 진리가 없다는 것.
그것으로부터 오는 허무함.
철학적으로 '무지성회의주의'라고 한단다.
이 고통을 벗어날 수는 없지만 원인을 알아야 출구가 보인단다.
파시즘의 준동.
우리나라는 조금 늦었지만 유럽과 미국 전역에 파시즘이 등장한 지는 꽤 되었다.
이제 우리나라에도 본격적인 파시즘이 등장한 것이다.
사회의 시스템이 사회를 따라가지 못할 때 그 시스템은 붕괴되고 새로운 시스템이 들어선다.
새로운 체계가 들어섰을 때 새로운 체계로 들어가지 못하고 구체계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지체된 의식이 바로 파시즘의 자양분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소외'가 아니라 '지체'라는 것이다.
지체된 모든 사람들의 결합이 파시즘이다.
이러한 파시즘의 자양분들이 선동가를 만날 때 폭발하게 된다.
윤석열의 지체가 다른 지체된 이들에게 희망을 준 것이다.
새로운 시대로 가지 못하는 사람들, 구체제가 좋은 사람들, 구체제를 붙들고 있는 사람들의 조직을 가져왔다.
지금의 상황은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과 '외로운 늑대들의 조직된 힘(파시즘)'의 충돌이라고 박구용 교수님은 말한다.
또한 파시스트들은 극단적 부정적 추론으로 최악의 경우만 생각한다.
파시스트들은 오로지 연산에만 두뇌를 사용하기 때문에 이익 계산에만 몰두한다고 한다.
그래서 하나의 생각, 하나의 방식, 하나의 계산, 하나의 이성으로 모든 사람들이 함께 경쟁하는 체계가 파시즘이다.
전체주의 운동은 원자화되고, 고립된 개인들의 대중 조직이다.(....) 전체주의 운동의 가장 뚜렷한 외적 특징은, 개인 성원들에게 총체적이고 무제한적이며 무조건적이고 변치 않는 충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전체주의의 기원] 한나 아렌트
다시 말하면 이들 각각은 원자화되어 옆 사람과도 소통하지 않고 고립되어 있지만 집단 속에서 이 고립감을 벗어나 소속감을 갖는다.
그리하여 무제한적이고 무조건적인 충성심을 갖게 된다는 것.
내란이 정리되는 것도 오래 걸릴 것이지만 다 정리된다고 해도 지금 두각을 나타낸 파시즘은 이제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제2의 제3의 윤석열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유럽과 미국에 나타난 파시즘을 보고 남의 나라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우리나라도 파시즘과 함께 가게 되었다. ㅠㅠㅠ
이 파시즘의 영향력을 쇠락시키려면 다양성이 필요하다.
문화적 자유주의( Cultural liberalism).
간단히 말하면 개인의 자유를 위해 집단을 최소화한다는 것.
문화 규범에 대한 개인의 자유를 존중한다는 자유주의 분파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이 주축을 이루며 "만약 누군가 자신의 파트너와 박자를 맞추지 못한다면, 아마도 그는 다른 드럼 소리를 듣고 있을 것이다."라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말로 표현될 수도 있다.
위키 백과 첫머리에 문화적 자유주의를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내가 자유주의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것이 참 멋지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으로 살고 싶다.
명품 옷을 입고 시위 현장에 나가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소리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강남 넓은 아파트에 살면서 공공임대주택 정책을 위해 노력하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멋지고 세련된 삶을 살면서 사회의 약자, 소수자를 위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을 외면하고 무시하는 세력보다 더 멋지고 더 세련되고 더 고급스럽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진보진영에서 문화적 자유주의를 선점하여 '매력적인 힘'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양성. 멋지고 세련되고 매력적인 힘이 파시즘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박구용 교수님의 말을 듣고 나니 이해하고 싶은 고통, 공허함, 우울함의 원인을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 그리고 한강 작가님의 '작별하지 않는다'의 제주도 사투리가 나오는 부분을 제주문학관 김순이 명예관장님이 하나하나 해설해서 박구용 교수님께 책을 보내 주셨다는 말을 듣고 감동받았다.
책을 사서 손수 사투리 부분을 풀어써서 보내 주셨다는 그 사실이 참 감동이기도 하고 가슴이 아프기도 했다.
제주도 사람들의 심정은 이런 것이다.
제주도 사람들은 이 책을 통곡하며 읽었을 것이다.